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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활약우리 반 센 언니들의 수학여행
  • 차희주 시민기자
  • 승인 2018.11.0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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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달리 살아 보려 해도 매일이 같은 빛깔로 채워지는 학교생활에서 한 자락 바람을 불어넣는 일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등을 통한 외출이다.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하는 노랫말처럼 밖에 나와 봐야 내 삶이 어떤지도 생각하게 되고, 곁에 있는 친구의 의미도 생각하게 된다. 

떠나기 전날은 오래 뜸을 들여야 잠이 오고,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하는 어수선한 동작을 반복한다. 여행 가기 전의 설렘이야 말해 무엇하리.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기억에 남기는 흔적은 무엇일까. 그것을 경험한 이들은 저마다 다른 무늬, 다른 이야기들을 품고 산다. 우리 반 아이들도 지난 수련회 활동에서 각기 다른 결의 이야기를 품었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것들이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학교는 수학여행 대신 수련회 활동을 간다. 평창으로 향하는 열 대의 버스에 제각기 몸을 실을 때부터 아이들은 마음이 들떠 살랑살랑 가벼워 보였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사실 수련회 활동이 아니었다. 이틀 동안 친구들과 자면서 나눌 이야기들, 베개싸움, 장기자랑 시간에 선보일 노래, 춤들이었다. 어쩌면 꼭 뭘 해서가 아니라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들썩거리는 2박 3일이다.

 출발부터 떼창으로 시작된 우리 버스는 넘치는 흥으로 넘실댔다. 실내거울로 보이는 운전기사의 찌푸린 눈길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눈치 보는 것은 나뿐이었고,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 

왠지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법이다. 주의와 당부와 염려를 쏟아내는 담임의 소심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우리 반 ‘센 언니’들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첫날 밤의 장기자랑 시간에 아이들의 환호는 강당 안을 출렁거렸다. 목소리만 큰 게 아니라 으쌰으쌰 흥을 일으킬 줄도 알고, 강하게 밀고 이끌기도 하는 여학생들이 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학기 초, 급훈을 정할 때부터 ‘흩어지면 죽는다. 뭉쳐야 산다!’고 주장했던 여학생들이었다. 2018년도에 이런 급훈이라니, 꼭 이걸로 해야겠느냐고 은근한 반대를 표하는 담임에게 ‘우리는 단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여학생들이 움직였으니 그 밤에 잠들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반은 장기자랑에서 상을 휩쓸었다. 열 개 반에서 7팀이 나왔다. 동글동글한 몸짓을 가진 네 명의 여학생들이 ‘셀럽파이브’를 재연한 ‘셀럽포’를 연기해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기의 핵심은 ‘무표정’이었다. 엄마의 치마와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표정 없이 손끝과 발끝을 세우고 돌리는 모양새가 마치 통통하고 귀여운 새 네 마리의 쫑쫑거림 같아서 어찌나 귀엽던지.

우리 반은 그리도 원하던 단체상까지 받았고 아이들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강당을 나갔다.   반면에, 아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내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아, 너무 늙었나 보다. 

잠깐 주어진 자유 시간에도 수련원을 헤집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어느 초등학교 아이들도 수련회를 왔는데, 그 아이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우리 반 여학생들을 보고 허, 참, 헛웃음만 나왔다. 

 “선생님! 초딩들이 자기들 방이 110호라면서 심심하면 놀러 오라는데요.”

그걸 자랑이라고…. 땀을 닦으며 화사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니, 학교가 아이들의 에너지를 가두어 놓는 곳이라는 말이 맞는 말 같아 씁쓸했다. 고여 있던 에너지가 밖으로 나오니 열이 오르다 못해 펄펄 끓었다. 

 남학생들은 두어 시간 동안 시끌벅적, 우당탕 소리를 내더니 잠잠해졌다. 방의 불이 꺼졌고, 자정이 넘어가자 대부분 방이 조용해졌다. 

그런데 여학생들 방이 심상치 않았다. 소근거리는 소리, 깔깔 웃는 소리, 쿵쿵 소리. 교사들은 순번을 정해 복도를 순회하며 밤을 지키기로 했다. 정작 중요한 활동은 다음 날 낮에 있을 숲 체험, 암벽 체험, 국궁 체험 등이었으나 아이들에게 그게 중요할 리는 없을 터였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가는데, 불 꺼진 방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흘러나왔다.  교사들은 커피 한 잔을 나눠 마시며, 나 같아도 잠이 안 오겠다, 우리 때는 밤새 놀다가 선생님한테 맞기도 했다, 그때 처음으로 술을 마셨는데 선생님이 따라주셨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였다. 

우리 반 ‘센 언니’들의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쿵쿵 등을 두드리는 소리, 딸꾹질 소리, ‘괜찮아?’ 하고 묻는 소리. 음……. 예감이 점점 현실이 되어 갔다. 그랬다. 그 밤에 아이들의 흥분은 음주로 이어졌다.

그래도 새벽 두 시에 소지품 검사를 하는 건 좀 인간미가 없지 않나. 다만, 무사히 수련활동을 마치도록 더 이상의 음주는 막아야 했다.  술김에 아이들이 다투지는 않는지, 누군가 울거나 속이 부대껴 괴로워하지는 않는지 방 밖에서 안을 살피며 서성이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방문을 확 열었다.  

한 아이가 속이 불편했는지 변기를 끌어안고 철퍼덕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화들짝 일어났다.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화장실 가다가 넘어진 거라며 둘러댔다.  

화려한 밤은 다행히 그것으로 끝났다. 다음 날 확인해 보니 한 아이가 집에 있는 냉장고에서 소주 두 병을 몰래 가져왔다고 한다.

음주 후에는 약간의 후회가 남는다. 다음 날 아침은 마실 때만큼 즐겁지 않게 마련이다. 속은 쓰리고 눈은 퀭하고 몸은 어딘가 모르게 찌뿌둥하다. 아침에 식당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이 그랬다.  

하필이면, 아니 다행히 그 날 아침 메뉴로 콩나물국이 나왔다. 숟가락질이 시원치 않아 보였다. 선생님한테 들켰으니 무슨 벌을 받게 될지 걱정도 되었을 터였다.

 수련활동에서 돌아와서 아이들은 교내 봉사활동을 했다.  어떤 어머니는 애들 수련회라는 게 다 그런 건데 모른 척해 주시지 하며 서운한 마음을 비치었으나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내가 그리도 당부했건만, 하고 웃으며 징계 조치를 수긍했다. 

소주 두 병을 다섯 명이 나누어 마신 대가로 벌 청소가 부족한지, 가혹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이들은 소주의 뒷맛이 쓰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차희주 시민기자  heejoo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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