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9일, 은평신협문화센터에서 <오진영 작가와의 만남 - 저출산 위기 시대에 육아의 행복을 외치다>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은평의 새 지역 일꾼으로 일하고 싶은 포부를 밝히고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저출생 위기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렸다.

현재 대한민국의 저출산은 심각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절체절명의 위기다.  2022년 합계 출산율은 0.78로 역대 최저를 찍었는데 2023년에는 0.72로 내려갔고 이제 곧 0.7이 무너지기 직전이다.  그야말로 인구가 하루하루 줄어드는 인구 절벽 시대에 살고 있다. 

1년 후인 2025년이면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 즉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사회가 된다.  지금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달려가는 중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300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저출산 해소에 쏟아부었으나 가파르게 내려가기만 하는 출산율 추세를 되돌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저출산 예산은 출산을 장려하는 제도 개선에 쓰이는 간접 지원과 육아 담당자인 부모들에게 지급하는 직접 지원의 비중이 각각 절반이었다. 이 중에서 여성 취업 지원이나 여성 경력단절 지원 센터 설립 등 제도 개선에 쓰인 간접 지원 예산은 출산율 제고에 효과를 보이지 못했고 '공무원 일자리만 늘렸다'라는 냉소적인 반응마저 얻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실제로 육아를 담당하는 부모가 느끼는 지원의 체감 온도를 한껏 높이고자 직접 지원 비중을 파격적으로 늘려보자는 제안이 설득력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취업을 하지 않고 살림과 육아만 하고 싶은 전업주부들도 혜택을 받는 현금 지원과 영유아 돌봄 서비스 직접 지원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출생신고 건수가 증가한 지역은 전국 17개 시·도 중 충북이 유일했다. 여기엔 출생아 1인당 1000만 원을 주는 직접 지원 현금 정책이 유효했다고 보인다. 단기적, 구체적으로는 양육 당사자들에 대한 현금 및 돌봄 서비스 직접 지원에 주력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아이 낳아 기르기 행복한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집권당과 야당 모두 제 1호 공약을 '저출산 정책'으로 내세우고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민의힘 홍석철 공약개발 공동본부장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불합리한 격차 해소를 중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저출산 문제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불합리한 격차가 벌어지기만 할 뿐 줄어들 희망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어렵고 힘든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높은 처우를 받는 소수, 즉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 종사자들이 노동관계법과 강력한 노조 운동 세력에 의해 과보호를 받고 있고 신규진입자와 청년들이 감당하는 고용 불안정과 저소득이 이 소수의 특혜를 지탱하는 형태다.  

어렵사리 좁은 문을 통과하여 성 안에 들어간 사람들만 고소득과 취업 안정을 누리는 불합리한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다 지출해야 하는 사교육비의 부담이 출산의 선택을 계속 가로막을 것이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노동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 공공개혁을 중단 없이 강력히 추진하여 이 불합리한 이중구조 노동시장을 개선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결혼과 출산에 친화적인 예산과 세금 개혁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은 진영에 상관없이 정치가 앞장서서 결혼과 출산, 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소멸할지도 모르는 절박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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