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시간에 들어갔더니 남학생 김재호(가명)가 전날 결석한 사유를 적은 ‘결석 신고서’를 내밀었다. 받고 보니 ‘질병’ 결석 신고서가 아니라 ‘생리’ 결석 신고서였다. 서류를 잘못 가져간 모양이었다. 다시 써 오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우리 반 여학생들이 재호가 ‘생리’ 결석 신고서를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호 생리하니? 무지 하고 싶은가 보네.’ 하고 잠깐 웃고 넘어간 일인데 누군가 게시판에 쪽지를 붙여 놓았다.

 -오늘은 김재호가 생리를 했다. 남자가 생리하는 건 처음 본다. 김재호도 처음이겠지? 처음 하는 거라 당황했을 텐데 불쌍하다. 요즘 여성 호르몬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힘이 약해졌다. 며칠 전에는 팔씨름도 졌다. 실망이다. 자꾸 턱걸이 부심을 부리는데 이것도 다른 애들한테 질 거 같다. 오늘 많이 혼란스러울 텐데 나라도 잘해 줘야겠다.

 우리 반의 ‘센 언니들’ 중 하나인 여학생 김서인(가명)의 쪽지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오늘은 김재호의 인대가 늘어났다. 힘을 과시하면서 애들을 괴롭히더니 아주 잘 됐다. 역시 하늘은 공평하다. 오늘은 나한테 호신술을 가르쳐 주었는데 자기가 만든 거라고 한다. 딱 봐도 구라인 것 같다. 언제 철들 건지 궁금하다. 내가 언제 철들 거냐고 물으면 무겁게 철을 왜 드느냐고 하겠지? 김재호는 존나 뻔하다. 

 재호의 반응은 허허 웃음이었다. 우리 반의 ‘센 언니들’은 목소리가 우렁차고 움직임이 크고 웬만한 어른은 대적하기 힘든 눈빛을 쏘아 댄다. 남학생들을 ‘좀’ 다룰 줄 아는 이 언니들이 ‘야, 좀 해.’라고 말하면 어떤 남학생도 당해 내질 못한다. 지는 건지, 져 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학생이 진다.

 문과반은 대부분 여학생 수가 남학생보다 많다. 남학생들은 변방에 머무르려 하는 것 같다. 맨 뒤에 앉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남학생들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노래를 부르거나,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추거나, 게임을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하는 식으로 공부 말고 다른 일에 관심을 두고 시간과 공을 들였다. 공부 말고 ‘재미있는 일’이 있다는 항변 같기도 했다. 반면에 여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공부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게 안심이 되어서라고나 할까. 

 남학생들의 학력은 점점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문과반은 상위권 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여학생이 많고, 이과반도 상위권에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학교의 모든 활동은 꼼꼼하게 챙기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일목요연하게 말할 줄 아는 학생에게 유리하다. 공감 능력이 높고 섬세한 여학생들이 더 잘 하는 게 당연하다. 여학생들은 선생님의 기분을 잘 살피고 눈치가 빨라 분위기 파악도 잘 한다. 이에 비해 남학생들은 인정 욕구는 강해 보이는데 그 대상이 꼭 선생님이어야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인정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고 그게 꼭 성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아이들도 있다. 안타깝지만, 학교의 많은 활동이 남학생의 기질에 맞지 않아 남학생의 학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학기 초부터 남학생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왁자하게 떠드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인데 가끔 어른 뺨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어색한 말하기는 싫고, 그럴듯하게 꾸며 내야 하는 발표 수업은 더 싫고, 손으로 만들기는 취미에 안 맞고, 색깔 입혀 그리고 꾸미는 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고, 글쓰기는 ‘죽을 만큼’ 힘든 남학생들을 어찌 해야 하나. 

 우리 반 김재호와 상담하면서 나는 운동에 대해 물었다. 

- 무슨 운동 좋아해? 

- 운동은 다 좋아요. 

- 요즘은 어떤 걸 하는데?

- 요즘은 주짓수를 하는데 재미있어요. 

- 운동할 때가 제일 재미있어?

- 네. 그런데 다친다고 부모님이 싫어하세요.

 나는 뭐든 좋아하는 일이 있는 아이는 걱정이 안 된다.

- 버피는 매일 하니? 1분에 몇 개나 해?

- 버피를 아세요?

- 당연하지! 데드리프트 중량은 몇 킬로야? 루마니안 데드리프트를 하니?

 몇 년간 수강한 살림의료사협의 운동 수업에서 배운 지식으로 재호에게 아는 척을 해 보았다. 점수가 9등급 나온 전국연합평가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남학생들은 생각이나 느낌보다 행동이나 방법을 물어 보고 추상적인 질문은 피하는 게 좋다. 물론 감정을 드러내는 단어의 사용도 어색해한다.

- 재호는 운동을 잘해서 좋겠다.

- 선생님, 오늘 체력 단련실에서 탁구 치셨죠?

체육 교사가 새로 단장한 체력 단련실을 점심시간에 보여 주었다. 내친 김에 탁구 한번 쳐 보라고 해서 생전 처음으로 탁구 라켓을 잡았는데 재호가 그것을 보았던 것이다.

- 제가 딱 보면 아는데요, 탁구에 소질이 없으신 거 같아요.

나는 재호 기를 살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재호는 내 기를 죽인다. 어쨌든 오늘 내내 재호는 ‘뻐기는 어깨’가 된 것이 사실이고, 그렇게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재호를 보았으니 내 어깨가 좀 처지면 어떠냐 싶다. 

 

이 글을 쓴 차희주님은 은평주민이자 성사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학교 생활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내는 교실 속 우리아이들 이야기를 은평시민신문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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