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오랜만에 누워서 남편과 함께 TV를 봤다. 돈 없이 외국에 나가 고생하는 컨셉의 예능프로그램이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물건을 팔아 그 돈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밥을 해먹는다. 한 남자가 샤워를 하고 나와 캔맥주를 따며 여자가 요리한 음식을 맛본다. 여자는 그 남자에게 자신이 만든 요리를 입에 넣어주며 반응을 살핀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무심히 지나쳤을 장면인데 그 때는 그게 지나쳐지지가 않았다. 왜 여자만 요리를 하고 있지? 갑자기 화가 났다. 남편에게 느닷없이 짜증을 내고는 채널을 돌려 버렸다.

요즘 TV를 보면,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거의 모든 예능프로그램의 MC들은 남성이다. 남자들만 나와서 수다 떠는 <알쓸신잡>, 남자들만 나와서 게임하는 <신서유기>, 남자들만 나와서 여행가는 <꽃보다 청춘> 등 셀 수 없이 많다. 왜 여성의 목소리는 없을까?

 최근 몇 년 사이에 ‘페미니즘’이라는 말들이 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무척 반가웠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몇 주전 술자리에서 여성의 비혼에 대한 이야기로 공방이 있었다. 엄마들 몇 명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아빠가 대화에 들어왔다. 여성의 비혼을 회피라고 했다. 가부장제의 틀 속에 들어와 싸우지 않고 비겁하게 피한 것이라는 뜻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기로 한 선택을 철저히 남성 중심에서 해석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게 아니라고,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라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비겁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 아빠는 이해할 수 없는 듯 했다. 더 이야기를 하면 언성이 높아 질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이불킥’을 했다. ‘아! 그 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왜 말을 못했지?’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나에겐 언어가 없었다. 무엇이 내 생각인지, 상대의 말을 어떻게 반박해야 하는지 말문이 막혀있었다.

삶은 간단치가 않다. 신념과 생활의 간극이 클수록 힘이 든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가 싫다. 시어머니를 존경하지만 며느리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싫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내 신념과 생각대로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자꾸 불만을 늘어놓는다. ‘왜 명절에는 여자들만 일해야 돼?’, ‘왜 가사노동은 대접받지 못하는 거야?’, ‘왜 아이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지 않지?’, ‘왜 예능에는 남자들만 나오는 거야?’ 대안 없는 비판은 무의미 하다고 하지만 나는 우선 그렇게 시작했다. 그것이 나의 투쟁이고 실천이다. 아니 그렇게 이름 붙이고 싶다. 불만이 없다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이다.

내가 세상에 던진 불만들은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는 너는 어떻게 살고 있는데?’ ‘너는 네 생각대로 살고 있니?’ 나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생각대로 살고 있는지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겠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에서 10주간에 걸친 여성주의 학교를 개강했다고 하길래 얼른 등록했다. 페미니즘 서적 20여권 정도를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잘못된 구조와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 침을 튀며 말하고 있다. 아들에게도 틈날 때 마다 고정된 성역할을 뒤집는 다른 시각들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매 순간마다 깨어있지 않으면 안되는 힘든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남편에게 제사 음식은 원래 남자들이 장만하고 차렸다더라 하는 기사들을 퍼 나르고, 페미니즘 책에서 읽은 주옥 같은 글귀들을 사진 찍어 보내도 ‘읽씹’당하기 일쑤이다. 지금은 예민하다는 소리를 듣고 전혀 공감받지 못하는 상황뿐이다. 그렇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싸우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싸워야만 드러나는 현실이 있다. 세상은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아주 견고한 경계선을 그어 놓았다. 경계선을 밟았을 때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경계선을 밟기 전에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느낄 수 없다. 그 경계선 안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서 우리는 선 밖으로 나가 있는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경계선은 누가 만든 것인지, 왜 그 경계선이 필요한지, 왜 경계선 안에만 있어야 하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느끼는 이런 상황들이 정의롭지 않고 힘들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 힘들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조가 잘못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없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

그게 불평불만처럼 들릴지라도, 누군가에겐 친절하지 않은 말일지라도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
나의 목소리, 너의 목소리,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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