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시계가 따로 없다. 이제 19개월 된 셋째 딸은 안방 커튼 사이로 스며든 빛이 감지되는 순간, 즉각 잠에서 깨 모유를 달라고 칭얼댄다. 밤중 수유를 끊으면서 “캄캄한 밤에는 먹는 거 아니야, 아침이 되면 줄 거야”라는 반복 교육에 의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잠에 취해 모유를 먹여야 하는 일상의 시작은 고단하기만 하다. 

남편은 한두 번도 아닌, 세 번째인데 아직도 모르냐며 하루 속히 모유를 끊으라고 성화다. 모유를 먹는 아이는 엄마한테 더 집착하고 젖을 달라고 자주 보채기 때문이다. 만날 육아하느라 힘들다고 하지 말고 하루 속히 아이를 독립시키라는 말이다. 물론, 남편 말이 맞다. 그러나, 큰 아이가 10살이 되고, 둘째 아이가 7살이 된 지금 그 아이들의 아기 시절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는지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요즘, 엄마와 밀착되는 지금 이 순간을 힘들더라도 오래 누리고픈 마음이다. 

아이들이 집 앞에서 놀아도 안심,
이웃 눈총 없는 곳에서 키우고 싶어

기저귀를 갈고 뽀송해진 엉덩이에 뽀뽀하기 등 뒤에 업혀서 폭 잠든 아이의 숨결 느끼기, 아이의 조막손을 움켜쥐고 “휘은이 손은 만두손, 엄마손은 찐빵손~”하면서 까르르 웃어 재끼기,  매일 밤 내 배위에 올라와 엎드려 눕는 아이의 머리 쓰다듬으며 재우기, 시시때때로 아기인 동생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큰 아이들의 모습 기분 좋게 감상하기 등등.

지금 이 순간, 육아하는 동안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혹자는 “육아가 체질 인가 봐요?”라고 할지 모르겠다. 아쉽지만 그에 대한 답은 “노”다. 2014년 7월, 은평에서 경기도 광주 퇴촌으로 이사를 왔다. 당시 시댁 형님네가 먼저 1년 전쯤 먼저 이사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고 매일 층간소음으로 아래층과의 갈등을 빚으며 지내던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전세가에 은평구 내에서 살자고 하면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현실을 피할 수 없음에 숨이 턱 막혀왔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좀 더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서울보다는 집값이 저렴한 이곳으로의 이사를 결정하는데 이르렀다. 처음으로 도시를 떠나 사는 삶이라 낯설고 도시만큼의 편의시설, 교통편이 부족한 곳이지만 아이들이 집 앞에서 놀아도 불안하지 않고 이웃들의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 만족이 우리를 방심하게 했던 모양이다. 덜컥 셋째가 생겼다. 첫째 아들, 둘째를 딸로 두고 있어서 아들만 둘인 형님네랑 딸만 둘인 동서네에 형님은 딸을, 동서네는 아들을 한명씩 더 낳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시어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우리의 임신소식에 심드렁한 표정이셨다. 친정도 멀어서 도와주지도 못 할 텐데 하며 축하보다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셨다. 

하지만 값없이 받는 새 생명의 귀함을 너무 잘 알기에 남편과 나는 당연히 아이를 감사히 여기면서 기쁘게 맞이하기로 마음먹었다. 둘째와 4살 터울이라 새로 태어난 셋째 딸은 더없이 사랑스럽고 예뻤다. 하지만, 육아는 매번 힘들다. 잠 못 자고 모유를 먹이고 우는 아기를 수시로 달래면서 아기의 패턴에 따라 움직이는 일상은 결코 녹록치 않다. 첫째, 둘째 때는 친정이 가까이 있어서 간혹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었지만 친정과 멀리 떨어진데다 남편은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낮과 밤이 바뀐 채 출퇴근을 해야 해서 상황은 심각한 독박육아와 살림체제로 돌아갔다. 더군다나 낯선 동네에서 마음을 둘 벗조차 없어서 얼마나 암담했는지 모른다. 

급기야 막내가 돌이 되기 직전, 우울증이 오고 말았다. 숨 쉬는 것조차 싫었고 매순간 ‘왜 살지?’하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육체적 에너지가 떨어지면서 정신도 피폐해진 것이다. 밥 차리는 일조차 어려울 만큼 일상이 무너지고 말았다. 눈물이 끝없이 솟구치고 분노가 복받쳤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남편이 무엇이 문제인지 심도 있게 살펴보자 했고 하나하나 짚어보니 결국 육아로 인해 많이 지쳤다는 자체진단을 내리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내 아이도 사랑할 수 있어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살아야겠기에 그래야 아이들을 온전히 보살피고 우리 가족이 제대로 된 하루하루를 살겠구나 싶었기에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는 한 달이 넘게 엄마와 떨어지는 순간 목청이 터지게 울어댔고 그 하루하루가 천년처럼 길게 느껴질 정도로 괴로웠다. 독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다. 어느덧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닌 지 반년이 되었다. 이제는 용케 잘 적응해서 엄마보다 선생님을 먼저 따르게 되었으니 감사하기만 하다.

한동안 ‘나는 바른 엄마인가?’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어린 아이를 보육기관에 맡겨야 했는가하는 물음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하는 아픔. 하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 육아를 즐길 수 있고 하루하루 크는 게 아깝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아이와 동떨어진 시간을 가지고 나의 인생을 돌아볼 여유를 잠시나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암묵적으로 엄마들에게 ‘헌신’을 강요한다. 엄마가 되면 자기 인생은 내려놓는 게 맞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그래서 수많은 엄마들이 자신을 버린 인생을 사는 게 진짜 좋은 엄마, 바른 엄마의 길이라 여기며 견디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로선, 내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자존감이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날이 갈수록 절실히 깨닫게 된다. 

훗날, 아이들에게 “너희는 엄마처럼 살지 마~”라며 자녀 양육과 살림을 터부시하며 자녀들의 존재가치하게 하는 엄마이기보다는 “살아보니, 엄마로 산 지난 삶이 모두 행복했어. 너희도 엄마처럼 살아”라고 말할 수 있는 멋진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 자신과 내 아이를 함께 돌보고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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