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정릉으로 다시 옮겨가는 ‘샤머니즘 박물관’
양종승 박사 “금성당제 복원에 힘써준 은평구와 금성당에 관심 가져 준 인근 주민들께 감사드린다”

2023 샤머니즘 축제에서 진행된 포럼 (사진 : 박은미)
2023 샤머니즘 축제에서 진행된 포럼 (사진 : 박은미)

 

지난해 10월 은평구 진관동에 자리잡은 금성당에서는 샤머니즘 박물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포럼과 공연, 전시 등이 열렸다. 10월 6일과 7일, 이틀 동안 진행된 기념행사에서는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샤먼 연구자들의 발표와 토론을 비롯한 몽골 샤먼굿, 서울 천신굿 등이 펼쳐졌다. 

행사에 참여한 데이비드 메이슨 전 세종대 교수는 “샤머니즘 박물관은 인근의 불교 사원들과 은평 한옥마을, 북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은평 관광지로 만들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샤머니즘에 등장하는 산신은 다채롭고 역동적이며 세계의 모든 이들이 감상할 수 있는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리오라 쌀파티 교슈는 “샤머니즘 박물관은 다양한 양식의 한국 무속의 제단과 유물을 전시하는 유일한 시설로 철거될 위기에 놓인 금성당을 양종승 박사를 중심으로 지켜내 학문적 탐구의 장이 될 수 있었다”며 박물관의 의미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은평구 진관동에서의 샤머니즘 박물관의 새로운 도전은 아쉽게도 멈추게 되었다. 2024년 4월을 기준으로 진관동 금성당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샤머니즘 박물관은 지난 2013년 5월 성북구 정릉동 양종승 박사 자신이 거주했던 집을 개조하여 개관한 이후 2016년 5월 진관동 금성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샤머니즘 박물관 운영을 위해 전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던 은평구청의 약속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져갔고 급기야 운영 중단이라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양종승 박사는 “지난 8년 동안 샤머니즘 박물관을 잘 운영하고 은평의 문화예술과 전통문화를 잘 지켜나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은평구청이 지난 8년 동안 많은 도움을 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 금성당 인근 주민들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 다음은 양종승 박사와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구파발 금성당을 지켜내고 이 곳에서 샤머니즘 박물관을 운영해 온 양종승 박사 (사진 : 정민구 기자)
구파발 금성당을 지켜내고 이 곳에서 샤머니즘 박물관을 운영해 온 양종승 박사 (사진 : 정민구 기자)

 

- 금성당이 사라질 위기에서 지켜내기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요. 다시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정말 어렵게 이 금성당을 지켰죠. 금방이라도 철거할 거 같은 분위기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지켜냈죠. 홀대도 많이 받았지만 꼭 지켜내야 하는 문화유산이니까 힘들어도 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금성당제 보존회를 결성해서 금성당제가 복원이 됐는데 이건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일한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금성당제는 주민들이 추렴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와는 다릅니다. 국가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올리던 곳이었어요. 성저십리에 해당되는 곳, 마포와 월계동 그리고 구파발에 금성당을 지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곳이 바로 구파발 금성당입니다. 

- 구파발 금성당을 처음 방문 한 건 언제 였나요?

군대 제대하고 이곳에 처음 왔으니까 1976년 쯤 됐을 거에요. 당시 저는 황해도 굿에 흠뻑 빠져있을 때인데요. 굿판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구파발 금성당에 가보라는 거에요. 그 때 이곳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고 개발이 되지 않아 엉망이었죠. 여기 와서 금성당을 지키는 송은영 할머니를 만났어요. 송은영 할머니는 시집을 왔더니 시할머니가 당지기였고 시어머니가 수발을 들었다고 해요. 시할머니가 만신이었던 거죠. 

- 당시에도 나주 금성신앙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

당시 송은영 할머니가 금성님하면서 금성대군을 찾으니까 저도 금성대군이라고 생각했어요. 금성대군은 세종대왕의 여섯 번째 아들인데 단종 복위운동 하면서 죽임을 당했고 조선 후기 들어 복권되었죠. 그런데 연구를 계속 해보니 나주의 금성대왕이 중심이고 그 뒤로 금성대군을 모시게 된 거에요요. 조선시대에 이미 나주의 금성신앙이 구파발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거죠. 

2023년 5월 13일 열린 구파발 금성당제 (사진 : 박은미)
2023년 5월 13일 열린 구파발 금성당제 (사진 : 박은미)

 

- 금성당은 왜 구파발에 있었을까요?

조선시대 경국대전을 보면 경복궁에서 10리 이내로는 사당이라던지, 신앙적인 당이라던지 이런 것은 못하게 되어 있어요. 묘를 쓰는 것도 10리를 나가야 가능한 거죠.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여기는 파발이 있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중국 사신이 오면 여기에서 사신이 도착했다는 파발을 띄웁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를 지내는 거죠. 말하자면 중국에서 따라 온 나쁜 기운이나 귀신들은 여기서 다 벗겨내는 건데 그런 의례를 여기서 다 했던 거에요. 우리나라 사신도 중국에 다녀오면 여기서 그런 의례를 했던 거죠. 

또 하나 중요한 건 이말산입니다. 이말산은 조선 왕실에서 일하다 죽은 궁녀들과 내시들이 묻혀 있는 곳이니까 여기서 천도제를 지내줘야 하잖아요? 평생 나라를 위해 봉사하다 돌아가신 분들인데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죠. 그래서 여기서 천신 천도제를 지내는 건데 그걸 새남굿이라고 해요. 그걸 지내고 이말산에 묻히는 거죠. 

구파발은 산대놀이로도 유명했는데 구파발, 녹번, 애오개 산대놀이가 유명했어요. 녹번 산대놀이가 제일 크고 유명했는데 녹번에 퇴직한 궁녀들이 많이 살았어요. 연신내에도 많이 살았고요. 송은영 할머니 말에 의하면 금성당에서 당제를 지내면 녹번에 사는 퇴임한 궁녀들이 와서 제를 준비했다고 해요. 그럴 수밖에 없죠. 나라에서 제를 올리는 곳이었으니까. 

- 금성당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요. 1992년에 나온 <서울 민속대관>에는 금성당 얘기가 안 보이던데요.

역설적으로 기록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거죠. 여기 뿐만 아니라 당시 조사에서 빠진 곳이 많습니다. 저도 전국을 다 다녀보는데 제가 모르는 게 많아요. 빠졌다 해서 없는 게 절대 아닙니다. 

제가 처음 금성당에 왔을 때 무신도가 16점인데 그 중 8점만 남아있었어요. 송은영 할머니 말로는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이라면서 금성당을 방문했다고 해요. 구경하라고 문을 열어주고 자중에 와보니 무신도가 없어졌다고 해요. 당시에 CCTV도 없고 연락처도 없으니 찾기가 어려웠죠. 송은영 할머니가 금성대왕 무신도를 찾으려고 수소문을 했다고 해요. 당시 금성당이 마포(노들)에도 있고 월계동(각심절)에도 있었는데 각심절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포 금성당도 70년대 사라졌죠. 마포 금성당에 있던 금성대왕 화상을 어렵게 찾아서 재현을 하려고 하니 주위에서 만류를 했다는 거에요. 뭐 이걸 다시 만들 필요가 있었겠냐는 거였죠. 

그런데 무속신앙의 1세대 연구자인 경기대학교 장주근 교수님이 구파발 금성당의 자료를 사진으로 남겨놓으셨는데 그 자료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을 하셨어요. 그 때 제가 민속박물관에서 일할 때였는데 그 자료가 제게 건네졌고 여러 검토를 한 끝에 금성대왕님을 다시 찾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금성대왕님이 다시 복원이 된 겁니다. 

2003년 구파발 금성당 모습 (사진제공 : 양종승)
2003년 구파발 금성당 모습 (사진제공 : 양종승)

 

- 박사님의 열정이 결국 금성대왕님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한 거네요. 그런데 샤머니즘이라고 하면 그거 미신아닌가 하면서 배척하는 경향도 많이 있습니다. 

샤머니즘을 그저 미신이라고 하고 외면하고 있어요. 그런데 신앙이라는 건 다 주관적인 것이고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미신이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정치적인 산물이자 식민지 용어입니다. 천조대신(일본 천왕의 조상신) 아니면 다 미신이라고 한 거죠. 그 뒤로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사탄이라고 부르고 경제개발 과정에서도 철저히 외면당해 왔어요. 하지만 한국의 샤머니즘은 우리 민족 정서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샤머니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  (사진 제공 : 양종승)
샤머니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 (사진 제공 : 양종승)

 

- 지난 8년 간 금성당에서 샤머니즘 박물관을 운영하셨고 이제 종료를 앞두고 있는데요. 전하고 싶은 말씀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은평의 문화예술 그리고 전통문화를 잘 지켜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은평구가 지난 8년 동안 지원을 해주어 전시도록도 내고 금성당제도 복원이 되었고 세계적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에서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무속 신앙은 수천년 동안 민중의 아픔과 고난 그리고 슬픔과 역경을 다 감싸안으면서 이어져 왔습니다. 저는 샤머니즘이 대한민국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버티고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무척 노력을 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유물이 3만 여점이 되고 그 중에는 문화재 지정을 받은 것도 있는데요. 은평구 요청으로 샤머니즘 박물관이 이 곳으로 왔는데 이제 다시 성북구 정릉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은평구민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관심을 베풀어 주셨어요. 특히 금성당 인근에 사시는 주민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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