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소리내어 읽는 낭독은 듣는이를 대상으로 한다. 그 대상은 내가 될 수도 남이 될 수도 있지만 낭독의 시간을 잠시 나를 멈춰세우고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숨가쁘게 달려와 이제 인생 후반기를 새롭게 준비하는 이들에게 낭독은 새로운 힘이 되어 준다. 은평시민신문은 은평樂낭독유랑단의 ‘낭독프로젝트’에서 소개된 에세이를 연재로 소개하며 낭독의 힘을 함께 느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김영진 은평樂낭독유랑단 낭독 활동가 (사진 : 정민구 기자)
김영진 은평樂낭독유랑단 낭독 활동가 (사진 : 정민구 기자)

 

다섯 살 어린 내가 

서울 간 엄마찾아 길을 헤매일 때

퇴근길 지프차를 몰고 골목골목 찾아다니다 떡볶이집

앞에서 발견 후, 돌아오는 길에 떡볶이 한 입 사주지 못한

마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여덟 살 때

큰오빠의 대학 시험 낙방에 가슴 조리시던 그 표정

재수 후 수석으로 대학 들어간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희망을

심어주었고 천하를 얻은 듯한 아버지의 그 어깨는 그 누구보다도

멋져 보였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큰오빠의 시신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군복이 참 잘 어울리던 아버지

평생을 군인 정신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던 시간

짜장면 한 그릇도 아끼고 들어오셔서 된장찌개 한술 뜨시던 소박함.

 

딸자식 전세금 올린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움을 주시던

당신 자신에겐 너무 인색했지만 남에겐 늘 후하셨지요.

그렇게 아끼고 아끼시더니 젊어서는 없어서 못 드시고

먹고 살만하니 잘 먹지도 못하게 당뇨라는 친구를 만났지만

그래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 예스맨으로 삶을 사시니

당뇨라는 친구도 더 친해질 수는 없었지요.

 

그냥 더불어 갈 뿐

당뇨는 아버지에겐 옥의 티지만 걸림돌은 되지 않더군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자던 말씀

그때는 몰랐습니다.

 

왜 저러실까~ 불만도 투정도 하였지만

세월이 지나 아버지 나이가 되어보니

십분 백분 따르지는 못해도

작으나마 깨달아짐과

어느덧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음을

못다한 것에 미련이 남아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매일매일 실천하시던 아버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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