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살아가기 6]

첫 아이를 낳으며 갑자기 ‘엄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초보엄마와 처음 세상에 나온 아기의 좌충우돌은 가히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고군분투하며 영아기를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여유가 찾아왔다. 그러자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공허함이 가슴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전업주부의 미래를 상상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사회에서 요구하는 (경제적인) 몫을 해 내는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소위 말하는 ‘경단녀’가 되어 버렸고 사회와 멀어져갔다.

어린 아기와 24시간 함께하면서 현재를 충실히 메워내는 것 이상의 것을 할 수는 없었다. 이미 과거의 경력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기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익혀야 했다. 하지만 집중하고 앉아서 공부나 자기계발에 시간을 쏟을 처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당장에 취업시장에 뛰어들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어차피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엄마의 손이 필요한 터였다. 어떤 준비를 해 놓아야 할지도 몰랐고 그게 언제 쓸모 있어질지도 모르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미래 앞에서 막막했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난 뒤 무능하게 남겨지기는 싫었다. 마음은 다급한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어있는 기분에 나 자신이 하루하루 시들어간다고 느꼈다.

 

"책은 육아에 지쳐 굳은 머리와 가슴을 적셔준 단비.

자녀와의 대화를 만들어준 책은 고마운 존재."

그 때 찾아온 빛이 바로 책이었다. 어린 시절 책을 참 좋아했지만 학창시절과 대학, 직장생활을 거치며 일상에 많이 치었던 것 같다. 그 동안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핑계로 가까이 하지 못했던 책을 다시 잡았다. 나에게 책은 탈출구였다. 육아에 지쳐 굳어있던 머리와 가슴에 단비를 적시는 해갈의 기운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책벌레’라는 독서모임에서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과 함께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며 아이 엄마로서가 아닌 ‘나 자신’이 오롯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 속에서 ‘나’를 찾아내고 앞으로 내가 갈 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던 책들이 점점 늘어났다. 어떨 땐 책을 읽고 난 뒤 남은 감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글로 남기곤 했다. 책벌레 회원들과 함께 글을 써서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작년에는 벌써 두 번째 책을 발간했다. 처음엔 아이를 달래가며 책 한 권 읽기도 버거웠는데 어느 새 책을 만드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책과 함께하며 나 자신이 많이 성장한 것을 느낀다. 예전엔 빨리 아이를 키우고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조급했었지만, 꼭 돈을 벌어야만 사회인으로서의 역할과 능력을 다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면을 진실되게 채울 수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지위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직업을 통한 자기계발을 이룰 수도 있지만 책으로 지식과 마음의 풍요를 얻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동안의 독서로 인한 내공의 축적으로 어떤 능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 큰 아이가 자라 한글을 조금씩 읽어나가려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책의 힘이다. 엄마 무릎에 앉아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재잘대던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고 엄마와 감상을 나누는 날이 올 것이다. 이토록 책은 나 스스로의 내면과의 대화뿐 아니라 아이와의 대화의 길도 열어주었다. 과거엔 엄마로서의 나와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분리해서 스스로를 좌절시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과 함께라면 누구와도 마음이 통하는 길잡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책을 통해 엄마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 책과 함께 성장하고 꿈꾸는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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