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학교 앞 주점에선 한 주 걸러 한번쯤 군대가는 선배, 동기, 후배의 송별회가 있었는데 거기선 늘 전역한 남자 선배들의 군대 경험이 주된 화제였다. 훈련소에는꼭 있다는 독사 교관, 죽기 직전에 끝난다는 화생방 훈련같은 이야기가 레퍼토리처럼 반복됐고 스무 살 남짓한 여학생이었던 우리들은 PX에서 뭘 파는지에대해서도 상식처럼 알았다. 이 ‘상식’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등장했는데, 술자리 뿐 아니라 회의 자리에서도공공연하게 얘기되곤 했다. 그럴 땐 남녀공학 다닌 덕에 알고 있어서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한 적도
7살 겨울, 유치원 운동장에서 부츠를 신고 줄넘기 대회를 했다. 나와 다른 남자아이 한 명이 남았다. 친구들은 남자가 당연히 이긴다고 웅성거렸다. 1개 차이로 졌다. 나는 진 게 분할 뿐이었는데 주위에서는 여자라서 졌다고 했다.12살, 친한 친구들이 점심을 먹고 나서도 운동장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만 거의 마지막까지 남자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다가,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이내 나가는 횟수를 줄였다. 졸업하기 전 마지막 해, 운동장을 보았더니 축구 골대와 농구 골대 근처에는 남학생만 많이 있었다.13살, 학급 어린이회의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야하는가를 이야기할 때 흔히들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과 함께 다뤄지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자유놀이,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할 권리, 숲체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권감수성, 안전한 먹거리 등이 그러합니다. 하나하나 찬찬히 듣고 나면 모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이야기입니다.그렇다면 남자답게, 여자답게 자라는 모습은 어떤가요?유아 미술 분야만 보더라도 대안교육을 경험하는 아이들이 대상이 되는 형상과 손에 쥐고 있는 재료에 집중하며 미술을 익히고 있을 때에 이제 어린이집
사회적 경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회적 경제 지원조직에서 6년을 일했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로 대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회적 경제는 “공동의 이익을 목적으로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경제활동”이라고.이렇게 대답하는 나에게도 그리 와 닿는 정의는 아니다. 그래서 대체로 답하기를 회피하거나, 억지로 답해놓고 멋쩍게 웃어버리고 만다. 아주 가끔 그렇게밖에 설명 못 하냐는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긴 하다. 6년 전 사회적 경제 지원조직에서 일하고 싶어 썼던
치열한 시간들이 지났다. 작년 설날의 나와 올해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영화 의 주인공 ‘네오’처럼 나는 ‘빨간약’을 먹었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여성주의를 공부하며 과거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모두 다 뒤집어졌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겐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한편으론 내면에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가족이라는 제도, 그 안에 속해 있는 며느리라는 위치를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 명절이 면 어김없이 시가에 가지만 즐거웠던 적
“은평구 00동에 **맛집 발견!” “응암역 앞에 ~~를맛 있게 하는 집이 있어요.”맛집소개는 길동무 단체톡방에 자주 올라오는 글입니다. 길동무는 모두여성들로 이루어진 살림의료사협 소모임입니다. 나이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 이곳의 모임원들은 여성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몇 가지 공통점이 더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맛집사랑! 먹을 것을 보면 행복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길동무는 모임 장소와 먹을 메뉴를 고를 때 무척 신중합니다. 오죽하면 별명이 ‘맛집탐방 소모임’일까요?사실 모임원들을 길동무로 불러들인 가장 큰 공통점은
작년 7월,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난 엄마가 되었고, 내 삶은 정말 많이 변화했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처음 겪는 낯선 상황에 정말 혼란스러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페미니즘을 공부한 것이 정말 다행이다, 큰 복이다’ 생각했다 또 잠시 후에는 ‘내가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을까?’ 후회했다. 하지만 육아에 익숙해지고 적응이 될수록 페미니즘 공부를 한 것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가족, 마을에서 만난 페미니스트 동지들, 초보 엄마를 보며 온 마음으로 동지애를 표하며 도움을 준 수많은 선배 엄마들 덕에 초보 엄마로서의 육
“작가의 의도가 따로 있는 건데, 꼭 그렇게 비판적으로 봐야 합니까?”짜증 섞인 질문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단호하게 대답했어요.“네. 이제는 천재적인 작가가 영감을 받아서 대단한 무언가를 그려서 짠! 보여주면, ‘와, 역시 멋지다!’고 감탄하며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에요. 관객이 주체가 되어서 자신의 관점으로 작품을 대하고 느끼고 비평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2018년이니까요.”불만과 의심과 호기심이 섞인 눈빛으로 집중해 듣던 그 분은 강의가 끝나자 고백을 해왔습니다, 그 ‘위대한’ 작품들이 어떤 관점으로 그려진 것
오랜만에 누워서 남편과 함께 TV를 봤다. 돈 없이 외국에 나가 고생하는 컨셉의 예능프로그램이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물건을 팔아 그 돈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밥을 해먹는다. 한 남자가 샤워를 하고 나와 캔맥주를 따며 여자가 요리한 음식을 맛본다. 여자는 그 남자에게 자신이 만든 요리를 입에 넣어주며 반응을 살핀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무심히 지나쳤을 장면인데 그 때는 그게 지나쳐지지가 않았다. 왜 여자만 요리를 하고 있지? 갑자기 화가 났다. 남편에게 느닷없이 짜증을 내고는 채널을 돌려 버렸다.요즘 TV를 보면, 그런 것들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