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 무장애 숲길 간판과 그 뒤로 보이는 숲길 풍경 (사진 : 은평시민신문)
봉산 무장애 숲길 간판과 그 뒤로 보이는 숲길 풍경 (사진 : 은평시민신문)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불광근린공원에 올해 무장애숲길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장애숲길은 장애인, 노약자 등 교통약자가 어려움 없이 산을 오를 수 있도록 경사를 완만하게 만든 데크형 숲길을 말한다. 교통약자에 대한 도시 공간의 ‘장벽’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배리어 프리 디자인(Barrier Free Design)’이나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장애’가 이용자 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이나 매체가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장벽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에 있다. 

이처럼 교통약자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좋은 취지의 사업이지만, 마냥 반가워하기는 어려웠다. 얼마 전 봉산과 앵봉산에 생긴 무장애숲길이 문제적이었던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2022년 조성된 봉산 무장애숲길 1단계 조성구간(숭실 고등학교 뒤편~편백나무숲)은 서울시가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여 지정·관리하는 보호 지역인 생태·경관보전 지역을 침범하여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원칙적으로 생태환경 보전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 제한되고, 예외적으로 시행할 경우에도 환경영향 최소화를 위한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를 어긴 것이다.

봉산 수국사~봉수대에 설치된 무장애숲길 모습 (사진 : 이윤주)
봉산 수국사~봉수대에 설치된 무장애숲길 모습 (사진 : 이윤주)

 

지난해 완공된 앵봉산 무장애숲길은 이용하는 사람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데크길이 심하게 지그재그로 나있다며 언론 기사에 오르내렸다.[기사링크 봉산에서 이어진 무장애숲길 3단계 조성 공사(수국사~봉수대)도 경사가 심한 구간에 데크를 설치하다 보니 조성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나무를 베어냈다는 비판과 산사태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왔다. 나무를 베고 편백나무를 심은 곳에서 다시 편백나무를 베고 데크를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무장애숲길은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도록 탐방로의 폭이 넓고, 바닥의 기울기가 약 8% 이하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15~30% 정도로 경사가 심한 산길에 평탄한 데크를 설치하다 보니 시설물이 과도해지고,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의 숲을 없애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광근린공원의 경우, 기존 2.96km였던 산책로에 데크길을 2.8km 더 만든다는 계획인데, 숲길의 밀도가 2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기존에도 좋은 산책로가 많은데, 완전히 새로운 길을 내기 때문에 일부 샛길을 복원한다 해도 숲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이런 점 때문에 지난해 마포구 성미산에서는 무장애숲길 조성 사업이 철회되기도 했다. 과도한 숲길과 시설물이 성미산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솔부엉이 등 생물들의 서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민들의 우려 때문이었다. 이러한 우려와 비판은 무장애숲길이 늘어날수록 많아질 수 있다.

서대문구 안산을 시작으로, 서울시에 무장애숲길이 조성되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적절한 규모로 만들어진 숲길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만, 과도하면 문제가 된다. 그동안 서울시는 「장애인·노약자・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준용해 무장애숲길을 만들고 있었을 뿐, 시설물 조성으로 인한 생태적 영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도시숲을 ‘적정하게’ 이용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원을 포함한 도시 환경 전반은 앞으로 다양한 보행약자에 대한 장벽을 더 많이 없애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산에 무장애데크길을 일률적으로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봉산 편백숲 무장애숲길 모습. 나무를 살려둔 것은 좋지만,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어 무장애길의 기능을 살리지 못했다. (사진 : 이윤주)
봉산 편백숲 무장애숲길 모습. 나무를 살려둔 것은 좋지만,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어 무장애길의 기능을 살리지 못했다. (사진 : 이윤주)

 

서울시에 공원의 면적과 경사, 공원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 생태적 영향을 고려해 무장애숲길을 만들어야 할 곳과 아닌 곳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기존 숲길을 폐쇄 및 복원하여 산책로의 총 길이를 유지하거나, 지나친 식생 훼손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정 경사도 이상의 지형에서는 데크길을 설치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숲길을 조성한다면, 공사 과정과 향후 관리에서 서식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이루어져야 한다. 무장애숲길이 무장애숲길답게 이용되기 위해, 공원 내부만 아니라 마을에서 공원 입구까지 오는 길을 무장애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은평구는 외곽이 산림에 둘러싸여 있지만, 대조동, 역촌동, 응암동 등 여전히 가까운 공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공원 소외지역이 많다. 무장애숲길 1-2km를 만드는 데만 수십억 원의 예산이 드는 상황에서, 은평구 외곽의 산림에만 예산을 투자할 것인지, 공원이 부족한 지역에 공원을 마련할 것인지를 살펴, 공원 예산이 공평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은평구의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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