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경한 전 총괄기획자 “진정성 믿고 활동 시작했지만 돌아온 건 ‘무시’뿐”

이호철 작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이호철라키비움 추진위 3인이 은평구청의 비문화적 행태를 비판하며 사퇴했다. 이들은 새로운 개념의 문학관 설립이라는 취지에 동의해 추진위원으로 활동했지만 추진위를 요식행위 정도로 보는 행정의 시각을 개탄함과 동시에 이호철라키비움 총괄기획자 본인도 모르게 해촉 단계를 밟은 것은 문화예술전문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은평시민신문은 이호철라키비움 총괄기획자로 활동한 홍경한 전시기획자를 만나 그동안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12월 12일 강화도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이호철라키비움 총괄기획자로 활동한 홍경한 전시기획자 ⓒ박은미
이호철라키비움 총괄기획자로 활동한 홍경한 전시기획자 ⓒ박은미

- 추진위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은평구청에서 전화가 왔어요. 제가 경향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는데 제 글을 봤다면서요. 우리나라에 수십 개의 문학관이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혁신적이고 새로운 문학관을 만들고 싶다면서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기초단체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데 특이하기도 하고 진정성도 느껴져서 참여하겠다고 했죠.

- 추진위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2022년 4월에 추진위에 위촉되고 나서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서 활발하게 의견 개진도 하고 새로운 문학관 조성에 관한 아이디어도 내고했어요. 그렇게 열 번 정도 회의를 했어요.

- 추진위원으로 활동하다 총괄기획자를 맡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비엔날레 예술감독 경험도 있고 하니 추진위에서 저를 총괄기획자로 추천을 하셨어요. 저는 못한다고 했죠. 그냥 추진위원으로 남겠다고 했어요.

- 당시 거절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행정하고 일을 많이 해봤어요. 그때마다 느낀 건 정말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예술가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전혀 이해를 못 한다는 거였어요. 이해를 못 하는 건 당연한데 좁히려는 노력보다는 예술조차 행정화시키는 것에 대해서 실망했거든요. 그 시각은 굉장한 벽이었어요. 총괄기획을 맡으면 늘 부딪혀야 되고 행정에서 내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고요.

- 그런 상황에서 총괄기획자를 승낙한 계기는?

제가 강화도에 살고 있는데요. 당시 은평구청 팀장과 직원들이 집으로 찾아왔어요. 저는 못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당시 팀장이 ‘문학관을 잘 만들려고 TF 팀을 꾸렸다. 총괄기획자님이 제시하는 요구는 다 맞춰서 수용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팀장의 말이 꽤 진지하게 들렸어요. 그래서 개관할 때까지만 역할을 해보겠다고 승낙했죠. 기간은 2024년 1월까지라고 들었고요.

은평구청과 홍경한 전시기획자가 2023년 3월 31일 맺은 약정서
은평구청과 홍경한 전시기획자가 2023년 3월 31일 맺은 약정서

- 총괄기획자로서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2023년 3월에 총괄기획자로서 위촉장을 받았어요. 2024년 1월 개관할 때까지 제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개관 콘텐츠, 향후 운영방안까지 담은 ‘이호철라키비움 조성 기본구상’을 진행했죠. 기본구상을 만든다는 거는 뼈대를 만드는 작업이죠. 이걸 토대로 실시설계 공모를 내고 진행하는 게 그다음 단계고요. 그렇게 개관을 하고 필요한 세리머니가 펼쳐지면 제 역할은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일 시작부터 삐걱대더라고요.

- 시작부터 삐걱이라...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행정하고 상의할 일이 많은데 책임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저희 집까지 찾아와서 그렇게 부탁하던 팀장은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새로 온 팀장은 내용을 모르는 거예요. 추진위에서 2년 동안 이호철라키비움에 대해 논의하고 연구했는데 그런 내용을 이해를 못 하니까 이래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담당 과장이 추진위 회의에도 오고 관심을 가져달라 부탁했어요. 그런데 바쁘다고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모든 일정을 과장님께 맞추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약속을 하고도 안 와요. 왜 안 오냐고 하면 바쁜 일이 생겼대요. 그것도 한두 번이지. 그냥 우리를 무슨 하청업자 취급을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래서는 일이 안되겠다 싶어서 구청장님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담당 팀장한테 일정을 좀 잡아달라고요. 그때가 7월이에요. 연락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다렸죠. 그런데 7월 말이 다 되어가도록 연락이 안 와요. 알아보니 다 휴가를 갔더라고요.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바쁘면 바쁘다고 연락을 하고 못 만나면 못 만난다고 연락을 주는 게 상식 아닌가요? 답답하고 속상했지만 참고 일을 했어요.

이호철라키비움 조성 기본구상 용역 완료보고서에 담긴 이호철라키비움 구상안
이호철라키비움 조성 기본구상 용역 완료보고서에 담긴 이호철라키비움 구상안

- 그럼 구청 관계자하고는 계속 못 만난 건가요?

저하고 1차 계약기간이 7월 말로 되어 있어요. 계약서상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연장한다고 되어있고 일 시작할 때는 라키비움이 개관 때까지는 역할을 맡아달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죠. 8월부터 어떻게 일할지 정해야 하는데 7월 말이 되도록 구청에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7월 29일 인사동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나가보니 담당 팀장하고 직원들이 나왔더라고요. 그런데 말을 못 하고 계속 쭈뼜거리더라고요. 그래서 준비해 간 사직서를 건넸죠.

- 사직서를 준비 하셨어요?

구청 담당자를 만나기 전날 새벽에 썼어요. 그랬더니 아무 말 없이 받더라고요. 씁쓸했지만 제가 열정을 갖고 일한 거니까 마지막으로 부탁의 말을 전했어요. 나는 그만둬도 좋은데 이호철라키비움 기본 구상은 문학관의 기둥이고 대들보이니 이건 흔들지 말아 달라고요. 혁신적인 문학관을 만들겠다고 사례를 분석하고 회의하고 연구한 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니까요. 그런데 담당 팀장이 자신은 그런 권한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허허. 뼈빠지게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이건 저에게는 작품이지 그냥 용역이 아니에요. 이럴 거면 뭐 하러 혈세 낭비하고 사람 고생시켜가며 기본 구상안을 만들죠? 이럴 거면 그냥 실시 설계하고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요?

- 그 뒤로는 구청 관계자를 만나지 않았나요? 

구청에서 다시 연락이 왔더라고요. 만나자고. 제가 굳이 안 나가도 되는 자리지만 나갔어요. 담당 과장이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못한 말을 다했죠. 약정서 쓸 때는 필요하면 큐레이터도 보강하고 다 책임져주겠다고 하더니 얼굴 한 번을 비치지 않고 미안하다 전화 한 통을 하지 않냐고요. 이 자리에서 약속 못 지킨 거에 대해 사과를 하라고 했어요.

- 어떤 반응이 있었나요?

사과 안 하더라고요. 계속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면서요. 제가 계속 따지니까 ‘아, 알았어요. 사과할게요’ 그러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요. 많은 사람 만나봤어도 이렇게 무례한 사람들은 처음 봤어요. 꾹 참고 다시 부탁했죠. 기본 구상안 위에서 잘 부탁드린다고요. 그랬더니 그렇게 애정 있으면 무임금으로 해주시던가… 그렇게 얘기를 해요.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런 수모를 당하는가 싶더라고요.

3월에 맺은 계약서에는 서로 통보가 없을 시에는 자동 연장된다는 조항이 있어요. 만약 어떤 이유로 해촉이 된다면 저도 다음 스텝을 진행해야 하잖아요.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이유를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이런 식이었다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뿐더러 시작도 안 했죠.

이호철라키비움 조성 기본구상 용역 완료보고서에 담긴 내용 중 일부. 새로운 문학관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다.
이호철라키비움 조성 기본구상 용역 완료보고서에 담긴 내용 중 일부. 새로운 문학관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다.

- 이호철라키비움 기본구상에서 중요하게 본 건 무엇인가요?

이호철 문학상은 브랜드가 약해요. 그래서 이호철라키비움에서 이호철 작가에 대한 인지도를 쌓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고 세계적인 작가들을 다 초대하려고 준비를 한 상황이었는데 다 멈춘 거죠. 그리고 석학들을 모아서 이호철 작가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콘퍼런스를 첫 번째 행사로 기획을 했어요. 그런 내용이 기본구상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호철 문학상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데 이호철라키비움에서 문학과 예술의 석학들이 같이 하는 콘퍼런스를 첫 시작으로 하면 의미가 있겠다고 봤죠.

기본구상안에 대해 추진위원들은 다 좋다고 하고 우리가 원하던 방향에서 설계가 나왔다고 했어요. 그런데 공무원들에 의해서 다 어그러진 거예요. 세금 낭비일 뿐만 아니라 미래 가치를 외면한 거죠. 지금까지 혈세 들여서 만든 기본구상 원점으로 돌리고 총괄기획자, 큐레이터 잘라내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건데요. 그러면 처음부터 그냥 문학관으로 하지 왜 전문가들 끌어들여서 고생시키는 거죠?

- 은평구청에 바라는 건 무엇인가요?

사과를 받는 겁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우리 같은 피해가 없었으면 해요. 보통 행정의 자문위원회든 추진위원회든 행정적 요식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추진위원들하고 저는 요식행위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를 섭외할 때 진정성 있게 접근했기에 우리도 최선을 다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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