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이호철 문학상 제정 취지 좋지만... 지역과 더 가까워져야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은평에 제정된지 올해로 6년째다. 고 이호철 작가는 남과 북의 분단을 잇는 통일의 길목 은평구에서 50년 이상 거주하며 분단현실을 비롯해 민족, 사회 갈등에 관한 집필활동을 하다 2016년 타계했고 그의 문학적 뜻을 기리기 위해 은평구청은 2017년에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제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분단 문학의 거장 이호철 작가의 통일 염원 정신을 기리고 이어가기 위해 분쟁∙여성∙난민∙차별∙폭력∙전쟁 등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함께 사유하고 극복하고 있는 세계적 작가를 수여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남과 북을 잇는 통일로를 품고 있는 지역 특성상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의 출발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다만 문학상 제정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낮은 인지도 문제는 본래 문학상 제정의 취지와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다시 점검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기획취재에서는 지역민과 함께 하는 이호철 문학상이 되기 위해서 전국에서 오랜 기간 운영되어온 권위있는 문학상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번째 방문지는 정지용의 고향 옥천이다.  

해금과 함께 결성된 지용회
세종문화회관에서 정지용이 울려퍼지다

<호수>, <향수> 등으로 잘 알려진 시인 정지용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월북 시인이라는 오명으로 ‘정X용’, ‘정O용’처럼 그의 이름 석자가 정확히 인쇄된 시집이 나오지 못했다. 정지용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은평구 녹번동 126-10 인근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전쟁 직후 그는 강제 납북되었는데 6∙25 이후 생사가 불분명해지면서 ‘월북설’에 휘말리고 약 40여년간 정부는 월북작가로 분류해 그의 작품 모두를 판금시키고 학문적인 접근조차 금지시켰다.

정부는 정지용을 금지시켰지만 이념을 떠나 그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여기고 추앙하는 문단, 학계, 유가족, 매스컴 등은 거듭하여 정부에 해금을 촉구했다. 1978년부터 이어령 등 문인들을 중심으로 ‘문학사 바로잡기 운동’이 펼쳐졌고 이들은 관계 당국에 계속하여 진정을 넣었다.

각계각층이 정지용 해금을 요구하던 상황에 1988년 1월. 해금보다 먼저 이루어진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당시 문화공보부의 ‘납본 필증’ 허가다. 깊은샘 출판사의 <정지용 시와 산문>이 문공부로부터 납본필증을 받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출판계에서는 “실질적 해금”이라고 반응했다. 

옥천 문화원에 설치된 '지용시비'
옥천 문화원에 설치된 '지용시비'

정지용문학상을 주관하는 ‘지용회’ 사무국장이자 깊은샘 출판사 박현숙 사장은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그동안 출판도 제대로된 정지용 이름으로 못했는데 출판 허가가 났다는 게 해금이나 마찬가지였죠. 문공부에선 출판 사실 확인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당시 동아일보와 일간스포츠에서 ‘해금’ 제목으로 대서특필을 했고 같은 해 3월 31일에 공식적인 해금 조치가 이루어졌어요”라고 전했다. 

해금을 맞고 바로 다음달인 4월에는 김수남, 박두진, 구상, 김남조, 유안진 등으로 구성된 ‘지용회’가 결성됐다. 지용회는 정지용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었는데 정지용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함께 노래부르는 ‘지용제’를 열었다. 박현숙 사장은 “성악가 박인수 씨가 노래 불렀는데. 정말 멋졌던 기억이 나요. 또 박인수, 이동원 이런 가수들이 <향수>를 부르면서 정지용이 대중화될 수 있었다고도 봐요”라고 전했다. 

서울에서 시작한 지용제
정지용의 고향인 ‘옥천’을 향하다

제33회 지용제 모습.
제33회 지용제 모습.

특이하게도 제1회 지용제는 1988년에 두 차례 열렸다. 첫번째는 5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고, 두번째는 6월 25일 충북 옥천에서 열렸다. 옥천은 정지용이 태어난 곳이다. 해금 이후 서울에서 열린 지용제에 옥천문화원 박효근 원장이 ‘지용제’ 옥천 이동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를 지용회 측에 하면서 지용제가 옥천에서 열릴 수 있게 됐다.

옥천문화원 50년사에 나온 박효근 전 문화원장 인터뷰에 따르면 “그냥 옥천에서 해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냥 무식한 게 재산이지. 억지 써서 가져왔어요.”라며 겸손한 태도로 옥천으로 옮겨온 이유에 대해 밝혔다.

그렇지만 이안재 옥천문화원 사무국장은 박효근 문화원장의 선견지명이 옥천의 백년대계를 그릴 수 있었던 결정적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이안재 사무국장은 “정지용의 장남인 정구관 씨가 해금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시면서 옥천문화원과 교류가 있었다고 해요. 그때 박효근 원장이 정지용을 알게 되었고 서울에서 열린 지용회를 방문했을 때 옥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화자산이라고 생각하며 ‘기회’라고 생각을 하셨던 거죠. 어떻게든 지용회 분들을 설득해서 고향인 옥천에서 열자고 말했다고 하셨죠.”

옥천문화원 이안재 사무국장.
옥천문화원 이안재 사무국장.

박효근 원장의 안목 덕분에 옥천에는 지용제라는 큰 문화자산이 생길 수 있었고 정지용 시인이라는 큰 인물을 고향에서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렇지만 지용제가 처음으로 옥천에서 열렸을 때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군사정권 분위기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정지용이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옥천군 내 정치인들이나 보수단체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이근배 지용회 전 회장은 “보통 이런 행사를 하면 지역의 정치인들이나 군수 등이 내빈으로 참석하고 인사도 하고 행사에 참여를 하는게 일반적인데 아무래도 당시에 정지용이 소위 ‘빨갱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아무도 참여를 하지 않았죠. 그래도 점차 정지용의 문학적 가치가 알려지고 월북이 아니라는 연구가 나오면서 지역의 정치인들이 참여하게 됐어요”

전국 최초의 지역기반 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인기와 장수 비결은?

2017년 지용제 30주년을 맞아 정지용문학상 시상식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제29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는 김남조 시인이다.
2017년 지용제 30주년을 맞아 정지용문학상 시상식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제29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는 김남조 시인이다.

1988년 처음 지용제가 열리고 정지용을 기리기 위한 ‘정지용문학상'은 그로부터 1년 뒤인 1989년에 제정되어 34년째 이어오고 있다. 정지용문학상은 전국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문학상이기도 하다. 34년간 정지용문학상이 흔들리지 않고 이어져 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문학상을 주관하는 지용회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외압에 흔들림 없이 깨끗하고 투명한 심사 과정”이라 말했다.

지용회가 주관하는 정지용문학상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눠진다. 예심에선 최근 2년 동안 국내에서 발표된 시 가운데 우수한 작품 15편에서 20편정도 선정을 하고 본심에선 작품 작가들의 이름을 가린채 심사를 진행한다. 본심에선 작품성 만을 갖고 수상작을 선정하는데 가장 크게 고려하는 점은 바로 정지용 시의 가장 큰 특징과 같은 ‘낭송하기 좋은 시’다. 낭송하기 좋다면 좋은 시 이고, 좋은 시는 곧 낭송하기 좋기 때문이다.

유자효 지용회장.
유자효 지용회장.

유자효 지용회 회장은 “정지용문학상은 시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뽑는 것”이라며 “심사위원들이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게 심사를 하여 수상작을 선정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어져 올 수 있고 결국 훌륭한 작품이 선정되다보니 문학인들이 받고 싶어하는 상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지용문학상이 오랫동안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지역 문학제인 지용제가 함께 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유자효 회장은 “지용제에서 지역주민들이 함께 노래하고 먹거리를 즐기며 시를 낭송하는 축제를 통해 정지용을 기렸기 때문에 그 시너지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 말했다.

박현숙 사무국장은 전국에서 많은 문학인들이 지용제에 참여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박 국장은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박태상 교수가 꽤 오랜 기간동안 시문학버스를 운영하면서 전국의 재학생들이 옥천을 찾아왔었어요. 매년 대형 관광버스 10여대가 올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지역 상인들도 좋아하고 지용제 주최측도 만족할정도로 높은 인기를 보여준 적이 있었어요. 지용제나 정지용문학상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참여가 크게 한 몫을 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역 문학상 운영의 어려움 … 지역주민이 사랑하는 문학상이 되려면?

지역문학상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 문제다. 그럼에도 지역주민들에게 사랑받는 문학상이 되려면 보다 더 적극성을 갖고 지역주민에 밀접한 행사나, 학술제, 대중성 있는 국내 작가 수상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근배 전 지용회장.
이근배 전 지용회장.

이근배 전 지용회 회장은 20년 넘게 지용회를 이끌면서 사비로 순금 메달을 만들어 수상자에게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근배 전 회장은 “첫 지용제 때 후원금 모금이 많이 됐지만 나중엔 메달 만들기가 어려워 사비로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점차 옥천에서 예산으로 1천만원, 현재는 늘어서 2천만원이 되었죠.”라며 문학상 운영의 어려움을 전했다. 

박현숙 사무국장은 “지용회는 민간에서 일관되게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꾸준히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해요. 지용회도 앞으로 후배들이 이끌어줘야 하는데 누군가가 힘써주면서 이끌어주는 게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헀다.

지용회 박현숙 사무국장.
지용회 박현숙 사무국장.

또한 박 사무국장은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지역주민들에게 친숙해지고 잘 알려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제언을 하기도 했다. 박현숙 사무국장은 “아무래도 시는 짧고 소설은 길다보니까 소설 문학상은 전국적으로도 운영의 어려움을 겪어요. 게다가 이호철 선생은 분단문학이다보니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있죠.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이 ‘통일', ‘평화' 등을 주제로 한 제정 취지는 정말 훌륭하다고 봐요. 이런 좋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문학상이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하고 그 중 하나의 방법은 본상 수상자를 외국 작가로 국한하지 말고 국내 작가 선정을 통해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놔야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30여년간 정지용문학상 운영해온 실무자 박 사무국장은 행정에서 문학상을 직영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사무국장은 “행정에서 직접 문학상을 운영하다보면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휘청일 수밖에 없다. 출판사나 언론사를 통해서 운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이호철 선생의 정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근배 전 지용회 회장도 유사한 제언을 주었다. 이근배 전 회장은 “세계의 유명한 제3세계 작가들에게 평화, 여성주의 등을 주제로 상을 주는 취지는 좋지만 역시나 국내에선 잘 모를 수밖에 없는게 현실 이라며 “가능하다면 본상을 국내작가들에게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공동 수상하게끔 하는 방식을 고려해봤으면 한다"고 전했다.

유자효 회장도 “이호철 선생은 은평의 아주 소중한 분이죠. 그분의 문학이 우리 민족의 분단사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에선 큰 자산인데 이호철 선생의 문학적 가치가 지역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다양한 학술제나 지용제 같은 행사가 필요하죠. 그렇게 쏟아내 주어야 지역에서도 접근성이 좋아질 수 있다"는 제언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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