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나는 시집 한 권을 낸 바 있는 시인이다. 그리고 지금도 책방 영업을 하는 틈틈이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시를 쓰고 있다. 수천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에 있으면 가뭇없이 시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그것을 낚아채듯 붙잡아 모니터에 언어의 이미지를 옮기는 것이다. 책장과 서가에 가득 꽂힌 책들을 ‘멍때리며’ 바라보고 있노라면 책 안에 갇힌 텍스트들이 나비와 벌처럼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환영이 보이기도 한다. 그 기분이 썩 괜찮다. 지금의 나처럼 시인 중에는 책방을 운영했던 이들이 제법 있다. 특유의 모놀로그적 화법과
헌책방은 말 그대로 헌책, 중고책을 판매하는 곳이다. 그런데 ‘상품’으로서의 헌책은 새책과는 달리 공급의 체계가 일정하지도 않고 안정적이지도 않다. 헌책은 누군가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책을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어떤 식으로든 ‘처분’할 때 발생하는데, 그 동기나 계기라는 것이 너무나도 자의적이어서 이를 두고 그 누구도 안정적인 공급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중고책 시장에서의 ‘공급’은 “요구나 필요에 따라 물품 따위를 제공한는 것”이라는 뜻의 원뜻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 정도가 더 맞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놓치지 않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부모들의 자녀 교육열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문맹률이 가장 낮고 대학 진학률은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국토가 좁고 자원은 없으니 믿을 것은 인재뿐이라는 현실적 조건이 교육에 대한 맹목으로 치달은 점이 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교육열은 여전히 우리가 자부해도 좋을 만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높은 교육열은 지식산업 및 출판산업과도 밀접하게 연동되면서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했다. 어린이책 출판 시장의
책방은 당연한 얘기지만 작가와 텍스트를 독자와 매개해주는 곳이다. 거기서 작가와 독자 사이,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개별적 사연들은 코스모스를 구성하는 뭇별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수많은 독자들이 저마다 책방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지적 체험과 각성을 하는 순간을 만난다. 서가 깊숙한 곳에서 발견하게 된 어떤 책이나 작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혼자만 알게 된 것 같은 비밀을 가슴에 안고 그것을 섬기며 길고 긴 꿈을 꾸기도 한다. 최근에 책방에 찾은 분 중 인상적인 고객이 한 분 있는데, 자신을 전자공학 분야의 엔
고용시장에서의 고학력 청년세대의 소외 현상과 문화예술 활동가들의 전략적 각성과 맞물려 10여 년 전부터 동네책방 및 독립서점 창업 붐이 불었고,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책방들이 전국 곳곳에 문을 열었다.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개성과 소신을 드러내며 색깔 있는 경영으로 거미줄 같은 유통망을 가진 기성서점들에 숨 가쁘게 맞서고 있는 중이다. 개중에는 안타깝게도 경쟁에 밀려 이미 문을 닫은 곳도 있다. 나 역시 낭만적인 작가 또는 독자의 지위에서 벗어나 치열하게 생존을 다투는 책 생태계의 위태로운 구성원이 됐음을 이제는 부인하고 싶어도 부
지난 5월 15일은 진보를 표방하며 창간된 일간지 한겨레의 33돌이었고 우리 책방 창립 1주년 기념일이었다. 책방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첫돌이라면 유난을 떨며 행사 같은 걸 해도 좋았으련만 코비드 19에 따른 방역 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및 집합금지 시책을 충실히 따르기로 한 것이다. 정부에서 자영업자에게 주는 재난 지원금을 받았다는 알량한 채무감이 이러나저러나 당국 시책 정도는 따라줘야 하지 않겠냐는 양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코로나 2차 확산 직전에 책방을 개업한 나는 이후 속수무책으로 영업 부진에 시달려야
어느 날 한눈에도 고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70대 중반쯤의 노부인이 오셨다. 그분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니 안경 너머 총기어린 눈동자에 지적인 기품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분은 내게 낮고도 또렷한 목소리로 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고 일부러 찾아왔다면서 책방을 언제 개업했느냐, 경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다.거기에 나는 “네, 세상을 배우는 태도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고 상투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노부인은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란 중년 이후부터 책을 읽는 재미에 푸욱 빠져 살고 있으며 책방 나들이가 중요한
교양과 지식을 매개하는 문화적 공간이라는 다분히 미화적일 수 있는 수사를 포기하고 말한다면 책방은 영업과 거래가 일어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프라인에 점포라는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하면서 소비의 욕망을 가진 방문객을 맞이하는 걸 속성으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문을 열어둔 가게의 주인인 이상 내게는 내방객을 가려서 받거나 피할 수 있는 방도가 사실상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업 이후 지난 9개월 간, 코로나라는 된서리를 맞아 책방을 찾는 방문객 숫자는 하루 평균 두 명이 채 안 되었다. 이렇게 쓰고 있는 나조차도 믿을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나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그 앞에서 인간은 평정심을 잃기도 하고 무력한 자아와 마주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고 해도 생각했던 일과 짐작했던 일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경험을 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다시금 긍정하게 된다. 이처럼 의지에 대한 긍정을 통해 인간은 살며 희망하며 끊임없이 삶을 진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장황한 말을 했을까. 그것은 헌책방을 오픈하면서 내심 꼭 해보고 싶었으나 ‘생각지도 못한 일’로 아직까지 실행에
스물일곱의 나이에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라는 일종의 작위를 얻었으나 명망을 구축하지 못한 탓에 원고료 수입, 인세 수입으로는 생계를 도모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며 밥벌이를 했다.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었고 적성에도 맞았으나 어느 날 정년이라는 게 내 앞에 당도했다. 터무니없이 짧은 정년은 한국의 단행본 출판업계가 구조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몇몇 대형 메이저 출판사를 제외하곤 사회적으로 합의된 피고용자의 정년이 보장되지 않았다. 인적 자원을 배치하는 문제와 출판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