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살아가기 8]

첫째 때는 누려보지 못한 무통천국 속에서 평온하게 출산하게 된 둘째 딸. 아이가 자랄수록 이목구비는 말할 것도 없고, 피부 톤, 다리 모양 등 놀랍도록 나를 닮아가는 모습에 유전자의 위대함을 느낀다.

나는 어릴 때 손에 사마귀가 참 많이 났었다. 그때는 민간요법으로 엄마가 머리카락을 뽑아 사마귀를 꽉 묶어 놓으면 일주일 정도가 지나 사마귀 색깔이 하얗게 변했다가 까매지면서 똑 떨어진다. 사마귀를 묶을 때 엄청나게 아프다는 것과 손 여기저기에 까만 머리카락이 붙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마귀 떨어진 자리가 동그랗게 흉으로 남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닮아도 어째 그런 것만 닮는지... 몇 달 전에 손가락에 사마귀가 나서 피부과에 가서 냉동요법으로 사마귀를 제거했다. 아이는 죽는다고 울고불고 소리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다른 자리에 나기 시작하는 사마귀를 발견! 에이, 뭐 이런 걸 닮고 그래! 다시 한 번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하는 아이를 꽉 안고선 나도 모르게 “미안해”를 외쳐대고 있었다. 엄마의 사마귀를 닮게 해서 미안해!

그러고 보니 둘째 녀석은 나와 외모와 체질만 닮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야무지지 못해서 늘 물건을 흘리고 다니고, 무언가를 잘 쏟고, 엎지르고, 때문에 엄마한테 늘 야무지고 여성스러운 언니와 비교 당하며 타박을 받던 나. 그런 나와 놀라울 정도의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둘째 딸.  

“엄마, 언니는 잘 하는데, 나는 왜 못해?”

작년 12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수영 강습에서 서서히 레벨차이가 나기 시작하자 수영을 그만 배우고 싶다는 7살 둘째딸의 목소리다. 한 살 차이의 언니는 평형에 들어가는데 동생은 아직 자유형 팔 젓기, 숨쉬기가 잘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고 늘 같은 내용의 강습만 받다보니 지치기도 했을 테고, 언니와 차이가 벌어지다보니 자신감도 떨어지면서 수영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 같다. 애초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건 물을 너무나 좋아하는 둘째 녀석 때문이었는데...

답답하던 차에, 친정언니와 만나 이 이야기를 하니, 언니가 대뜸 “왜 그럴까? 즈이 엄마를 닮았으면 수영 잘 할 텐데?”하는 게 아닌가? 하하. 언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수영을 잘 하지 못하는데? 수영을 꾸준히 다니기는 했지만, 나또한 자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함께 배운 친구들은 쭉쭉 치고 올라가는데 나만 새로 온 친구들과 함께 다시 자유형을 배우고 있었던 기억.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던 기억하기 싫은 기억. 언니는 내가 꾸준히 수영을 다닌 것만 기억할 뿐 실력에 대해선 잘 몰랐던 거다.

야무진 첫째에 비해서 덜렁거리기 일쑤인 둘째의 행동들에 나도 모르게 한 숨을 쉬거나, 첫째와 비교하는 멘트를 날리던 내 모습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니면서 반성의 시간을 갖어 본다. 내가 엄마의 타박을 받았을 때 얼마나 억울한 심정이었는지 떠올랐다. ‘내 나름으론 열심히 했고, 조심했고, 노력 했는데 안 되는걸 어쩌라고!!!’ 외치던 속마음. 

우리 둘째 덕에 다시 살게 된 나의 유년 시절이라 생각하자. 잘 살아내지 못한 인생의 한 조각을 다시 잘 끼워 맞춰 살아보라고 분신과 같은 아이가 나에게 온 것은 아닐까? 똑같은 유전자로 지금의 내 모습과는 다른 내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에 둘째에게 던진 칭찬 한 마디에 질투쟁이 첫째가 토라진다. 

“나보다 못한 거 같은데 왜 칭찬해?”

하아, 남편 유전자를 고대로 가지고 나온 저 녀석은 또 어떻게 키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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