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2022 월드컵 속 보이콧과 추모, 더 열띤 응원까지
2002년 이후 20년만의 월드컵 거리 응원 취소 위기, 시민이 되살린 광화문 응원
문제만 생기면 취소하려는 행정, 취소가 능사가 아니라 안전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민의 목소리

"우리만의 방식으로 진정한 위로와 추모를 하는 것이 더 옳은 길이라고 다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우리의 상징과도 같은 광장에서 어제의 슬픔을 오늘의 함성과 환희로 치유하는 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 측이 SNS로 시민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2002년부터 20년 동안 이어져 왔던 월드컵 거리 응원이 서울시와 대한축구협회가 광장 사용을 취소하며 무산될 뻔 했다. 축구 교체 투입처럼 급하게 나선 붉은악마가 이번 거리 응원 개최에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사다난하게 막을 올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속, 시민이 광화문 응원을 되살린 것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공식 포스터
2022 카타르 월드컵 공식 포스터

2022 카타르 월드컵은 다사다난한 월드컵이라고 명명해도 모자라지 않다.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월드컵이라고도 불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은 다양한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월드컵 개막식을 TV로 생중계 하지 않으며 카타르의 인권 침해 행태를 비판하는 보이콧을 진행했다. 카타르가 월드컵을 위해 자국에 경기장과 호텔 등의 시설들을 짓는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착취했다는 것과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인권 침해 행태를 보인 것에 대한 보이콧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이유로 월드컵을 보이콧 하는 사람, 10.29 참사의 추모를 이어가기 위해 응원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거리 응원이 취소되었다가 소동을 거쳐 다시 개최되는 등 다사다난한 월드컵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광화문 거리응원 홍보물 (붉은악마 페이스북)
2022 카타르 월드컵 광화문 거리응원 홍보물 (붉은악마 페이스북)

24일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의 대한민국 첫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상대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에서 만나 우리에게 패배를 안겼던 우루과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평가전과 예선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적이 좋았기에, 이번 월드컵을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다르게,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등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2 카타르 월드컵' 거리 응원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와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4일, 24일부터 여러 광장에서 개최 예정이던 거리 응원을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을 밝혔다. 월드컵 거리 응원이 열리지 않는 것은 2002년 월드컵 때 처음 거리 응원이 생긴 이래로 20년만에 처음이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거리 응원은 서울시와 대한축구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바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참사가 있은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거리 응원을 하는 게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취소의 이유를 밝혔다. 시민들은 탐탁치 않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안전 대책을 강화하는 조치를 하지 않고 무작정 거리 응원을 취소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강북구 주민 A씨는 "너무 일방적인 조치다. 안전 대책 같은 것을 보완할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런 것 없이 무조건 취소하는 건 지자체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하는 조치로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강동구 주민 B씨는 "거리 응원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는 일이다. 공공의 역할은 이런 행사가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에 있다. 국민 축제로 여겨지지 않는 핼러윈 축제도 많은 시민들이 모였듯이, 국민 축제로 여겨지는 월드컵 축구 경기 응원은 서울시가 취소하더라도 많은 시민들이 곳곳에 모여서 응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하게 관리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광화문 거리 응원에 앞서, 공연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 : 유지민 기자)
광화문 거리 응원에 앞서, 공연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 : 유지민 기자)

거리 응원 취소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지난 17일 축구국가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 서울지부는 서울시에 광화문광장 사용 신청서를 제출하며 거리 응원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종로구는 붉은악마 측이 제출한 안전관리 계획에 대해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통해 심의를 진행한 결과, '안전관리 계획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승인을 보류하고 재심의 과정에 들어갔다. 얼마 후인 22일, 종로구는 재심의 결과로 안전관리 인력 확충 등의 조건부 통과를 알렸고, 이어 당일 서울시도 광화문광장자문단 자문을 거쳐 사용을 조건부 허가함으로써 광화문 거리 응원은 극적으로 개최를 맞이했다. 그야말로 시민이 나서 행정을 이끌어 만들어 낸 결과다.

서울시는 응원전 당일에 광장에 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모일 것을 대비하여, 서울시 및 자치구, 산하기관 등의 인력 276명, 119구급대 4개대 등 행정력과 경찰력, 소방력을 배치하는 등 안전한 응원전을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서울시는 거리응원전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지하철 및 버스 등 대중교통의 증편과 막차시간 연장을 통해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강구했다고 전했다. 붉은악마 측에서도 300명의 안전요원을 투입하여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화문에서 응원 중인 시민들의 모습 (사진 : 유지민 기자)
광화문에서 응원 중인 시민들의 모습 (사진 : 유지민 기자)

응원은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보이콧 하는 사람, 추모를 위해 응원에 나서지 않는 사람, 행정이 취소한 광장에서의 응원을 되살린 사람 모두 각자의 이유로 자유롭고 충실하게 월드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취소와 통제가 아닌, 광장과 자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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