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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프렌드, 이젠 좀 알 것 같아...
  • 장보성 / 작공 교사
  • 승인 2020.01.2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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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공>이 갈현동 시대를 마감하며 주민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Dear My friend, 00짱!

학교 밖 아이들, 우리들의 아이들 이야기를 쓰려고 컴을 켰다네. ‘작공’ 문을 닫고서도 그예 헤어지지 못하고 카페에 앉아 아이들 이야기로 울고 웃고 한숨 짓다 찡한 마음으로 헤어졌듯, 아이들 이야기는 늘 끝이 없지 않은가? 지난 주 은평의 징검다리거점 공간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어. 난 현장을 오래 지키고 있는 연식이 된 교사로 경험을 나누게 되었다네. 혼자서는 지키기 힘든 현장, 동료의 소중함으로 이야기를 맺었는데 자네 생각이 많이 났다네. ‘내게는 이런 귀한 동료가 있는데, 당신들은 어떤가요?’라고 묻고 싶었어. 아마 자네는 나의 자랑이었던 모양이야.

자네가 작공을 떠난 지 2년, 그 사이 자네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우리들의 그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었네. 자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려 하네. 이해해주길 바라네.

2017년 늦봄이었어. 생전 지각하지 않는 자네가 20여분 늦었지. 눈이 퉁퉁 부은 채 내 눈을 피하는 자네를 못 본 척 하느라 사실 나는 애를 좀 먹었다네. “선생님,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그 해 우린 한 아이를 잃었고 이생에 특별한 삶을 선택해온 아이들을 또 많이 만나게 되었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에게 생일은 버려진 날이죠.’ 새로 만난 아이들이 말간 얼굴로 내뱉는 이 덤덤한 대사에 우리는 수도 없이 무너져 내렸지.

자네가 눈이 퉁퉁 부어온 아침, 그 후 한 달이 지나 자네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17살 00가 눈에 마음에 밟혀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 남편에게 그 아이를 입양하면 어떻겠냐고 여러 차례 운을 뗐다지? 남편은 아직 아이도 없는 신혼에 게다가 집도 좁은데, 그것도 그렇게 큰 아이를 입양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거냐 응수했고, 자네는 언쟁을 하다 뛰쳐나가 술을 한 잔 했다 했어. 그리고는 집에 들어가 마음 속 날 것의 언어로 편지를 써 식탁에 펼쳐놓고 잠이 들었다 했네. 

‘너에게는 엄마가 있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 너에게는 아빠가 있다. 나에게도 아빠가 있다. 너에게는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 빨래를 해주던 엄마가 있었다. 그런데 00에게는 그런 엄마가 아빠가 있으면 왜 안 되냐? 나는 열 일곱살 00에게 스무 살 되기 전 그런 삶을 살 게 해주고 싶다’ 

내 기억 속 편지 내용은 이러하네. 출근 전 식탁 위에 경고장처럼 놓인 편지를 보고 남편은 퇴근 후 돌아와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 몰랐다. 정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원한다면 생각해보자. 작공 동료선생님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한테도 물어보고”라고 했다지?

난 사실 그 때 조금은 놀랐네. 아이들에게 쏟는 자네의 진정어린 정성은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입양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네는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네. 그런데도 난 자네에게 이렇게 말했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작공 선생은 우리들이 만나는 아이를 입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다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은 또 선택받지 못했다는, 버려졌다는 아픔을 느끼면 어떡할 건데? 적어도 지금은…” 자네가 울면서 말했지. “그러니까요.. 그래서 제가 작공을 그만두고 이사를 가서...” 

자네가 작공을 떠난 다음 해 1월, 나는 아이들과 인도여행을 갔어. 자네 눈에 유난히 밟히던 그 아이와도 함께 갔다네. 인도 비자 신청서에는 어머니 이름을 적는 란이 있어. 나는 그 아이 어머니 이름에 주저 없이 자네 이름을 적었다네. 나이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많이 젊은 엄마였다네.

자네는 심리상담 전공자였지만 작공에서는 청소에 설거지, 밥해 먹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어. 하지만 자네는 작공에서의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해 한 번도 반문하지 않았어. 시도 때도 없이 사고치고 배고프다 아우성인 아이들, 다음 달 임대료를 걱정해야 하는 재정상태, 나아지기는커녕 다양하게 변주되는 사건사고, 끊이지 않는 동네 민원. 둘이서 해내기에는 지나치게 버라이어티한 나날이었어.

00짱, 작공을 떠나며 자네가 말했어. “선생님, 저는 작공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전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았어요. 그래서 더 쏟을 게 없어요.” 난 자네를 잡을 수 없었어. 작공을 떠나야만 자네가 자네만의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 작공 아이들과 있으면 우주에서 자네를 만나기를 기다리는 아이 자리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어. 

00짱, 자네와 함께한 작공에서의 2년 반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에 온기가 더해지는 화양연화라네. 고양이를 좋아하는 자네처럼 그 아이도 다른 친구들이 키우다 버거워 보낸 고양이, 길양이들을 키우고 있다네. 고양이들 이름이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일용할 양식들이었네. 지난주에는 레미제라블 대본을 같이 읽으며 놀았네. 이미 청년이라네.

작공을 떠나며 자네가 말했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을 때가 많다고. 그래서 남은 내게 미안하다 했지. 그런데 00짱! 우린 이미 알고 있었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법을 말이야. 밑 빠진 독을 물에 풍덩 담그는 것! 이것 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법이 있을까?

00짱, 자네가 그 물이었네. 그 물로 항아리들이 꽉 찰 수 있었어. 작공은 이사를 했다네. 꿈에 그리던 공간이 생겼다네. 은평으로 한 번 날아오게. 

<청소년도서관 작공은 밥과 어른 친구가 있는 인생배움터 입니다. 학교밖청소년들의 징검다리 거점공간이기도 한 작공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날마다 사랑과 우정을 경험하며 함께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장보성 / 작공 교사  lazybird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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