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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조리원에서 젖 짠 얘기
  • 우군
  • 승인 2019.06.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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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 학교 앞 주점에선 한 주 걸러 한번쯤 군대가는 선배, 동기, 후배의 송별회가 있었는데 거기선 늘 전역한 남자 선배들의 군대 경험이 주된 화제였다. 훈련소에는꼭 있다는 독사 교관, 죽기 직전에 끝난다는 화생방 훈련같은 이야기가 레퍼토리처럼 반복됐고 스무 살 남짓한 여학생이었던 우리들은 PX에서 뭘 파는지에대해서도 상식처럼 알았다. 

이 ‘상식’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등장했는데, 술자리 뿐 아니라 회의 자리에서도공공연하게 얘기되곤 했다. 그럴 땐 남녀공학 다닌 덕에 알고 있어서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최근에 오랜만에 그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것도 생뚱맞은 장소인 조리원에서. 

나는 두 달 전에 출산을 했다. 조리원에 누워있을 때 동네 지인에게 카톡으로 축하인사와 함께 두유를 받았다. ‘음? 왜 두유?’ 출산 선물로 두유는 생소한지라 의아했다가 곧 이유를 알게 됐다. 모유 수유하는 여성에게 부족한칼로리를 채워주는 간식으로 두유만 한 것이 없다. 나는 매일 밤 모유 수유나 유축을 할 때 두유를 먹으면서 미리 경험한 사람이 주는 무언의 응원에감탄했다.

나는 당사자인데도 출산 후 내 삶이 모유 수유와 젖 관리에 지배당할 거라고 상상하지못했다. 아기를 낳기 전 나는 모유 수유란 그저 분유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아기 밥의 옵션인 줄로만 알았다. 포유류인 인간 여성은 출산 후 아기가배가 고플 두어 시간에 한 번씩 젖이 차오르게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아기가 먹어주지 않으면 기계로 짜내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젖몸살이 와서 엄청나게아프다. 그것을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밤마다 눈물로 두유를 꺼내 먹으면서 그 때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모유수유와 사투를벌이고 있을지 떠올렸다.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말이다. 출산한 여성들은 다 겪은 일이고 옆에서 지켜본 파트너와 가족들도 아는 일이라면 이 경험은‘지식’이 아니라 ‘상식’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경험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임신과 출산에 관한 지식이 당사자들 밖으로 유통되지 않는다는것이 이상했다. 마치 유년시절 학급의 반을 차지하던 여학생들이 생리에 대해서 ‘그것’이라 지칭하며 숨겼던 것처럼. 

그러면서 십년 전 들었던 군대 얘기가 떠올랐다. 군대에 가지 않은 나도 군대에서 축구한얘기를 그렇게나 많이 들어왔는데 출산하고 유축 한 얘기는 왜 어디서 듣지 못한 걸까? 내가 군대 내 의문사 문제를 담은 영화 <신과 함께>에공감하고, 군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군대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적인 경험, 공적인 지식으로 체화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임신, 출산의 경험이 공적인 지식이 된다면 임신한 여성에게 출퇴근이 얼마나 힘든지,그래서 왜 대중교통에 임산부 좌석이 필요하며 직장에서 임신 출산 단축근무와 유연근무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변화를 만들기 쉬울것이다. 그러니 임신과 출산의 경험도 ‘은밀하지 않게’ 좀 더 대놓고 얘기 해야겠다. 젖 짜는 얘기, 젖 물리는 얘기를 작정하고 이곳 저곳에서떠들고 다닐테다. 군대에서 축구하는 얘기를 여학생들이 들었던 것처럼, 조리원에서 젖 짜는 얘기를 직장 상사와 동료, 임산부석에 앉은 그 남자,아동수당이 포퓰리즘이라는 인터넷 워리어들이 일상의 지인들로부터 많이 많이 듣도록 말이다.

※이 글을 쓴 '우군'은  구산동에 살고 녹번동에서 일한다. 연구소를 운영하고 텃밭농사를 지으며 귀촌하려고 마음먹은지 몇 년째다. 두 달 전 아기를 낳았다. 페미니스트 엄마로서 어떻게 잘 살 것인가 궁리하고 있다.

 

우군  annyung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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