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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주인공!
  • 차희주 시민기자
  • 승인 2018.12.2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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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학기 여러 수행평가를 하지만 그 중 마음이 쓰이고 정성을 들이는 수행평가가 있다. 지난 학기에는 시사적인 논제를 가지고 토론활동을 했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자료 준비를 많이 하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이번 학기에는 연극을 했다. 그동안 배운 문학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해 연극으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대본을 쓰는 과정부터 품이 많이 들었다. 영상에 익숙한 아이들은 장소와 장면의 제한이 많은 연극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아이들은 무대 디자인을 할 수 없는 한계를 파워포인트 영상으로 보완했고, 음향효과와 배경음악 등을 삽입해 극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최대한 수업 시간을 활용했지만 연습할 시간이 더 필요했는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점심시간, 하교 후 시간까지 내서 연습을 했다. 밤늦게 교실에서 연습하는 학생을 보고 야근을 하던 선생님이 놀라 전화를 걸어온 날도 있었다. 선생님이 무슨 수행평가이기에 아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느냐며, 설마 자발적으로 하는 거냐고 재차 묻기도 했다.

연극의 전 과정은 교과 담당 교사들이 지도하고 두 시간 정도 협력 강사의 도움을 받았다. 긴 시간이 아니라 아쉽기는 했지만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보다 정교해지고 아이들도 자신감을 얻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초빙한 강사였다.

“다음 시간에는 연출과 배우 경력이 있는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아이들은 반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여자예요, 남자예요?”

“여자 선생님이에요.”

“예뻐요?”

어디에 출현했는지, 어느 작품을 연출했는지 물을 줄 알았는데, 대뜸 예쁘냐고 묻는다. 어떻게 그게 제일 궁금하냐고 물었더니 남학생들의 대답이 가관이다.

“(우리는) 남자잖아요. 헤헷.”

대상을 항상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짓고, 사람을 평가할 때 외모부터 살피는 태도의 문제점에 대해 꼰대같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연극 선생님의 미모에 꽂혀 교실은 소란스러워졌다. 학기 초, 고정희의 시 ‘우리 동네 구자명씨’를 배우면서 여성의 삶에 대해, 성 평등과 성 감수성에 대해 나눈 얘기는 어느 구석 언저리로 던져 버린 듯했다. 언제 다시 얘기를 꺼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긴 잔소리를 꿀꺽 삼켰다.

드디어 연극 선생님이 오셨다. 아이들의 기대감을 알기라도 하듯이 선생님은 눈에 띄게 빛이 났다. 새로운 얼굴이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술렁거렸고 남학생들의 움직임이 많아졌으며 선생님의 눈길을 한번이라도 더 잡아 보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배역을 맡은 남학생들은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신이 나서 무대 위를 뛰어 날았다.

한 모둠이 협력강사의 연기 지도를 받는 동안 나는 따로 연습 중인 아이들을 교실 뒤편에서 챙겼다. 그러다가 ‘선생님!’ 소리에 돌아보면 매번 나를 찾는 소리가 아니어서 머쓱해졌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 보라는 말은 귓등으로 듣고 ‘연극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데요!’ 하고 쌩하니 가 버리는 아이들. 나는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의 눈빛과 행동이 달라졌다. 연극 수업을 시작하고부터 수업 시간에 자던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배우가 되자 목소리를 높여 자신을 표현했다. 어떤 아이는 ‘탁류’의 초봉이 되고 태수가 되고 형보가 되었다. 악역인 형보 역을 맡은 남학생의 연기는 물이 올라 한 대 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실감이 났다. 돈을 탐하는 태수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여학생은 앙칼진 목소리로 야멸차고 드세게 초봉을 몰아붙이는데 어찌나 눈빛과 말투가 사나운지 절로 고개를 젓게 되었다.

‘서울, 1964년 겨울’의 사내는 죽은 아내에 대한 회한을 털어놓았는데, 역할을 맡은 남학생이 ‘아내’를 ‘여자친구’로 바꾸더니 이름을 붙였다.

“제 여자친구 이름은 희주였습니다. 봄에는 꽃구경을 가고 여름에는…….”

선생님의 이름을 넣어 각색하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냈을까? 내 이름이 등장하자 아이들이 큭큭 웃음을 터트렸고 나도 같이 웃었다. 그러나 연습할 때 터진 웃음은 발표 당일에 사라졌다. 아이들의 연기에 진지함이 스며들고 죽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떨리며 애틋하고 후회스러운 마음이 격렬해지자 모두 극에 몰입했다. 그 장면에서 나는 사내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져 왈칵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수행평가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다니……. 아이들은 선생님을 울린 연극이라고 신이 나서 곳곳에 소문을 퍼트렸고, 나는 동료 교사들의 놀림을 받았다. 놀림 좀 받으면 어떤가. 그 순간 나는 아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에 일치되었는데.

수업 시간에 깨어 있기 힘들어하고 성적이 20점, 30점대를 오가는 학생들이 연극 발표 끝에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하며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할 때 교사의 기분이 어떤지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연극 중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대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따귀를 때리면서 웃음을 참아 보려 한 여학생, 아내의 상을 당한 상주 역할을 위해 검정색 양복을 챙겨 입고 상주의 완장까지 찬 남학생, ‘이생규장전’의 이생 역할을 위해 한복을 챙겨 입은 남학생, 여장을 위해 가발을 빌려 온 남학생.

아이들의 열정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터져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열정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속에 무언가가 가득 찬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주인공이 되는 수업, 그게 당신의 답’이라고 아이들은 내게 말해 주었다. 나는 그 답을 안고 오늘도 새로운 수업을 고민한다.

차희주 시민기자  heejoo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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