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이 찌그러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차가 왔다 가고 경찰들이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어?  그래도 이건 아니지.' 경찰들과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난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갈 곳이 없니?"
여자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네."
"그럼 도서관으로 와라."
"그래도 돼요?"
"선생님들과 의논해서 연락할게."


아이들은 나에게 언제부터 가도 되냐고 몇 번을 물었다.


"그래 7월 22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6시부터 9시까지 있어보자."


처음에 별 생각 없이 한 제안이었다. 그냥 도서관에서 쉬라고  갈 곳이 없으면 와있어도 된다는 생각에 그 시간에 도서관에 있어 줄 4명의 자원봉사자만 확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탁영 샘 김다현 샘 송순아 샘 나 이렇게 4명이 그 시간 봉사를 하기로 하고 아이들에게 오라고 이야기했다.

약속한 날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아이 셋이 들어왔다. 아무리 화장을 해도 애띤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헉 ~ 너무도 이뻤다. 아니 이렇게 이쁜 아이들이……


"너희가 전부니?"
"'아뇨 남자아이들도 올 거예요."


30분 정도 지나자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아이를 선두로 어디에 끌려가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줄줄이 들어왔다. 아이들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오라고 한다고 와 준 아이들이 기특했다. 은광지역아동센터에서 공수 받은 빵과 음료를 나누어 먹고 아이들의 이름을 물어봤다. '전 양구예요' '전 방구이고요' 한다. 아이들은 선뜻 자기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빵으로 간신히 어색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난 용기를 내어 아이들에게 물었다.


"우리 도서관에서 9시까지 있을 수 있는데 혹시 하고 싶은 게 있니?"
"정말 9시까지 있을 수 있어요?"
"우리끼리만 있는 거예요?"
몇 번을 묻더니 "그럼……"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쓰기 시작했다.
밥먹기 숙박 영화. 컴퓨터……. 아주 서툰 글씨로 똑같이 써냈다.
"밥이 먹고 싶니?"
"네."
"배가 고프니?"
"네."
"영화를 보고 싶으니?"
"네."
"무슨 영화가 보고 싶니?"
"아무거나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찍어보는 것을 제안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럼 우리 맛있는 밥을 먹고 밥집을 찍으러 다니면 어떨까?"
"밥집이요?"
"그래 청소년이 갈수 있는 맛있는 밥집. 그걸 찍는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아이들한테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의 즉각적인 제안에 나도 당황하면서도 아이들이 하기 싫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데……
노랑머리를 한 아이가 "밥집 찍으러 다니는데 우리한테 돈 받는 거 아니죠?" 하고 묻는다. 나와 눈을 맞추며 묻는 아이 2시간만에 처음 아이가 눈을 맞춘다. 그 아이에게 자신있게 이야기했다.(대책은 없었지만)


"이 나이에 너한테 돈 받겠니?"
"어! 맘에 드는데." 한다.

▲ 아이들과 처음 만난 날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메모지  
▲ 아이들과 처음 만난 날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메모지  

 

그렇게 시작됐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노랑머리가 한다고 하자 ‘너가 한다면……’ 하고 아이들이 자기 전번(전화번호)을 써주기 시작했다. 그 노랑머리가 바로 서켠이다. 그렇게 시작한 만남. 그래서 난 서켠이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그 순간 그 아이의 결정이 우리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기에. 그 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긴장했던 그 순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갈 곳 없고 놀 것이 없어보여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에 와 쉬라고 제안하면서 만나게 된 아이들 이 아이들은 이후 내 삶에 아주 깊숙이 들어온다. 그동안 나와 사람들 그리고 사회가 투명인간 취급하던 청소년 그들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도서관 10년 활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들의 이름은 실명보다는 인터넷 표기법으로 쓰려고 합니다.)
                                                                                                                                   

*이미경 (꿈나무도서관 실장)

2000년 꿈나무도서관 설치를 제안하고 지금까지 자원봉사로 도서관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2009년부터는 도서관 봉사자들과 공동체 창업으로 갈현동에 카페‘마을’을 운영하며 사람 사는 소리를 즐기는 여성이다. 3명의 아이들 엄마인 것도 부족해 30명의 청소년 동아리(작공팸과 마패)를 꾸리며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 청소년 동아리와의 만남을 매월 한 편씩 써나가고자 한다. 아주 색다른 그래서 힘들지만 행복한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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