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때는 누려보지 못한 무통천국 속에서 평온하게 출산하게 된 둘째 딸. 아이가 자랄수록 이목구비는 말할 것도 없고, 피부 톤, 다리 모양 등 놀랍도록 나를 닮아가는 모습에 유전자의 위대함을 느낀다.나는 어릴 때 손에 사마귀가 참 많이 났었다. 그때는 민간요법으로 엄마가 머리카락을 뽑아 사마귀를 꽉 묶어 놓으면 일주일 정도가 지나 사마귀 색깔이 하얗게 변했다가 까매지면서 똑 떨어진다. 사마귀를 묶을 때 엄청나게 아프다는 것과 손 여기저기에 까만 머리카락이 붙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마귀 떨어진 자리가 동그랗게 흉으로 남는다는 것이
전업 아빠의 육아이야기를 한번 써보라고 해서 뭘써야 할지 고민 하다가 ‘아빠’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기로 했다. 아빠가 육아하면 뭐 가 다를까? 당장 아빠가 집안일은 잘 할 수 있을까? 또는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돌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떠오를 것 같다. 나는 자취를 한 경험이 있고 음식을 잘해먹었다. 그 덕에 지금은 꽤 괜찮은 요리실력을 갖고 있고 집안일 또한 무리 없이 해낸다.우리 집은 5세, 6세의 연년생 아 들이 있다.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고 자주 싸우지만 항상 같이 놀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다.아내가 육아를 할
첫 아이를 낳으며 갑자기 ‘엄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초보엄마와 처음 세상에 나온 아기의 좌충우돌은 가히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고군분투하며 영아기를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여유가 찾아왔다. 그러자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공허함이 가슴에 밀려오기 시작했다.결혼을 하기 전에는 전업주부의 미래를 상상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사회에서 요구하는 (경제적인) 몫을 해 내는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소위 말하는 ‘경단녀’가 되어 버렸고 사회와 멀어져갔다.어린 아기와 24시간 함께하
직장맘인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고, 감사하게도 첫째의 육아휴직이 끝날 때쯤 둘째가 나와 다시 두 번째 육아휴직을 연달아 쓸 수 있었다. 나의 공백으로 인해 회사의 우리팀은 팀장이 없는 상태로 2년 반을 보내야 했고, 그로 인해 팀원들은 미운오리새끼 마냥 챙겨주는 팀장도 없이 방황을 해야 했다.돌이켜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나는 여러 명에게 피해를 준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없던 2년 반 동안 그만 둔 사람들도 여럿이고 있던 팀이 없어지기도 하고, 없던 팀이 생기기도 하
알람시계가 따로 없다. 이제 19개월 된 셋째 딸은 안방 커튼 사이로 스며든 빛이 감지되는 순간, 즉각 잠에서 깨 모유를 달라고 칭얼댄다. 밤중 수유를 끊으면서 “캄캄한 밤에는 먹는 거 아니야, 아침이 되면 줄 거야”라는 반복 교육에 의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잠에 취해 모유를 먹여야 하는 일상의 시작은 고단하기만 하다. 남편은 한두 번도 아닌, 세 번째인데 아직도 모르냐며 하루 속히 모유를 끊으라고 성화다. 모유를 먹는 아이는 엄마한테 더 집착하고 젖을 달라고 자주 보채기 때문이다. 만날 육아하느라 힘들다고 하지 말
워킹맘, 누가 만든 단어일까? 참 고민과 사유 없이 만든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미 모든 엄마(mom)는 일하는(Working) 중이다. 전업맘이든 직장맘이든…… 지난 달 보건복지부 소속의 여성공무원 과로사 소식, 그 충격이 길어지고 있다. 육아휴직 후 복직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단다. 주 3일 야근하고, 서울 출장 다녀오고, 일요일 아침 7시 보건복지부 세종시 청사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딱 내 나이였다. 육아휴직 후 복직이었다고 하니 막내는 돌잡이한지 오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다다른다. 남은 아이들도, 가족들도 안타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