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백석이 되어 만날 수 없는 나타샤를 생각하며

 올해 문학 시간에는 김소월, 백석, 윤동주, 신동엽, 고정희 시인들의 작품을 함께 읽었다. 시인마다 작품마다 할 얘기가 많아 시 감상 시간에는 말이 길어진다. 며칠 전에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으며 웃을 일이 많았다.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나타샤의 모습과 그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화자를 상상해 본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이를 떠올리는 화자의 마음은 눈이 펑펑 내리는 정경과 잘 어우러진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을 때면 백석이 사랑했던 이가 먼저 떠오른다. 문학 시간의 백미는 사랑 얘기 아니겠나. ‘모던 보이’, ‘사슴’이라는 별명을 가진 수려한 외모의 백석은 시인으로도 사랑받았지만 연애담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기자였던 백석은 통영이 고향인 박경련을 친구 결혼식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그녀를 ‘난(蘭)’이라고 불렀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통영 갈 틈을 자주 내었다. 안타깝게도 박경련에 대한 백석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친구 신현중의 배신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안도현의 「백석평전」에 의하면, 신현중이 백석의 어머니가 기생이라는 근거없는 소문을 박경련의 부모에게 얘기함으로써 백석의 청혼에 재를 뿌렸다고 한다. 일 년쯤 후에 신현중과 박경련은 결혼했다. 

학생들은 신현중을 호되게 욕했다. 

 “친구 여친이랑 결혼을 해요? 완전 인간 쓰레기네!”

 의리가 생명만큼 중하다는 열여덟 살(학생들 스스로 하는 얘기다.)! 그들로서는 용납이 안 될 이야기다. 

 당시 백석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는 시 ‘통영’에서 ‘난(蘭)’ 박경련을 두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실연의 상처는 그의 발길을 통영으로 자주 이끌었던 듯하다. 덕분에 경남 통영에 가면 백석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백석의 사랑 얘기에 빠지지 않는 인물로 자야 김영한이 있다.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기부하여 ‘길상사’라는 절이 되게 한 주인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술과 여자를 품었던 장소가 탈속과 수행의 공간으로 변화한 과정도 드라마틱하지만 김영한이 남긴 유언은 여운이 깊다.

 “한겨울 눈이 제일 많이 내린 날 내 뼛가루를 길상사 마당에 뿌려 달라.”

 시인 백석은 고향 평안도에서 한국 전쟁을 맞은 후 남쪽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김영한은 1939년, 만주로 떠나는 그와 헤어진 후 죽을 때까지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후략)

 

 눈이 펑펑 내리는 날, 화자는 쓸쓸히 앉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나타샤를 생각한다. 소주를 마시며 상상하는 일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는 순간이다. 뱁새가 우는 산골에서 푹푹 쌓이는 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한 채 나타샤와 단 둘이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시인은 어쩌면 더 쓸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낭만적인 상상으로 위로를 받았을 수도 있을까.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끝에 슬쩍 물어 보았다.

 “그런데 얘들아! ‘나타샤’가 실존 인물이라면 누구일까? 박경련일까? 김영한일까?”

 여기저기서 ‘박경련이요’, ‘김영한이요’ 하는 외침이 흩어진다. 그 틈에 들려오는 덤덤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교실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어 버렸다.

 “그거야 당연히 더 이쁜 여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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