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을지로①

■ 을지OB베어

을지OB베어. ©서울수집
을지OB베어. ©서울수집
옛)을지로 OB베어 자리. ©서울수집
옛)을지로 OB베어 자리. ©서울수집

 

 ● 을지OB베어

코끝이 시린 추운 겨울, 을지로 일대를 걷다 보면 뜨거웠던 작년 여름이 생각난다. 을지로가 ‘힙지로’로 떠들썩할 때 노가리 골목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을지OB베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임대 계약 해지 후 퇴거를 통보받았기 때문이었다. 을지OB베어는 계속 장사할 수 있도록 재계약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이후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었다.

맥주를 마시며 시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골목 상생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건물주는 노가리 골목에서 10개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기세를 몰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을지OB베어를 쫓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물주는 대화를 거부했고, 여러 번의 기습 철거가 시도되었다. 결국, 영업장은 완전히 폐쇄되었다. 을지OB베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맞은편 건물에 임시 공간을 마련하여 상황을 지속해서 알리고, 상생을 외치는 행보를 계속 이어갔다.

SNS로 상황이 공유되고 있었지만, 늘 그렇듯 파편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만으로는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알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발길을 서둘렀다. 현장에는 소상공인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을지OB베어공동대책위원회가 연대하여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나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피켓을 들었고, 기자회견 자리에 참석하여 현재 상황에 대해 전해 들었다. 동시에 노가리 골목을 찾는 사람들을 살피게 되었다.

그들은 노가리 골목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드물었다. 괜한 시비를 걸거나 화내고 욕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겨우 하루였지만 매일 이런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당사자는 어떤 마음일지 상상되지 않았다. 을지OB베어의 공간 한쪽에 앉아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지금의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을지로 노가리골목. ©서울수집
을지로 노가리골목. ©서울수집

 

노가리 골목의 가게들은 공통으로 ‘맥주와 노가리’를 취급했다. 하지만 모두 똑같은 맛, 똑같은 방식으로 판매하지 않았기에 각자 취향에 맞는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을지OB베어 경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을지로 공구 골목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그 기간을 인정받아 2015년에는 서울 미래유산으로, 2018년에는 호프집 최초, 중소벤처기업부 인정 백 년 가게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쫓겨나야 하는 상황에서 법적인 근거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을지OB베어는 2023년 3월, 마포구 동교동으로 이전했다. 을지OB베어 외의 다른 가게들도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대부분 이전한 상태다. 현재는 만선 호프와 관계된 가게들이 일부 남아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날, 뜨겁게 외치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떠난 이들의 자리를 다시 채운 것은 무엇일까.

청계공구상가단지 임시영업장. ©서울수집
청계공구상가단지 임시영업장. ©서울수집

 

 ● 수표구역상인들, 청계공구상가단지

노가리 골목에는 공구상가도 있었는데 이들도 마찬가지로 재개발로 인해 모두 철거되어 사라졌다. 을지 OB 베어가 목소리를 냈던 건물도 사라졌는데,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수표 구역 상인들의 임시 영업장이었다.

‘수표구역도시정비형재개발사업 순환형 이주 임시 영업장’

“이 영업장은 수표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구역 내 공구, 유통산업 세입자의 순환형 이주를 위한 임시 영업장(가설건축물)입니다. 임시 영업장 입주 상인과 주민의 안전을 위해 차량 이동 및 보행 시 주의를 요하며, 쓰레기 무단 투기, 시설물 훼손 등의 행위를 일체 금지하오니 주민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 사업시행자: ㈜ OOO 피에프브이”

임시 영업장이 세워진 부지는 공공임대 산업시설 건립 부지중 일부 기부채납하여 공사 완료 전까지 수표 구역 세입자들이 입주·영업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다. 컨테이너 구조적 특성 때문에 이전 영업장과는 다르게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상인들이 흩어지지 않고,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 있었다. 임시 영업장과 맞닿아 있는 인도가 정비되면서 폭이 넓어졌다. 그만큼 도로가 좁아져 교통체증으로 이동이 어렵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오래전부터 일방통행 도로였고,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노가리 골목은 한때 ‘차 없는 거리’로 선정되면서 일정 시간 차량 통행이 통제되었지만,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면서 2023년 7월 4일을 기준으로 해제되었다.

청계천공구상가 옛길 흔적. ©서울수집
청계천공구상가 옛길 흔적. ©서울수집

 

청계 공구상가 단지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세운 재정비 촉진구역이다. 구역이 쪼개져 있어 재개발 완료된 아파트 뒤로 연이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신축 아파트 주변 길은 정비되었는데, 바닥을 잘 살펴보면 이전에 있었던 공구상가 상호와 옛길의 흔적을 남겨둔 것을 볼 수 있다. 상인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졌고 산업 생태계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남겨두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더군다나 공사 현장 인근에는 아직 이주하지 않고 영업을 지속하는 상인도 있다. 형식적으로나마 남겨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누군가는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래야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선 계속 더 큰 욕망을 쫓아 앞으로 달려 나간다. 오랫동안 뿌리내린 을지로·청계천 일대의 산업 생태계로서의 장소성은 이대로 사라지고야 마는 것일까.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을지로•청계천 일대 변화를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더 이상 글이 아닌 실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평소 재개발•재건축 현장 답사할 때도 늘 마음에 걸렸고, 그럴만한 기회가 닿지 않아 아쉬워하던 찰나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과감하게 뛰어들 용기가 없었다. 겉에서 맴돌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무작정 뛰어들지 못하는 부채감 때문이었다. 평소 리슨투더시티*팀이 진행하는 활동과 프로젝트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을지로 재개발과 관련하여 워크숍을 한다고 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묻는 질문에 그 주인이 시장이나 정치가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도시는 그 도시의 거주민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맛집이나 명소를 찾는 사람들이 다함께 이용하는 모두의 장소 입니다.그러나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절차는 다양한 의견과 가치를 수렴하기 보다는 소수의 도시계획국의 공무원 혹은 정치가들에 의해 결정되며,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매우 부족한 편입니다. 서울시의 오세훈 시장님은 을지로 일대를 다 철거하고 공원과 200m 이상 초고층 주상 복합을 만들겠다 합니다. 서울시는 세운 지구 초고층 개발의 근거를 크게 두가지; 직주근접과 녹지 확충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직주근접이란 직장과 집이 가까워야 한다는 서구 이론입니다. 그런데 과연 을지로 지역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을지로에서 실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최근 세운 3구역에 완공된 세운힐스테이트 14평 아파트의 분양가는 9억 원을 넘었습니다. 또 3만개가 넘는 인쇄소, 철공소, 유통사들이 만든 거대한 상권과 양질의 일자리를 없애고 아파트를 짓는 것은 과연 경제적으로 올바른 선택인가요? 

왜 우리 사회는 아파트 건설을 위해서라면 도시의 역사와 일자리와, 맛집들을 모두 철거하는 것들이 <합법>이 되었을까요? 이는 모두 집을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총체적 의미가 아니라 부동산 가치라는 좁은 의미로 축소되며 생기는 문제는 아닐까요? 서울시의 청계천 을지로 재개발 계획에는 녹지공급, 주택공급에 대한 계획은 있으나 그 장소에서 원래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정착할지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없고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도 거의 없습니다. 서울시는 뉴욕 같은 도시를 만들겠다하는데, 뉴욕의 로우라인 개발의 경우 2012년부터 2017년 까지 12만명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청취하기 위하여 워크샵, 예술 활동 등 여러 방법으로 도시 계획을 진행했습니다. 그리하여 본 워크샵은 서울 사람들이 직접 을지로 지역의 지속가능한 방향을 계획 해보고자 합니다.”

[‘디스토피아에 맞서라.’ 워크샵 모집 공고글, 출처: 리슨투더시티]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와 동시에 ‘도시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개인적으로도 품고 있었기에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무엇보다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서울시의 행보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또, 서구 이론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지점이 있는데, 그에 비해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도시공간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용하고 소비하는지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 지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계속 느끼고 있던 찰나였다.

‘서울을 어떻게 뉴욕처럼 만들지? 서울을 어떻게 시드니처럼 만들까? 언제까지 미국과 유럽 도시의 결과물을 따라만 할 건가? 우리만의 서울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지금부터라도 ‘서울 다운 것은 어떤 것인지’ 질문하고, 실험하면서 시행착오를 쌓아야 하지 않을까? 변화가 필요하다면 특성을 파악하고 사용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수용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리슨투더시티 워크숍. ©서울수집
리슨투더시티 워크숍. ©서울수집

 

리슨투더시티 워크숍. ©서울수집
리슨투더시티 워크숍. ©서울수집

 

총 5회차로 구성된 워크숍은 을지로의 가치와 현재 상황들을 파악하면서 백캐스팅 기법으로 시나리오 작성 후 을지로 미래를 상상해 본 뒤 구체적으로 제안할 항목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까지가 과정이었다. 현장답사에서는 을지로의 공간적 특성을 파악해 보고 공구상가 사장님들과 대면하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후 팀을 구성하여 어떤 대안이 있을지 서로 의견을 나누며 구체적 실행 방안들을 제안해 나갔다. 개인적으로 2회차부터 막막했다. 더군다나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를 디자인하거나 설계하는 일을 하는 실무자들이었다. 이들이 그려낸 미래 을지로 모습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시각적으로도 이해가 잘 되었다.

이때,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질문은 많이 던졌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좌절했고, 3회차까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다가 참여할 의지를 상실하며 워크숍의 지속적인 참여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끝까지 참여해서 결과물을 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도시를 디자인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사소한 영역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참고]

*리슨투더시티 (Listen to the City)?
2009년 시작되었으며, 미술, 디자인, 건축, 영화, 인문학,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콜렉티브이다.
(웹사이트: https://www.listentothecity.org,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istentothecity)

*백캐스팅(Backcasting (SAT))
백캐스팅은 5th시나리오와 유사한 기법으로, 둘 사이의 차이점은 기존의 시나리오 형식 을 사용하지 않는다는데 있음. 백캐스팅에서 정책결정자 및 전략 수립가는 자신이 선호하는 미래의 비전에 대해 기술한 후, 이를 실행하기 위한 단계에 대해 서술하게 됨.
(목적: 선호하는 미래에 대한 기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단계의 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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