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공으로의 첫 출근 날이었다. 동료 선생님들이 오시기 전, 첫 출근의 긴장감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작공의 공간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한 친구가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 당황했다.“누구세요? 정하쌤은요? 보성쌤은요?”“쌤들은 지금 오고 계셔요. 나는 오늘 첫 출근한 작공 교사에요.”“작공 쌤이라고요?”내 대답을 들은 그 친구는 곧 사라졌다. 얼마 후, 동료 선생님들께서 출근하시자 곧 그 친구도 다시 나타났다. 근처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왔다고 했다. ‘나하고 단둘이 있기 어색했구나..’ 그것이 작공 막둥이 로빈
청소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면접을 보러 작공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청소년 도서관이라고 했는데 익숙한 도서관의 분위기가 아니었다.홀에는 10명 남짓의 청소년들이 제각각 이야기를 하느라 왁자지껄했고 그 와중에 들리는 각종 비속어들이 내 귀를 때렸다. 홀 한쪽의 주방도 북적거렸는데 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흥분돼 있었다. 벽면 책꽂이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만이 도서관이라는 정체성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듯했다.본능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청소년 도서관’의 ‘도서관’이 지워지고 ‘청소년’만이
“최종 시험을 치러도 저는 안되나요?”“작년에 내가 한 말 기억하지? 너 같은 전과자는 OOO에서 안 받아줘. 살면서 선을 행할 다른 길도 많아. 더 쉬운 길.”한 소년이 간절하게 묻는다. 그 길을 갈 수 없냐고. 기성세대인 우리 중 한 사람이 답한다. 더 쉬운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이 소년이 열망하지만 받아주지 않는 금단의 영역은 어떤 곳일까? 위 대화는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의 한 장면이고, OOO는 다름 아닌 신학교이다.위 대화를 살짝 고쳐본다.“너 같은 문신을 한 자는 OOO에서 안 받아줘.”작공에서는 그림 없는 팔뚝이
아직, 작공 창밖 너머 은행잎에 파릇한 기운이 감돌던 9월이었다. “선생님은 아이 좋아해요?”, “선생님은 강아지 좋아해요?” 프로그램 준비에 여념이 없던 선생님들 옆에 찰싹 붙어 아이들이 사뭇 진지하게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전 별로 안 좋아해요.”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남다르신 P선생님이 답한다. “선생님은 저희들한테도 꼬박꼬박 경어를 쓰시는데 아이는 안 좋아하신다는 거네요?” “선생님, 방긋방긋 웃는 아가가 어떻게 안 이쁠 수 가 있어요?”나의 우아한 동료선생님이 순식간에 아이를 싫어하는 특이한 사람으로 규정당하는 중이었다. “
작공은 2년 전부터 이름하야 주경야독 여행을 간다. 작년에는 ‘주경야독 제주살이’를 다녀왔다. 여행 준비단계에서부터 이번 여행은 기존 여행과 달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러가는 여행이라고 아이들에게 주지시켰지만, 아이들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무조건 좋다며 건성으로 들었다. 칠판에 토실한 고구마 같은 제주도를 그려놓고 10박 11일 일정을 펼치며 ‘일하고 걷고 명상한다!’를 거듭 강조했지만 부푼 아이들 마음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과 작공교사들, 모두가 설렜지만 그 설렘에는 동상이몽의 스멜이 강하게 풍겼다. 스스로 생계를
지난겨울은 너무 춥게 느껴졌다. 유난히 따뜻하게 시작했다가 돌연 큰 온도차를 보이며 어느 해보다 더 추운 겨울 날씨로 변해버렸다. 얼마나 추웠으면 겨울철에 유난을 떠는 미세먼지 조차도 쫓아냈을까?이제는 잔인했던 겨울이 물러나니 황사가 오기 시작했다. 겨울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아이스크림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3층까지 올라오는 계단을 오르면 덥기도 하겠지만, 유난히 지난겨울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찾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없다며 투덜거리면서도 3일이 지나면 냉동고에 쟁여두었던 아이스크림이 동이 났다. 아이스크
내면이든 외면이든 존재론적으로 적나라하게 자신을 마주하기 딱 좋은 곳, 그래서 저 깊은 곳이 건드려지기 딱 좋은 곳, 그곳을 여행했다. “은평시민신문에 샘들이 작공일기를 다시 쓰기로 했어. 나누고 싶은 이야기야 차고 넘치지만 우리의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까? 막상 쓰려면 기묘하게 고민이 돼.”“얘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쓰면 어때?”음, 아이들에게 연애편지를 쓰라는 말이다.“잠은 잘 잤어? ㅎㅎ샘이 고민 있어. 어제 인생특강을 했잖아.. 그 귀한 분을 모셔와 인생이야기를 듣는데 이 느무 시끼들의 그 예의 없음에... 인간에 대한
언제부터인가 못된 버릇이 생겼다. 지인들이 자식이야기를 하며 걱정과 자랑을 풀어놓을 때면 여지없이 올라오는 마음이 있다. 초등학생 조카를 애지중지하는 동생을 보면서도 여지없이 드는 생각이 있다. 이야기를 듣다 여지없이 옆길로 새 속으로 되뇌고 있는 내 자신을 만난다. ‘입만 열면 걱정해주고, 입만 열면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놔 주는 이런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애들한테도…’ 이 못된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물론 알고 있다. 오늘은 나도 우리 작공 아이 자랑을 하게 될 것만 같다. 나는 위영(가명)이를 5년 전에 만났다. 0
너무도 식상한 표현이지만 누구에게나 골고루 따뜻하고 모든 아이들이 작공에 발을 들이면서 선생님부터 찾을 정도로 든든하고 한결같으니 괜히 화려하거나 새로운 단어로 바꾸지 않고 불러봅니다.가끔은 한 사람을 낳아 기르는 엄마라는 사실을 잊고 살기도 하고 종종 철없이 내 몸만 챙기며 살고 싶은 마음이 출렁이는 요즘입니다. 9개월에 들어선 아이와 조금씩 합이 맞아가긴 하지만, 잠과 밥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던 저는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통잠을 자본적이 단 하루도 없고, 밥을 제때 못 먹어 생전 먹지도 않았던 콘플레이크를 먹으면서도 어딘가 하
Dear My friend, 00짱!학교 밖 아이들, 우리들의 아이들 이야기를 쓰려고 컴을 켰다네. ‘작공’ 문을 닫고서도 그예 헤어지지 못하고 카페에 앉아 아이들 이야기로 울고 웃고 한숨 짓다 찡한 마음으로 헤어졌듯, 아이들 이야기는 늘 끝이 없지 않은가? 지난 주 은평의 징검다리거점 공간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어. 난 현장을 오래 지키고 있는 연식이 된 교사로 경험을 나누게 되었다네. 혼자서는 지키기 힘든 현장, 동료의 소중함으로 이야기를 맺었는데 자네 생각이 많이 났다네. ‘내게는 이런 귀한 동료가 있는데, 당신들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30분마다 우루루 몰려 나간다.왜 나가니? ‘구름빵 만들러요’구름빵? 잘 만들어. 불조심하고.‘구름빵이 뭔지 아세요?’나도 젊었을 때가 있었거든.구름을 만들고 도너츠 만들며 서로 묘기 자랑하던 시절 우리도 그런 시절을 보냈다.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난 언제나 어른이었는 줄 아나 보지. 하긴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는 줄 알았다는 말이 있듯이 나에게도 거쳐 온 세월이 있다는 것이 이 아이들에겐 신기한 모양이다. 우리 막내 정후 역시 아빠의 흰머리를 보며 “내가 아빠를 처음 봤을 때부터 머리가 하옜어 난 멋 부리는
인상이 찌그러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그러던 어느 날 경찰차가 왔다 가고 경찰들이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어? 그래도 이건 아니지.' 경찰들과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난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갈 곳이 없니?"여자아이들이 합창을 한다"네.""그럼 도서관으로 와라.""그래도 돼요?""선생님들과 의논해서 연락할게."아이들은 나에게 언제부터 가도 되냐고 몇 번을 물었다."그래 7월 22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6시부터 9시까지 있어보자."처음에 별 생각 없이 한 제안이었다. 그냥 도서관에서 쉬라고 갈 곳이 없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