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살아가기 5]

직장맘인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고, 감사하게도 첫째의 육아휴직이 끝날 때쯤 둘째가 나와 다시 두 번째 육아휴직을 연달아 쓸 수 있었다. 나의 공백으로 인해 회사의 우리팀은 팀장이 없는 상태로 2년 반을 보내야 했고, 그로 인해 팀원들은 미운오리새끼 마냥 챙겨주는 팀장도 없이 방황을 해야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나는 여러 명에게 피해를 준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없던 2년 반 동안 그만 둔 사람들도 여럿이고 있던 팀이 없어지기도 하고, 없던 팀이 생기기도 하였다. 감사하게도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내 책상은 없어지지 않았고, 다시 복직을 하게 된 나는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육아를 해 놓고,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어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롤모델’이라고 불린다. 롤모델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줘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의사에 의해 결정할 수 없는 조건이다. 육아휴직을 주지 않는 회사도 많고, 육아휴직을 핑계로 퇴사를 종용하는 회사도 많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휴직임에도 내가 낸 고용보험료에서 육아휴직비를 받을 수 있음에도 육아휴직을 주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리는 회사들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경단녀(경력단절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가. 슬픈 현실이다.

둘째, 첫째 아이를 낳은 후에 바로 연달아서 둘째 아이를 낳아야 한다. 첫째를 낳고 복직을 했다가 둘째로 인해 다시 휴직을 하는 일이 있으면 그땐 더욱 복직하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둘째 아이가 생기는 시점은 하늘이 점지해 주시기 때문이다. 연년생 둘째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성공한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셋째, 회사에서 육아휴직 후에 복직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없애버리지 않아야 한다. 휴직은 했으나 복직할 시기에 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거나, 회사의 일이 줄어들어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어지거나, 팀 전체가 증발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면 나의 복직은 저멀리 사라져버리게 된다. 이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회사의 사정과 국가의 사정, 심지어 세계경제의 사정과 시대적 배경이라는 거시적인 조건이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복직을 해서 회사를 다닐 수 있도록 육아를 담당해주는 사람이 있어야한다. 이는 앞의 첫째, 둘째, 셋째 조건만 충족된다면 얼마든지 개인의 의지로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다. 가까이 사는 부모님께 부탁을 드릴 수도 있고 어린이집에 맡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사는 부모님도 안계시고 어린이집에 오래 맡기는 것이 싫다면 본인이 직장맘이 되고, 남편을 육아대디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다섯째, 직장맘이 되기 위한 마지막 조건은 ‘건강’이다. 앞의 네 가지 조건들이 충족이 된다고 해도 출산 이후의 본인의 신체건강의 회복이 더디다면 또는 더욱 악화가 되었다면 절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육아도 힘들지만,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장시간 컴퓨터 사용으로 인하여 멀쩡하던 허리가 아파지고, 손목은 터널증후군이 생기며, 서서 일해야 하는 경우 다리가 붓고, 전신이 아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출산으로 인해 내려간 건강수치를 원점으로 돌린 후에 직장에 복귀해야 한다.

나는 이런 조건이 모두 갖추어진 덕분에 복직을 할 수 있었고 예전과 같이 다시 일을 하고 있다. 로또 당첨도 이보다는 쉽지 않을까? 누구나 마음 편히 육아휴직을 쓰고 복직을 당연히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