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김경숙 VS 역촌동 김경숙

신사동엔 길고양이 김경숙이 살고 역촌동엔 사람 김경숙이 산다. 두 김경숙은 만나본 일은 없는 사이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지구의 생명체임은 틀림없다. 길고양이와 사람을 나란히 놓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인터뷰의 시작은 순전히 신사동 ‘랄랄라’에서 길고양이 이름을 ‘김경숙’이라 붙이면서 시작되었음을 미리 밝힌다. - 편집자 주 

▲    신사동 김경숙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봄꽃과 함께 길고양이들도 은평 민중의집에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랄랄라’앞에는 길고양이들을 위한 급식소가 있어 길냥이들이 오가며 배고픔을 해결하고 있는데 보통 서넛 마리의 고정멤버들이 사료를 먹는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서열 1위의 고양이는 김경숙이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겨울동안 도통 안보였는데 어디서 뭐하고 살았나?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 겨울잠을 자는 건 아니지만 활동량이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닝겐(인간)들도 그렇지 않나? 나야 이번 겨울이 처음은 아니니 버틸 수 있었지만 어린 녀석들은 더 힘들다.

랄랄라에 밥 많이 부어놓고 물도 얼까봐 스티로폼 그릇에 담아서 자주 갈아줬는데 밥이 줄지 않아서 김경숙 혹시 큰일 있는 거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다. 정말 걱정되더라.
괜찮다. 이렇게 살아있지 않나. 원래 고양이들이 추위에 엄청 약한데다 봄 되고 따뜻해져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말했듯이 한번 겨울 지내보니 어찌 버텨야할지 감이 오더라. 나 없을 때 자주 온 애들이 있었나? 지나다보니 회색 녀석 무지 컸던데.

김경숙 당신이 지난번 낳은 애다. 
김경숙: 아 그런가? 워낙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다. 낳아놓고 몇 주간 젖 물렸으면 됐지. 다 지들 인생이고 지들 할 탓이다. 알아서들 살겠지.

그래 말 나온 김에 묻자. 처음에 랄랄라 문 열었을 때 당신은 임신상태였고 1년이 안된 지금 3번째 임신 중인 것으로 안다. 거듭되는 임신과 출산 괴롭지 않나? 
힘들어죽겠다. 체력도 예전만 못하다. 이제 그만 낳고 싶은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특히 이런 따듯한 날씨에 발정이 자주 오니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당신이 출산 후 곧바로 재임신하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워서 랄랄라에서 TNR(길고양이피임수술)을 해주려고 시도했으나 잘 안됐다. 눈치가 백단이더라. 뭘 알고 포획장에 안 들어간건가?
아 그래? 그게 날 잡으려던게 맞구만. 내 예상이 맞았다. 큼지막한 꽁치 살덩어리가 떡하니 있는데 도통 꺼낼 수가 없더라고. 냄새가 장난 아니더라. 그런데 원래 밥 주던 급식소에다 주면 될 간식을 길쭉한 철망 안에 넣어놓은 게 왠지 촉이 왔다. 한동안 당신한테 실망했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임신을 반복해서 건강을 해치고 무수한 새끼들이 길거리에 방치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그랬다. 도심 길거리에 동물들이 살기엔 힘든 건 사실이지 않나.
이 길목도 보면 차가 엄청 다니는데 나는 노련하게 쌱쌱 잘 피하는 편이지만 간혹 차에 치어죽는 애들을 볼 때가 있다. 지난겨울이었나? 랄랄라 앞에도 고등어무늬 녀석이 차에 치여서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으로 안다. 공기도 진짜 안 좋다. 우리 길냥이 입장에서는 사방의 모든 게 적이다. 물론 랄랄라같이 밥도 주고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맘 편하게 끼니 해결하고 음식쓰레기를 덜 뒤져도 되지만 모든 사람이 친절하진 않다.

정말 힘들었겠다. 눈치가 빠삭해진 이유를 알겠다. 혹시 TNR 생각 있다면 지금이라도 얘기해달라. 
일단 산달이 얼마 안남은 지금 같아서는 다시는 임신하기 싫지만 모르면 모를까 알아챈 이상 그 포획장에 들어갈 수는 없다.

알겠다. 본인의 이름 ‘김경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내 이름이 김경숙이지? 잠시 왔다 가는 길 위 인생 이름이 김경숙이면 어떻고 김말숙이면 어떤가. 어쨌든 밥 좀 먹어볼까 싶어서 들르면 만날 있는 언니가 경숙아~!! 밥 주까~? 외쳐대니 내 이름이 경숙인가보다 했지. 근데 나 말고도 김경숙씨가 또 있던데? 그분 기분 안 나쁘실라나 모르겠네.

안 그래도 랄랄라에서 김경숙님 한번 뵙고 민망해 죽을 뻔 했다. 마지막 질문. 김경숙에게‘랄랄라’란?
내......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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