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매일문고 강성규 대표 “이곳을 기억해 주니 그저 고맙죠”

2023년 은평문화재단 아카이빙 프로젝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은평의 골목에서 서점을 만나다’는 박비나 작가가 은평의 골목서점 6곳을 취재하고 그림과 글로 기록한 작업이다.

추억 속의 서점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박비나 작가는 은평구에 오랫동안 살고있는 작가는 “단순히 서점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나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 사라진 것”이라 표현하며 “내가 할머니가 되고 아이들이 사회인이 되었을 때 그 서점을 다니며 어렸을 때를 얘기하고 추억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박비나 작가는 “이런 마음이 은평의 서점을 기록하는 작업의 시작이 되었고 현재를 ‘버텨’가는 서점들의 모습과 그 안의 사람들 이야기, 서점의 풍경을 기록한다”고 전했다. 은평시민신문에서는 지역을 따뜻하게 기록하는 박비나 작가의 그림과 글을 여섯차례에 걸쳐 나누어 싣는다. 첫번째 이야기는   구산역 인근 매일문고다. 다음 인터뷰는 박비나 작가가 매일문고 강성규 대표를 인터뷰하고 정리한 내용이다. 

매일문고 강성규 대표 ⓒ 박비나
매일문고 강성규 대표 ⓒ 박비나

- 대표님 우선 매일문고의 시작을 알고 싶어요.

시작한 지는 43년 됐고요. 처음에는 헌책을 팔다가 여기로 이사 오면서 새 책도 팔고. 처음 있던 데가 지금 역촌 사거리 하나은행 맞은편 건물에 공간 한 칸 얻어서 시작했죠. 거기서 한 2년 했나. 여기 역촌동 1번지에서 43년. 지금의 현주소로는 서오릉로 133인데 그때 당시에는 역촌동 1번지. 4호에 있다가 7호로 옮겨온 거죠.

- 진짜 오래되셨네요. 문고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책에 관련된 일을 하셨나요? 문고를 이끌어 오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내가 제일 힘들었을 때 서적을 시작했어요. 원래 직장생활 하다가 다른 사업도 했는데 사람 하나 잘못 써서 부도가 나고 책 장사를 하게 됐어요. 책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었고 다른 영업 쪽 일이었는데 돈을 좀 벌었다가 다 날리고 정리하고 남은 게 4만 원. 그 돈 갖고 뭐 하나 하는데 고향 사람들이 서점을 하고 있었어요. 문화당이라고 갈현동에도 있고 그리고 저희 집도 대구에서 서점을 하고 있었고요. 우리 사촌이 서울에서 일을 하는데 고향 사람이 문화당 책 파는 일 한다. 그래서 나도 서울로 올라와서 본 거죠. 그거라도 하면 밥은 먹고산다 하니까. 서울에서 문화당이라 하면 헌책하는 사람들은 그때 당시에는 다 알아요. 여기에 있는 문화당은 전부 다, 여의도에 있거나 대방동, 영등포라던가 강남에 문화당 상호는 다 같은 거기죠. 저만 ‘매일’로 하고. 

- 아, 그렇게 연결이 된 거군요. 그럼 매일문고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어떤 분이 문화당보다는 ‘매일서림’이 어떻겠냐고 하셔서 그리 지었죠. 그때 자주 오던 교수님이 있었는데 그리 알려줬죠. 지금 서울 안에 문화당은 다 없어지고 지금 유일하게 남은 건 여기고. 

구산역 인근 매일문고 ⓒ 박비나
구산역 인근 매일문고 ⓒ 박비나

- 그때는 근방에 서점이 많이 있었죠? 저 고등학교 다니던 때 진짜 많았거든요. 여기도 기억이 나고요. 

이쪽에 서점이 예일여고 부근에만 해도 6개나 있었어요. 조금 나가면 또 저 위에 선정고등학교 옆에도 하나 있었고. 그 선일 앞에도 서점이 세 개 있었나? 지금 다 없어졌지. 은평구에도 서점이 50개는 넘도록 있었는데 지금 다 없어졌지.

- 네, 다 사라지고 없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처음 헌책 파는 일을 하실 때는 책은 어떻게 어디서 구해오는 거였나요?

그때는 어디서 받아 오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팔러도 오고 학생들도 팔러 오고 이사를 가게 되면 책들 다 가져가라 하고 부르니까.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 그래도 그때는 자기가 노력하면 그만큼 벌어갔으니까. 뭐 서점도 1980년대인가. 그때는 이거 하면서 애들 잘 키우고 학교도 다 보내고 했으니까. 잘 벌었지. 그리고 내가 처음 서점 하면서 같이 한 게, 책 대여하는 구청 이동 도서 봉사를 했어요. 직접 내가 책을 사서 하니까, 한참 구청 예산 가지고 봉사하고. 구청 담당 직원이 있었어요. 

매일문고 내부 전경 ⓒ 박비나
매일문고 내부 전경 ⓒ 박비나

- 아, 그런 게 있었어요? 오래전인데도 은평구에서 책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군요. 

은평구청 지하실에 그게 있었어요. 지하실에서 회의도 하고 책도 모으고. 봉고차에 실어다가 동네 여기저기 다니고. 40년 전 즈음 된 거 같은데. 한 8년 정도 했을 거예요. 이동 도서 하는 거 구청에서 직원 보조도 받고. 도서 구입은 입찰을 받아서 하고. 서점에 있는 사람이 끼면 안 된다 해서 우리가 사서 주는 게니라 입찰받아서 책을 넣게 하고. 아마 구청에 자료가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구 의원하고 뭐가 안 맞아서 이동 도서 접고 나왔어요. 알아서 하라 하고 나왔는데 그 이후로 이동 도서는 없어지고 뉴타운 생기면서 도서관들이 생겨났죠. 그때부터 각 도서관에 이제 책들이 들어갔어요.

- 아, 그때면 저도 어렸을 때인데 구청에서 그런 복지 활동을 했다는 게 신기하네요. 혹시 그럼 당시 서점 사장님들끼리 모임이나 그런 건 없나요? 

그때 당시부터 지금까지 서점연합회라는 건 하고 있죠. 그런데 옛날같이 활성화되지 않고 요새는 각자가 바쁘니까. 각자가 지금은 서점을 하는 게 좀 버티고 있다고 봐야겠죠.

장사가 잘 되는 사람도 있고 안 그런 데도 있고. 은평구에 우리 같은 서점 6개 있는데 실질적으로 보면 다 문 닫아야 해. 사정이 안 좋고. 그래도 아직까지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뭐. 이게 우리가 돈 보고하는 거면 이리 못해요. 그리고 내 생각엔 동네에 서점이 많아야 해요. 애들이 와서 책을 볼 수 있는 거거든. 요새 인터넷 아무리 좋아도 인터넷으로 본 책하고 종이책으로 본 거 하면 학생들 머리에 남는 게 다르거든요. 인터넷 뉴스로 획일화돼 있는 거. 한 가지만 생각하고. 우리도 가끔 독서감상문 같은 거 하고, 학교도 행사도 하고 하는데 그거 보면 인터넷에 나온 거 그대로 베껴서 내는 아이들이 많아. 살만 좀 붙여서는.

매일문고 안 나무의자와 대표님 의자 ⓒ 박비나
매일문고 안 나무의자와 대표님 의자 ⓒ 박비나

- 요즘 그렇게 글 쓰는 경우는 많을 거예요. 안타깝죠. 그러면 문고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내가 다른 데 안 나가는 날에는 아침에 6시 반에 나와요. 그때 나와서 밤 11시까지. 

- 상당히 늦게까지 하시네요? 근처에도 학원, 학교도 많고 그래서 수험서가 많지요?

그렇죠. 수험서 위주로 하고. 제가 맨 처음에 시작했을 땐 고본으로 시작했어요.

- 고본이요?

고서. 고서를 해가지고. 할 때 당시에는 지금 이 신간 책 파는 것보다 확실히 낫죠. 자료 좋은 거 나오면 박물관 같은 데서 연락이 와서 조사도 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또 그 고본이 없어지니까 신간으로 바꿨는데. 그리하다가 일반도서도 팔고 근처 학교들하고 책을 하다 보니 학생, 학교 대상으로 많이 팔게 되었지요.

- 그게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흐름 때문에 책의 종류가 이렇게 바뀐 거군요.

그렇죠. 요새 그 불광문고 없어지는 거 보세요. 그러니까 불광문고도 한 지가 좀 됐어도 늦게 들어와가지고. 참 그 양반도 잘 했는데. 그거 뭐야 경기 때문에 못 버티니까 그만둔 거거든. 지금 연신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우리는 나와서 10원 벌든, 10원을 까먹든 나와 가지고 하는거죠. 혼자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저 붙들고 오래도록 있는데. 큰 데는 혼자가 또 아니고요. 그런데 이것도 오래 있어야 되는데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지 봐야지. 내가 여기 은평구에서 제일 오래됐다고 봐야지. 

- 여기서 열심히 일하시면서 오랜 세월 보내셨네요. 대단하세요. 

우리 주변에 이래 보면 사람들이 다 바뀌었는데 안 바뀐 사람들이 몇 명 안 돼요. 43년 동안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 다 바뀌었어. 건물 주인들도 다 바뀌었고. 처음에 우리 이동 도서 할 때는 저 아파트라고 하는 거 갈현동 산꼭대기 대성고등학교 옆에 있는 거기밖에 없었어요. 갈현 아파트인가 뭐 되게 오래됐죠.  

매일문고 안 에어컨과 냉장고에 붙어있는 식당 스티커들 ⓒ 박비나
매일문고 안 에어컨과 냉장고에 붙어있는 식당 스티커들 ⓒ 박비나

- 아, 그래요? 대표님이 이 동네 증인이시네요.  

여기가 오래됐죠. 개천에 물 내려가는 데였고. 이 도로 증산동으로 내려가는 데 양쪽에 둑길이 있었어요. 

- 개천이라니요. 상상이 안 가요.  

지금 여기서 내려가는 길 있죠? 수색 내려가는 길이 있어요. 연신내에서 내려가는 길이 개천이에요. 개천 위에 뚜껑 덮어 놓은 거예요. 불광동도 그렇잖아요. 불광시장에서 쭉 내려오는 개천이 있었어요.

- 여기 손님들은 어떤 분들이 자주 오시나요? 단골손님들이 있나요?

단골로 오는 사람 있지. 심지어 일산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 평창동서도 오고. 젊은 분들, 어린애들 학교 다닐 때 기억이 나고 동네 서점이 없어서 여기까지 찾아와. 학생들도 그냥 계속 오던 애들이 오는 거죠. 그리고 일반인들도 골고루 와요.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수들이라든가 사업하는 사람, 다 왔다가. 또 어떤 사람들은 오래된 서점에서 찾던 걸 다른 데서 못 찾아서 여기 와서 책값보다 더 주고 갈 때도 있고. 따로 주문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고본 구해 달라면 출판사에 최대한 알아보고 그러지요. 그래도 오는 건 주로 아이들이 많이 오는 거죠. 학생들 위주로. 

- 학원 교재 사러 오나 봐요.

학원 교재도 그렇고 또 도서관 같은 데 또 책이 들어가고. 학교에도 책이 들어가니까.

- 아, 학교 측에서도 이렇게 책을 주문하나 봐요. 

네. 학교 측에서 도서관에 책 들어간다든가 반에서 애들이 학급 문고 만들 때라던가. 안에서 개인으로 살 때 구입하기 힘든 책들은 주문이 오죠. 인터넷에서 쉽게 구입하는 거는 인터넷에서 하고. 인터넷 때문에 우리 또 장사도 그렇고. 이게 참, 맨 처음에 서점이 잘 될 때는 좋았어요. 그때는 좋았었는데 한참 만화 대여소 생기고 난 뒤에 서점이 하향 길로 접어들어 가지고. 대여소 같은 경우 금방 다 없어져 버렸죠. 

- 만화방 때문에 그런 거예요? 저는 되게 열심히 다녔는데 만화책 보느라요. 괜히 죄송해지네요.  

만화방 때문에 서점이 없어지기 시작하더니만 그러고 인터넷 들어오고. 최고 힘든 거 본 것이 이번에 코로나 시절이죠. 코로나 때문에 책 사러 오던 사람들도 인터넷으로 구입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인터넷이라고 더 싸게 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도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거기로 가가 지고. 그리되고 나니까 서점이 접어서 하나, 둘 없어지더라고. 

책을 포장하는 기계와 학교교과서 목록 ⓒ 박비나
책을 포장하는 기계와 학교교과서 목록 ⓒ 박비나

- 그래도 대표님은 코로나를 잘 보내신 거죠?

우리 버틴 거죠. 뭐. 조금씩 나아지는 거지. 나아지는데 사람도 학생들도 줄어들었잖아요. 전에 같으면 한 학년이 보통 한 400명 됐잖아요. 그때는 학교 선생님이 애들 책을 보라고 그러면 책을 사서 봤는데 요새는 각자 학원 다니고 하니까 그 책도 그렇게 안 보고. 참고서, 단행본 같은 것도 안 봐요. 요새 그래도 가끔 와서는 옛날 생각난다 그러면서 책 찾으러 오는 사람들 보면. 우리 구석에 썩은 책들이 있죠. 소위 말하자면 오래된 책들. 자기가 그렇게 다녀도 못 찾았는데 여기서 찾았다고 그러면서 책값은 책값대로 주고. 음료수도 사다 주고 가는 그런 손님들 있어요. 

- 진짜 책을 아끼고 서점도 좋아하는 소중한 분들이네요

처음 거래하던 분들, 대학 교수님들은 정년퇴직 다 했잖아요. 그러면서 자기가 보고 싶은 책. 옛날 생각나서 왔다 그러면서 하나씩 건져 갈 때 그때가 이제 좋죠. 

- 아,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네요. 문고를 해오시면서 많은 일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을까요?

*이 질문의 답변은 녹음기 오작동으로 원본이 훼손되어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여 올림 

 1)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던 남학생을 문고를 오가며 알게 되셨다고 한다. 어느 날 남학생이 무슨 심정의 변화가 있었는지 일탈을 하고 나쁜 짓도 한 것을 알게 된 대표님이 학생을 불러 크게 훈육을 하셨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남의 자식에게 그리하는 것이 신고받을 일일텐데 당시에는 아이들을 그리 대했다. 세월이 흘러 시민단체 관련 일로 말레이시아에 가셨는데 연회장 같은 곳에 있던 한국 외교관 직원이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 크게 혼냈던 그 고등학생이었다고 한다. 이후로 현재도 가끔 연락을 하신다 한다.  

2) 문고 근처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가 일을 해야 해서 엄마가 집에 없는 사이에 아이들이 문고로 가끔 왔다고 한다. 대표님은 아이들이 만화책도 보게 해주고 편히 있다 가도록 하셨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이사를 갔는지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대표님은 일이 있어 부산에 가게 되고 누나가 운영하는 마트에서 잠깐 카운터를 보셨다고 한다. 그런데 한 손님이 대표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더랜다. 알고 보니 어릴 때 대표님의 문고에 자주 왔던 그 어린이였고 부산대학교 교수가 되어 그 지역에 살고 있던 것이다. 그분은 대표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큰절 인사도 하고 식사도 대접하여 따뜻한 해후를 하였다고 한다. 

매일문고 해바라기 액자와 초록의자 ⓒ 박비나
매일문고 해바라기 액자와 초록의자 ⓒ 박비나

- 어디 옛날 수필집에 나올 법한 내용들 같아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손님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문고를 거쳐갔네요. 만약에 문고를 새롭게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바꾸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앞으로 바라는 문고의 모습까지 같이 여쭙겠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좀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원래는 2층까지 규모 있는 큰 서점을 하고 싶었는데. 그 위에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좀 주고 싶고요.

- 오, 그것도 좋겠네요. 상상만 해도 좋네요. 널찍하게 말이에요. 

그리고 더 바라는 건. 여기가 더 잘 됐으면 하는 거고. 더 오래 하고 싶다는 거. 그리고 나라에서도 서점들에 협조해서 서점이 잘 살아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고 그래요.   

매일문고 안 모습 ⓒ 박비나
매일문고 안 모습 ⓒ 박비나

 

- 매일문고만의 특징과 자랑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뭐 나는 항상 모자라게 살아와서 자랑할 거도 없고. 자랑이라고 얘기할 것도 아니지만 그냥 여기 다녔던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아직도 하시네요’ ,‘옛날이랑 똑같네요’  그게 나는 자랑스럽고 그래요. 여기를 ‘기억’해 주니 그저 고맙고 그래요. 

- 너무 감동적이네요. 책을 파는 곳이지만 사람들과 연결되는 공간같아요. 그럴 때 진짜 행복하실 거 같아요. 그러면 은평구의 장수 문고로서 소망하시는 것이 있을까요? 

뭐 다른 건 없고 서점들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거죠. 

- 저도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대표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책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추천해 주고픈 책이 있나요?

저는 손자병법, 삼국지 좋아하고요. 세 번, 네 번 읽은 거 같네요. 이 책들을 학생들에게 읽어보라 합니다. 특히 남학생들에겐 그래요. 손자병법은 나이대에 따라 읽혀 지는 게 달라요. 학생들이 꼭 읽어 보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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