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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 오늘도!
  • 차희주 / 성사고 교사
  • 승인 2018.12.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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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삶의 노래 : 은평이야기2 공연을 마치고 <사진 출처 : 정가악회>

11월 중순에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는 ‘아리랑, 삶의 노래-은평이야기2’라는 정가악회 공연이 있었다. ‘밥 주는 도서관 작공(작은 공원)’을 주제로 한 공연이었다.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작공은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삶을 함께하고 있었다. 같이 밥을 먹고 하루 생활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이 교육이구나, 교육이 일상 속에 담겨 있구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교사가 아닌 일반인으로 보는 거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을 마주하는 게 힘겹고 마음이 무거웠다. 교사의 역할에 대해 새삼스레 생각해 보는 순간이었다.

 일 년 동안 우리반 아이들과의 생활을 돌아보며 나는 한숨을 쉰다. 며칠 전 담임들끼리 한 농담도 스쳐간다.

 “남들이 우리 사는 걸 보면 뭐라 할까요?”

 “애들하고 하루종일 옥신각신 하는 걸 보면 찌질해 보일걸요.”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들려온 대답이 씁쓸했다. 아이들과의 생활은 정말 사소한 일들부터 범법 행위까지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나도 멋진 말로 아이들을 감동시키고 싶다. 삶의 가치에 대해, 인생의 방향에 대해 아이들과 진지하게 거침없이 나누고 싶다. 그러나 나는 매순간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일들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나. 아이들이 좋아서 교사가 되었고, 무언가를 배우고 나누는 일이 좋아 교실에 들어가는데 일상의 삶은 참 궁상맞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는 아이의 결석을 알리면서 한숨을 쉰다. 자주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픈 아이. 심리상담을 여러 번 권했지만 아이가 거부하고 있다. 조회시간에 들어가니 오늘도 지각생이 3분의 1쯤 되었다. 매일 평균 서너 명이 결석, 지각, 조퇴를 한다. 학생들에게 결석 관련 서류를 받아 내는 데 한 달이 걸린다.

‘가져왔니? 내일은 가져올 거지? 마감이 이주일이나 지난 거 알지? 오늘도 안 가져왔다고?’ 한 장의 서류에 수십 마디가 오고 가야 한다. 가끔은 원칙대로 하고 싶다. 며칠까지 안 가져오면 ‘서류 미지참으로 무단결석 처리’ 같은 거 말이다. 학교에서 나는 철저하게 서류를 챙겨야 하는 업무 처리자인데 아이들에게 나는 받아 주고 이해해 주고 기다려 줘야 하는 사람이다. 결국 부모에게 서류를 챙겨 달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의 몫을 부모에게 맡기는 열여덟 살이 가끔, 아니 수시로 버거운 나.

오토바이 사고로 친구를 잃었다는 우리반 아이에게 위로 한 마디 못하고 등만 두드려 주었다. 위로의 말보다는 조퇴하고 장례식장에 가겠다는 아이를 설득하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장례식장에 가겠다고 우루루 교무실에 찾아왔는데 평상심이 깨진 감정으로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지레 걱정이 되었다. 결국 부모의 요청으로 학교를 나간 아이들은 담임들의 걱정을 확인시켜 주듯이 한 아이를 집단폭행 하다가 잡혀 경찰서에서 전화를 해 왔다. 나는 점점 새가슴이 되어 가고 잔소리가 늘어간다. 

어제도 그제도 /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시비 걸던 남자 노인 

오늘도 난닝구 바람으로 나와 있네 

나도 모르게 고개 치켜들고 / 그쪽 하늘 향해 미친 듯 소리 질렀네 

“루저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 루저! 루저! 루저! 루저! 

루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구!” 

내 서슬에 / 지나가던 청년 흠칫 쳐다보고 / 노인은 꼬리를 감췄네 

세상에,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칠십 줄에 가족 없이, 에어컨도 없이 / 하숙방에 사는 사람한테 

아, 내가, 내 입에서! 

루저가 루저한테 생채기 주고받는 / 열대의 밤    < 황인숙, ‘슬픈 열대’ >

‘루저’라는 표현 안에 함축된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서로 돌봄’이 필요한 루저들 아닌가. 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버거워한다. 학부모는 학교 교육의 인성교육 부재를 탓하고, 학교는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탓한다. 사회는 학교에게 너희도 공범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상처받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

작공 선생님 말처럼 전혀 헤맬 것 같지 않은 어른인 내가 얼마나 날것 같은 감정과 싸우고, 겨우 열여덟 살 아이들 앞에서 어른답지 못하게 행동하고는 후회를 반복하는 속내를 숨기고 싶은데 숨길 수도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

어느 국어 선생님은 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공부보다 돈보다 말이 가장 귀했다.’고. 밤새 편의점에서 일하고 학교에선 잠만 자는 아이에게 많이 힘들지 않았느냐고, 손님들이 괴롭히지 않았느냐고, 아침밥은 먹고 왔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자는 척하는 아이의 어깨가 자꾸 들썩거렸노라고. 

오늘은 잔소리 접어 두고 이 말을 꼭 전하리라. 정가악회 공연에서 꿈꾸는 합창단과 작공 아이들이 같이 부른 ‘망설임 끝에 부르는 노래’ 속의 가사 일부분으로 말이다.

- 참 많이 애썼구나. 정말 대단하다. 많은 걸 견뎌 냈구나. 정말 수고했다.

차희주 / 성사고 교사  heejoo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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