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과 '연대'해서 살아남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배웁니다"

'우주'의 주인장 김한주. ©정민구
'우주'의 주인장 김한주. ©정민구

증산역 인근 불광천을 따라 걷다 보면 궁금증을 자아내는 공간이 있다. 우주가 연상되는 다양한 모양들이 줄지어 그려져 있는 간판과 함께 벽부터 문까지 감싼 목재가 눈에 들어온다. 불투명한 창에서는 따듯한 불빛들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고 출입문의 작은 창문만이 그 안을 살며시 보라는 듯 투명하다. 노란빛 사이로 편안하게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어지는 이 작은 공간은 술집 ‘우주’다. 이곳에서는 어떤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까? ‘우주’의 주인장 김한주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모호하지만 확실한 ‘술집’

 

불광천에 위치한 술집 '우주'. © 정민구
불광천에 위치한 술집 '우주'. © 정민구

Q. ‘우주’는 어떤 공간인가요?

조용한 동네의 작은 술집이에요. 올해로 벌써 6년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소고기를 기본으로 한 메뉴와 술을 판매한다는 의미로 한자 소 ‘우’에 술 ‘주’를 합쳐 ‘우주’로 이름을 지었고, 간판은 이중적 의미를 담아 우주(cosmos)를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가수가 본인이 부른 노래 따라가는 삶을 살 듯 저도 점점 우주에 대해 알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소고기 메뉴가 빠지면서 우주(cosmos)라는 의미에 더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Q. ‘술집’이라는 간결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는 공간이 바 형식이거나 어딘가 모르게 일본 느낌이 나면 이자야카라고 공간을 정의하는 것 같아요. 일본 음식이나 술을 팔지 않는데도 말이죠. 그런 생각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어요. 덩달아 공간의 정체성을 술집으로 하면 그에 맞는 다양한 음식과 술을 포괄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Q. 메뉴판을 보니 광어 구이, 그라탱, 하몽과 대파구이 등 다양한 음식과 주종도 와인부터 위스키, 소주까지 굉장히 다양하네요.

퓨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제가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로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음식의 간을 보기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면 메뉴에서 빼고 대체할 메뉴를 들여오곤 합니다. 제가 먹기 싫은 음식을 팔 수는 없어요. 간을 보는 것이 괜찮아지면 다시 살려오기도 하는데요. 최근에 우삼겹 미소크림파스타가 2년 만에 다시 돌아왔어요.

저는 미각을 다양하고 세밀하게 느끼면서 차이점을 인식하고 취향을 찾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술도 같은 맥락이에요. 저에게 있어 음식과도 같은 존재인 거죠. 주종별로도 종류가 굉장히 많고 맛과 향이 다르거든요. 가능한 선에서 다양하게 구비하여 각각의 술이 갖는 매력과 오묘한 차이를 느끼는 재미를 가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취향을 찾으시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좋고요.

 ● 편안한 공간 속 함께 한다는 것은

 

불광천 '우주'의 특별한 공간. ©정민구
불광천 '우주'의 특별한 공간. ©정민구

Q. 우드톤의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안이 잘 보이지 않는 창문도 궁금증을 자아내고요.

궁금증이 들었다면 제 의도가 통했다고 볼 수 있어요(웃음). 공간을 만들면서 크게 두 가지에 신경 썼는데요. 첫 번째는 시야에 들어오는 주요색은 나무색으로 하고 비슷한 색의 합판을 찾아 적당한 채도로 모두 같은 톤을 풍기도록 했어요. 시야에 가장 크게 자리 잡는 색이 현재 감정 상태에 영향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전반적인 톤이 다운되도록 하되, 인위적인 색없이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외관의 불투명한 유리들은 나와 외부, 어쩌면 타인과의 거리를 적당히 갖고자 하는 마음이 녹아있어요. 외부에서 공간이 너무 투명하게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닿아있지만 또 서로 너무 드러내지 않는 듯한, 투명하게 확 다가가는 것이 아닌 적당한 거리에서 조심스럽게 서로를 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더불어 들어온 손님들이 공간에서 충분히 편안하게 즐기고 저 또한 최대한 내부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럼에도 출입문의 작은 창문은 투명하게 두었는데요. 완전한 차단이 아닌, 안과 밖 서로가 조금씩 호기심도 갖고 궁금증도 자아내는 역할이랄까요?

Q. 그러한 의도가 통한 것인지 혼자와도 둘이 와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리뷰가 많아요.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사장님의 응대 덕분인 것 같습니다.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지키려는 세 가지 철칙이 있어요. 첫 번째는 혼자 온 사람에게 절대 어설프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인데요. 손님도 저도 각자가 가진 입장과 생각은 모두 다르고 알 수 없어요. 손님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그 손님의 시간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우선이에요. 더 많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서 자리 이동 등의 양해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하며, 손님의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불편해지지 않길 바라기에 최대 사용 시간이나 메인 메뉴 필수와 같은 조건을 두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공간에 있다가 떠나는 사람들이 문밖을 나설 때 불쾌함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고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대와 서비스 등에서 노력하고 있어요. 최대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여 그들이 편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주'의 주인장 김한주. © 정민구
'우주'의 주인장 김한주. © 정민구

Q. ‘우주’는 상가 지역이 아닌 주거 지역에 있어요. 이런 위치에 문을 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고민도 많았죠. 자연은 너무 좋은데, 상권 형성은 안 되어있고 이름마저 처음 들어본, 생소한 동네였거든요. 더군다나 인생의 대부분을 합정과 망원에서 살면서 젊은 시절 홍대 권역에서 노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상가도 자연스럽게 홍대 상권에서 찾고 있었고요. 그러던 도중 우연한 기회로 증산역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가까운 지역에 도심 하천이 흐르고 저 멀리 산이 보이는 자연환경이 있다니 너무 좋더라고요. 그날 그 길로 상가를 찾아다니다 이 공간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주변에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거주지도 북가좌동으로 옮기면서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동네에요.

Q. 실제로 주변 친구들과 다양한 행사를 여는 모습을 보니 동네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작년 봄에 한 ‘벛’축제는 특히 인상 깊더라고요.

운 좋게 가까이에 결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주변 음식점 사장님들부터 예술가, 디자이너까지 하는 일도 다양하지만 이들과 함께 동네에서 생활하면서 지역 커뮤니티와 같은 감정적인 부분들을 많이 느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상점들과 이런저런 활동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주'와 '엔젤리즘'의 ['벛' 축제] ©우주
'우주'와 '엔젤리즘'의 ['벛' 축제] ©우주

‘벛’축제는 불광천 벚꽃시즌에 맞춰 건너편에 위치한 바(bar) ‘엔젤리즘’과 함께 기획한 축제입니다. 낮 시간은 이곳에서 ‘디오티디’, ‘심드렁’, ‘그릭앤바이츠’가 디저트를 제공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오픈 키친을 열었어요. 해가 진 저녁에는 ‘엔젤리즘’에서 디제잉 파티와 불광천변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손님들이 불광천에 돗자리를 펴서 즐기기도 하고,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기도 하는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즐거운 행사였어요.

이 외에도 단골손님과 함께 숙성회 팝업을 열기도 하고, 도토리묵과 막걸리 팝업을 열기도 했어요. 몇몇 분들은 행사 이후 실제로 음식점을 오픈하시기도 했습니다. 최근 인근에 생긴 ‘주화시장’도 ‘벛’축제에서 함께 했던 친구가 연 음식점이에요. 이렇게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점점 크고 작은 네트워크가 쌓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또 친구가 되는 거고요. 언젠가는 불광천 일부 200여 미터 거리를 차 없는 거리로 해놓고 음식부터 마켓, 공연이 있는 작은 축제의 장을 열어보고 싶어요.

Q. 단순히 소비자만을 위한 행사가 아닌 준비하는 사람들도 행사를 즐기는 것 같아요. 행사를 여는 동력이 있다면?

 

'우주'와 '엔젤리즘'의 ['벛' 축제] ©우주
'우주'와 '엔젤리즘'의 ['벛' 축제] ©우주

우리 같이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연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시 생활에서 개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에게 있어 행사를 여는 것은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는 행동 중에 하나에요. 연대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생존 전략이자 그 생각이 실천된 거죠. 그 행동이 재미있으면 좋고 의미도 있으면 좋고, 이왕이면 수익까지 있으면 더 좋고요.

개인적으로 이런 판을 만들고 실제 온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즐거워요. 기회가 된다면 지속적으로 이러한 행사들과 활동을 진행하고 싶어요. 둘이 재밌는 것보다 여러 명이 재밌는 것이 더 즐겁잖아요? 꾸준히 친구들과 마음 맞는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재밌고 싶습니다.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하며 채워가고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사랑을 실천하는 공간을 꿈꾸며

 

'우주'와 '엔젤리즘'의 ['벛' 축제] ©우주
'우주'와 '엔젤리즘'의 ['벛' 축제] ©우주

Q. 말씀 들으니 이 동네가 더 즐거워진 느낌이 들어요. 처음 문을 열 때와는 달라진 점이 있나요?

5년 전 들어올 때에 비하면 상권은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30~40대 신혼부부와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홍대 상권에서 활동하던 예술 쪽 계열 사람들도 이 근방으로 많이 넘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가게뿐만 아니라 이 동네에 있는 다양한 상점들이 여러 방면에서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공간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취향과 결이 맞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만나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들이 커지면 좋겠어요. 이 동네에서 재밌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이런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꾸준히 모이면서 함께 차별 없이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동네가 되길 바랍니다.

Q. ‘우주’의 문을 연지 5년이 되었는데요 감회가 새로울 거 같아요.

‘우주’를 열기 전후의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생각하는 방식도 말하는 방식도 바뀌었죠. 생계문제로 시작했던 일이 삶의 태도와 방식을 다시금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더 좋은, 더 나은,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충분히 될 수 있음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어요. 

'우주'와 '엔젤리즘'의 ['벛' 축제] ©우주
'우주'와 '엔젤리즘'의 ['벛' 축제] ©우주

이런 생각과 태도를 갖게 한데는 지금 이 동네에 살며 만나는 사람들의 영향이 큽니다. 그 사람들이 부족했던 저를 어여삐 여겨주고 함께 가주고 있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사랑이라는 것을 관념적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 실감하고 있어요. 지금의 저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가져야 할 답이자 열쇠가 아닐까, 어쩔 때는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것이자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우주’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배웠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우주’를 만들어 가고 싶나요?

‘우주’ 5주년을 맞으며 SNS에 ‘제가 우주라는 가게를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화두는 사랑인데요. 지난 5년이 생각하게 되고 정리하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엔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가게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글을 남겼어요. ‘우주’가 존재하는 동안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요. 그건 ‘우주’에서 만나는 손님과의 짧은 만남일 수도 있고, 사람 간의 연대, 커뮤니티, 문화일 수도 있겠죠. 우리 모두는 강하게 원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사랑을 실천하고 더 노력하며 재밌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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