‘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관련된 기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그 얘기냐고 지겨워할 사람도 있겠지만 드라마 속 예서 엄마의 불안에 대해 잠깐 얘기하고 싶다.예서 엄마의 모습에서 성공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상류층의 욕망을 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의 불안이 더 크게 느껴졌다. 자신의 원가족을 부정하는 일까지 감수하면서 원하는 삶을 걸머쥔 그녀는 반쪽짜리 자신과는 달리 ‘의사 집안’에 온전히 소속될 수 있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그러나 그녀는 판단 착오를 했다. 아닌 줄 알면서도, 잘못되어 가고 있다
겨울방학이 학교생활기록부와의 씨름으로 시작되었다. 학기 중에 집중해서 쓰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아 방학 중 조용한 틈을 타 내용을 작성하고 있다. 방학이 반쯤 지났는데 나는 여태 하루에 한 번씩 원격업무시스템을 접속하고 몇 시간 집중해서 쓰다가 바닥난 에너지를 커피와 초콜릿으로 보충하는 일을 반복한다.한동안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주제로 등장했던 강남 모 여고의 시험지 유출 사건이나 최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코디네이터가 어쩌고, 극상류층의 서울대 보내기 실태가 어쩌고 하는 새로운 얘깃거리를 만들어 준
매학기 여러 수행평가를 하지만 그 중 마음이 쓰이고 정성을 들이는 수행평가가 있다. 지난 학기에는 시사적인 논제를 가지고 토론활동을 했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자료 준비를 많이 하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이번 학기에는 연극을 했다. 그동안 배운 문학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해 연극으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대본을 쓰는 과정부터 품이 많이 들었다. 영상에 익숙한 아이들은 장소와 장면의 제한이 많은 연극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아이들은 무대 디자인을 할 수 없는 한계를 파워포인트 영상으로
11월 중순에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는 ‘아리랑, 삶의 노래-은평이야기2’라는 정가악회 공연이 있었다. ‘밥 주는 도서관 작공(작은 공원)’을 주제로 한 공연이었다.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작공은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삶을 함께하고 있었다. 같이 밥을 먹고 하루 생활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이 교육이구나, 교육이 일상 속에 담겨 있구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교사가 아닌 일반인으로 보는 거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을 마주하는 게 힘겹고 마음이 무거웠다. 교사의 역할에 대해 새
달리 살아 보려 해도 매일이 같은 빛깔로 채워지는 학교생활에서 한 자락 바람을 불어넣는 일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등을 통한 외출이다.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하는 노랫말처럼 밖에 나와 봐야 내 삶이 어떤지도 생각하게 되고, 곁에 있는 친구의 의미도 생각하게 된다. 떠나기 전날은 오래 뜸을 들여야 잠이 오고,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하는 어수선한 동작을 반복한다. 여행 가기 전의 설렘이야 말해 무엇하리.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기억에 남기는 흔적은 무엇일까. 그것을 경험한 이들은 저마다
조회 시간에 들어갔더니 남학생 김재호(가명)가 전날 결석한 사유를 적은 ‘결석 신고서’를 내밀었다. 받고 보니 ‘질병’ 결석 신고서가 아니라 ‘생리’ 결석 신고서였다. 서류를 잘못 가져간 모양이었다. 다시 써 오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우리 반 여학생들이 재호가 ‘생리’ 결석 신고서를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호 생리하니? 무지 하고 싶은가 보네.’ 하고 잠깐 웃고 넘어간 일인데 누군가 게시판에 쪽지를 붙여 놓았다. -오늘은 김재호가 생리를 했다. 남자가 생리하는 건 처음 본다. 김재호도 처음이겠지? 처음 하는 거라 당황했을 텐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니 오래된 일이다. 우리 반에 서울에서 전학생이 왔다. 부모님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언니는 결혼해서 서울에서 사는데, 그 누구도 고등학생인 막내를 건사할 형편이 안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내가 사는 읍 단위 시골의 작은 아버지집 한켠 단칸방에 맡겨졌다. 누가 먼저 말을 건넸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와 나는 끊임없이 얘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졌다. 나는 그즈음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 빠져 있었는데 그녀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읽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 대해 얘기했다. 내가 읽은 작품을 그
올해 문학 시간에는 김소월, 백석, 윤동주, 신동엽, 고정희 시인들의 작품을 함께 읽었다. 시인마다 작품마다 할 얘기가 많아 시 감상 시간에는 말이 길어진다. 며칠 전에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으며 웃을 일이 많았다.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나타샤의 모습과 그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화자를 상상해 본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이를 떠올리는 화자의 마음은 눈이 펑펑 내리는 정경과 잘 어우러진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을 때면 백석이 사랑했던 이가 먼저 떠오
지역의 단체에 얼굴을 디밀다 보면 ‘나’를 소개할 일이 종종 있다. 첫 만남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기억 속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 가볍게 대해도 될 텐데 나는 매번 그 시간이 버겁다.은평구의 마을합창단 ‘꿈꾸는 합창단’ 문을 두드린 날에도 그랬다.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일도 심장이 조여드는 일이었지만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했다. 뜨거운 삶을 살아 내지도, 타인들과 ‘억세게’ 부딪치며 살갗을 벗겨 내지도 못한 나. 그저 몇 해를 살았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노래는 잘 못하지만 노래하고 싶다는 용기인지, 객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