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사람을 기다리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있을까. 일주일에 한두 번 집으로 방문하는 ‘건강 이웃’ 팀을 노년의 지역주민이 기다린다. 그것도 현관문을 미리 빼꼼 열어둔 채로. 매번 특별한 이벤트가 펼쳐지진 않는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 노인 일자리 사업 ‘건강 이웃’ 활동가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는 건 다름 아닌 ‘일상’이다.

안부를 묻고, 혈압 혈당 측정을 돕고, 관절가동운동을 이용자의 속도에 맞춰 진행한다. 같은 운동이어도 신체기능 정도에 따라 30분이 걸리기도, 50분이 걸리기도 한다. 무리한 동작을 억지로 해낼 필요는 없다. 성공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기에 오늘 할 수 있는 동작을 내일로 미루지 않도록 도울 뿐이다. 그렇게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하루가 쌓이고 또 쌓이면 작지만 위대한 변화가 시작된다. 

(사진 : 살림조합사업부)
(사진 : 살림조합사업부)

 

‘건강 이웃’이 이끈 작지만 위대한 변화

“살림 재택의료센터에서 의뢰받은 95세 이용자분이 고관절 수술 후 평소 누워만 계셨거든요. 그런데 얼마나 열심히 운동을 하시는지 몰라요. 변화가… 정말 말도 못 하게 변화가 됐어요. 매일 왔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어떻게든 동작을 하려고 하세요. 처음에는 솔직히 못하실 것 같았어요. 눈을 감고만 계시니까. 그런데 날이 가면 갈수록 좋아지셨어요. 지금은 완전히 변했어요”   _‘건강 이웃’ 활동가 인터뷰

이용자의 꾸준한 의지를 북돋는 건강 이웃 활동가의 존재는 소중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곁에서 변화를 응원하는 곁이 있을 때 사람은 자기 돌봄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서로 돌봄이며, 서로 돌봄이 풍성해질 때 지역사회 호혜적 돌봄 생태계는 숲처럼 우거질 수 있다.

모든 돌봄이 그러하듯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용자의 건강 상태에 따른 유연한 판단과 대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감각, 능동적 관계 맺기 역량 등은 300번이 넘는 방문을 통해 길러진다.

“처음엔 주눅도 들었지만, 지금은 조금 잘해요.(웃음) 보람된 일을 할 기회가 생겼으니까 꼭 잘해보고 싶었어요.”

노인 일자리로서 ‘건강 이웃’은 이용자의 건강증진 효과뿐만 아니라 ‘일하는 노인’의 자긍심 또한 고취시켰다.

“매일 이웃을 방문해 같이 운동하니까 제 관절도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일할수록 건강해지는 선순환의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 역시 ‘건강 이웃’ 사업의 큰 성과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방문지에는 이용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요양보호사가 늘 함께 있다. “저희가 방문하면 되게 좋아하셔요. 1시간이나마 숨돌릴 수 있잖아요.” 제도적 돌봄의 공백으로 인해 장시간 무한 돌봄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돌보는 사람을 지치고, 아프게 만든다. 주 돌봄자가 쉴 수 있는 틈새를 마련하고, 원하는 경우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우리는 같은 처지잖아요.” 돌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헤아리는 돌봄 사업이나 활동의 필요성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 사업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일자리 사업 계약 종료를 앞둔 지난 11월, 건강 이웃 팀 활동가 두 분이 살림 조합사업부에 결심을 알려오셨다. 가장 마음이 쓰이는 한 분의 이용자를 자원활동으로 계속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평소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J 님을 모시고 살림에서 주최한 돌봄 이야기 마당에 참여해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연결했던 두 활동가는 이제는 다정한 동네 이웃으로 J 님을 만나고 있다. 부쩍 외로움이 커질 명절에 댁을 방문해 같이 음식을 해먹고, 말벗이 되어 드린다. “(건강이 웃 팀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린다"라는 J 님은 이제 다른 이웃 주민에게 관절가동운동을 직접 알려줄 정도로 관계력을 회복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건강이자 돌봄 아닐까. 

(사진 : 살림조합사업부)
(사진 : 살림조합사업부)

 

‘건강 이웃’ 사업이 그저 미담 사례로 회자되지 않길 바란다. 사업이 끝나도 삶은 계속되며, 바로 그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여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자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살림은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평등한 일자리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간의 돌봄 교육과정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일자리 참여자들에게 맞춤형 교육훈련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용자 존중에 기반한 돌봄의 원칙과 철학을 교육하고, 이를 활동 점검의 기준으로 다시 피드백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사업을 다시 시작하면 꼭 다시 방문 오라”라는 이용자들의 따뜻한 마지막 인사를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조합원의 힘으로 이 사업을 이토록 풍성한 가능성의 세계로 열어낼 수 있었다. 건강 이웃 활동가의 휴가나 워크숍 참여로 방문 지속이 어려울 때 선뜻 자원활동에 동참한 조합원이 여럿 있었다. 외출이 가능한 건강 이웃 이용자에게 동행 서비스(집 근처로 마중 나가기)를 제공해 서로돌봄카페(거점형 조합활동)로 초대하자는 제안 역시 조합원 회의를 통해 등장했다. 평소 협동의 근육을 튼튼하게 단련해온 조합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용자가 더 많은 관계와 자원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을 함께 상상할 수 있었다. 

 

 ● 이제는 은평에서

 

일을 필요로 하는 노년도,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년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 일자리 공급은 더욱 많아져야 하며, ‘영혼 있게’ 일할 수 있는 돌봄 일자리 확대가 더욱 절실하다. 이미 안산, 전주, 부천, 인천 등 각 지역에 있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노인 일자리 사업 수행기관으로서 건강 돌봄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는 은평에서도 소외된 곳 하나 없이 돌봄이 흐를 수 있도록 ‘건강 이웃’ 사업이 다시 시작될 수 있길 바란다. 모든 노년 시민이 끝까지 나답게 일하고, 돌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