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평화시장 길목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이 있다. 노동운동과 인권의 상징적인 인물 전태일 열사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1995년 11월 개봉한 그를 다룬 영화였다. 

전태일 평전이 대학가 정문 앞에서 여전히 압수되는 불온한 시대에도 영화는 개봉했다. 며칠 전 이곳에서 교사들의 인권 연수가 진행되었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체벌은 필요하고 멀쩡한 학생인권조례도 일부 폐지되고 장애인 학생들 인권은 특수학교나 가라며 국가와 언론들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대에, 그곳에서 교사들에게 인권 연수를 진행하였다. 

이미지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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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노동인권교육 예산이 전액 삭감되고 인권의 상징이었던 페미니즘이 혐오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면서 학교 현장은 군사정권 시대를 관통해온 90년대처럼 ‘인권’이란 말 사용 자체를 사리는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그나마 장애 앞에는 인권이란 단어가 ‘빨갱이’나 ‘좌파’처럼 차별 언어로 당사자에게 소거되지는 않았지만 국가와 정치인들이 전장연을 핑계 삼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응징과 박멸의 시대에 산다.  

이제 어느 공공장소를 가든 페미니스트라고 자기소개를 하거나 장애인도 당신들과 동등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학교와 회사를 다니고 지역사회에 살고 싶다고 공개 강연하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자칫 신상 공개로 좌표가 찍혀 온라인에서 무한정 공격을 당하거나 갑질을 일삼고 비장애인의 안위와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인권 강사가 여기가 안전하고 괜찮은가, 내 밥줄이 끊기지 않을까 자기 검열을 해야 한다. 그나마 전태일의 이름과 공간에서는 인권을 공격하고 혐오하며 검열을 요구하며 교육받는 사람은 없겠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그 믿음처럼 전태일 기념관은 나 같은 장애인 당사자에게 친절했고 전시관들의 접근성은 좋았다. 

그러나 공연이나 강연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나는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무대나 장비실에 휠체어 접근은 어려웠다. 전태일 기념관은 혹시나 여기 함께 일하러 오는 강의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장애인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을까라는 서운함이 그 환대 때문에 더 커졌다. 당사자에게 준비라도 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공지라도 했으면 했다. 이제 곧 은평구에서 인권 재단의 건물 완공이 코앞에 있다. 물론 기본적인 접근성과 편의시설 등은 완벽할 것이다.  

그러나 인권은 항상 그 최소한의 기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한다. 과연 그 공간에서도 중증 장애인이 인권 활동가로 함께 고용되어 일할 수 있을까? 장애인 당사자가 여성이나 난민 같은 다른 소수자나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도 활동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해마다 은평구는 새해 1월 초에 시각장애인 안마 서비스를 지원한다. 나 같은 뇌병변 장애인들이 좀 더 저렴하게 안마를 받을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이 하는 안마 기관에 지원을 하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는 지원 여부를 떠나서 참 반가운 제도이다. 한집 건너 각종 마사지 가게가 성업 중인 은평구지만 유일하게 시각장애인 안마만을 합법으로 인정하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거리에 널린 다른 마사지 집을 가는 건 쉽지 않다. 

이미지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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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재수 없고 불안한 사람으로 문전 박대도 많다. 그런데 우리를 반겨줄 국가공인 안마소조차 승강기는 있는지 옷들은 혼자 갈아입을 수 있도록 탈의실에 의자는 구비되어 있는지 활동지원사가 함께 간다면 대기 장소는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물론 은평구청에 소개된 안마 기관들은 분명히 장애인을 환대하고 인권적으로 대해 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 사람의 고객으로서 한 사람의 정책 이용자로서 ‘존중’받았는지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여전히 이 정도 기본적인 인권은 챙겨주었으니 고마워하라는 메시지를 지울 수가 없다. 오히려 목발을 짚은 나에게 애인 생일 케이크 망가질 테니 당신이 손수 우리 집까지 배달해 주는 꽃집 사장님이나 아무리 의사 표현이 어려운 자폐인 손님이 와도 끝까지 존댓말로 주문을 받은 식당 주인이 더 인권적일 때가 있다. 

이제 곧 정치의 계절이 온다. 은평구는 장애인 주민이 많은 만큼 장애인 공약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장애인 당사자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제 은평구에 장애인 국회의원 정도는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은평구청 1층에 시각 장애인 안마 기관이 오픈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은평구의 인권센터와 인권재단 활동가들은 우리 은평의 집 당사자분들을 GTX가 개통하는 은평뉴타운으로 이주하도록 하자 이 새해에는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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