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장애인 축구단 곰두리사랑회 신철순 회장

급조된 팀으로 4강 이루며 시작한 장애인 축구단

내쳐 한달음이면 닿을 거리를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간다. 잘 펴지지 않는 팔을 흔들고 가누기 힘든 머리를 곧추세우다 마음이 앞서 넘어지기도 하고 먼저 굴러가는 공을 차지하기 위해 뛰다가 몸을 세워줄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심하게 부딪히고 깨져서 피가 흐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엔 언제나 웃음이 한 가득이다 부상을 당해 그라운드 위에 몇 분을 누웠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은 효율의 최대치를 인간의 가치로 보는 세상을 향한 일침이다.

뇌성마비장애인들의 축구는 유소년축구와 규격이 같은 75m*55m의 경기장에서 이루어진다. 뇌성마비장애 5급부터 8급까지 선수들 7명이 경기를 치르며 오프사이드(off side)는 없고 드로우인(throw-in)은 손으로 굴린다. 그것이 비장애인 축구와의 차이점이다.

한국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는 88서울장애인올림픽 때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로써 모든 종목에 선수를 내보내야 하니 장애인 체육협회는 그야말로 발등의 불. 그래서 올림픽 개최 5개월 전 타 종목에 있었던 선수 몇 명과 일반 장애인들을 모아 급조했다. 잔디밭도 아닌 맨땅에서 마땅한 연습 상대도 없이 기본기부터 시작한 한국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단은 놀랍게도 88서울장애인올림픽 4강 진출이란 성과를 일구어 낸다.

그 성과 위에 한국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단 곰두리사랑회의 신철순 감독이 있다. 신 감독은 지금도 고교축구 지도자계의 신화로 자리 잡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함께 사는 세상을

중동고와 건국대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정보기관(중앙정보부)이 창단한 세계 유일의 축구단 ‘양지’와 육군대표를 거쳐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된다. 1973년 진주고교 부임 이듬해 조광래(전 국가대표 감독)를 앞세워 전국 3관왕을 달성한 이후 그의 조련을 거쳐 간 선수는 김상식(전북현대) 우성룡(인천utd) 최대식 (경민고 감독) 등 부지기수로 많다.

“88장애인올림픽선수단 해단식을 하고도 선수들이 흩어지지 않는 거예요.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구요.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었을 때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았다는 선수들이 많더라구요. 그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이후 선수단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을 하게 된 것이 곰두리 축구단이 되었다. 신감독의 노력과 주위의 도움이 합쳐져서 현재 장애인 축구단은 전국에13개 팀이 있고 98년 브라질 세계선수권대회부터 2002부산 아시안게임 우승. 작년 네덜란드 대회 참가까지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매년 수차례씩 진행되는 ‘더불어 곰두리 축구대회’는 축구를 통해 차별을 없애고 나눔을 일구는 실천의 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곰두리사랑회 취지가 장애인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재활의지를 북돋고 사회성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고 그런 꿈은 꼭 이루어진다고 목표를 가지고 있지요. 그런 와중에 노숙인 팀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연락을 해서 바로 작년에 시합을 했어요. 노숙인과는 처음으로 경기를 한 건데 반응이 별로였어요. 노숙인 중에는 한때 잘나가던 사람도 있었고 곧 재기할 텐데 하며 장애인과 시합하는 것을 좀 꺼리는 거예요.”


청와대 앞뜰에서 10분만 뛰어 봤으면

그렇게 시작된 경기는 탈북인과도 교류를 맺게 되고 기업과 사관학교 또 대학축구단. 조계종. 심지어 청와대 FC까지 사회각층의 다양한 계층의 화합을 위한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다

“작년 프로축구 올스타전을 안 했습니다. 승부 조작에 관련된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이었지요. 그때 올스타전 대신에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프로축구의 최고 선수들이 우리 곰두리와 경기를 했습니다.”

이미 곰두리 축구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물고 반성하는 이의 허물을 감싸며 새날의 꿈을 기약하는 이들을 독려하는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제 꿈은 우리 장애인 축구가 국민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으려면 청와대 앞 뜰에서 10분만이라도 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회통합이 뭡니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야 하는데 웬만한데 서울 시내서 운동장 쓰기가 어려워요. 청와대 잔디밭 앞에서 뛸 수 있다면 운동장 개방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고 후원자도 늘어날 것 같고……. 이런 성원을 통해 민간외교차원의 장애인 축구를 보다 널리 알리고 교류하고 싶어요.”

신감독의 바람은 아직 미완이다 그토록 열망했던 연습공간은 숭실대학교 축구단에서 최근에 개장한 구장을 흔쾌히 빌려주었다. 청와대 앞에서 10분을 뛰었으면 하는 바람은 올해 장애인의 날 서울광장에서 서울시장과 4개 부분의 장애인 축구단과(시각. 청각. 지적장애. 뇌성마비 ) 노숙인 새터민이 함께 어울리는 대동의 장을 만드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국 나이 68세인 젊지 않은 몸을 이끌고 동분서주하는 그의 향기는 은평에서 확인할 수 있다. 25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장애인 축구 곰두리사랑회의 서너 평짜리 사무실은 녹번역을 지나 홍제로 가는 산골고개 옆 주상복합 건물 2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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