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의회 운영 위해 조례안 통과... 셀프 특혜 지적 넘어서는 교섭단체 되어야

은평구의회. (사진: 정민구 기자)
은평구의회. (사진: 정민구 기자)

은평구의회가 앞으로 교섭단체를 두고 의회를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효율적인 의회 운영을 목적으로 교섭단체를 둔다는 것인데 사실상 그동안 구의회 리더 격이었던 의장단의 힘을 빼고 교섭단체를 중심으로 의회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한 양당체제에서 교섭단체를 두는 것은 또 하나의 ‘경비’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일 의원의 대표 발의를 통해 전체 구의원이 동의하여 발의된 ‘은평구의회 교섭단체 구성 및 운영 조례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내년도부터 은평구의회도 공식으로 교섭단체를 두고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은평구의회에선 당별로 원내대표를 두고 일부 첨예한 사안에 대해선 논의하거나 당대 당으로 의견을 조율하곤 했지만 이는 공식적인 행보는 아니었다. 구의회의 주된 의정 활동인 상임위원회 회의는 위원장 중심으로 회의가 진행되었고 안건 별로 위원장이 사안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왔다.

국회에는 공식으로 교섭단체 또는 원내교섭단체를 두어 의사진행에 관한 중요한 안건을 협의하지만 지방의회는 상위법이 없어 교섭단체를 구성하거나 운영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난 3월 지방의회도 교섭단체를 둘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어 몇몇 지방의회에선 교섭단체를 두는 곳들이 나오고 있다.

은평구의회도 이번 정례회에서 관련 조례를 가결시켜 앞으로는 교섭단체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조례에 따르면 교섭단체의 목적 및 정의, 구성, 기능, 운영 지원 사항 등이 담겨 있다. 조례가 통과됨에 따라 은평구의회는 앞으로 의회에 3명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되고, 그 교섭단체는 대표 의원과 부대표의원을 둘 수 있다. 교섭단체를 두게 되면 단체는 상호 간의 사전 협의와 조정을 하게 되며 소속 정당과의 교류∙협력을 해야 한다. 교섭단체에는 기능 수행과 대표 의원의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 예산 범위에서 필요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

 

상임위가 있는데 교섭단체는 필요할까?
교섭단체 역할 강화되면 의장단 역할은 축소될 가능성 높아

은평구의회 교섭단체 구성 및 운영 조례 내용.
은평구의회 교섭단체 구성 및 운영 조례 내용.

교섭단체를 둘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을 개정한 주된 이유는 바로 의회 운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함이다. 특히 의회가 인원이 많을 수록 의견을 조율해 내기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이를 교섭단체 단위로 하게 된다면 정당 간 대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효율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평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의장을 뺀 의원 모두가 참여하는 형식으로 의원들 모두가 의견을 개진하며 회의를 진행한다. 때문에 회의가 길어지고 때로는 지지부진한 성격을 갖기도 한다. 이 때 교섭단체가 서로의 의견 차이를 조정한다면 회의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교섭단체 출범은 지난 30년간 상임위 중심의 의장단 체제의 변화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은평구의회 의장단은 의장, 부의장, 행정복지위원장, 재무건설위원장, 운영위원장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본예산 또는 추경 심의 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별도로 뽑아 회의를 운영토록 한다. 상위법에서 규정하는 윤리위원회는 아직 구성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의장단에서는 회의를 주재하고 소속 위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업무를 추진하기 위한 업무추진비가 책정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 교섭단체가 만들어지면 의회는 교섭단체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기 때문에 상임위 회의 자체는 오히려 건조해질 수 있다. 회의 석상에서 의원끼리 다툼을 벌인다던가 소수의견이 반영되는 일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평구의회 회의는 비효율적이었을까?

은평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는 의장을 제외한 18명의 구의원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은평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는 의장을 제외한 18명의 구의원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교섭단체 출범은 그동안의 은평구의회 운영이 비효율적이었는가 의문을 갖게 한다. 지역조례는 상위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그 지역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래야 조례가 당위성을 가질 수 있다.

위원 수로만 따지면 행정복지위원회와 재무건설위원회는 각각 9명씩, 운영위원회는 7명으로 구성된다. 통상 큰 이견 없는 운영위를 제외한다면 회의 진행의 효율성은 행정복지위원회와 재무건설위원회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양 상임위원회가 의원들 간의 이견이 있어 회의가 지연되었던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8대 의회에서는 쟁점이 되는 사항으로 상임위에서 표결까지 이어진 건은 20건을 넘지 않는다.

결국 비효율적인 회의로 평가받을 수 있는 위원회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밖에 남지 않는다. 사실상 모든 은평구의원이 참여해 여러 안건에 질의와 심의를 하다 보니 운영의 묘를 살리기 어렵고 매년 회의가 지지부진한 성격을 갖게 된다. 합리적인 회의 진행을 위해서는 위원 구성 방식에 변화를 주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소수의견 배제 우려도 있어

지난 8대 은평구의회에서 표결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정민구 기자)
지난 8대 은평구의회에서 표결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정민구 기자)

은평구의회가 교섭단체를 운영하게 될 때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소수의견 배제’다. 당별로 교섭단체가 운영된다면 은평구의회는 사실상 거대양당의 당론이 지배하는 결과가 예상된다. 의원 한 명 한 명이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고 지역여론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자칫 소수의견이나 다양한 의견이 묵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양한 의견이 활발히 제시되어야 할 의회가 자칫 침묵의회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은평구의회 A 의원은 “은평구라는 지역이 2개 당 혹은 2개 의견만 있는 게 아니고 이보다 더 많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역대 의회에선 개별 의원 한 명 한 명이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았고 다양성 측면에선 오히려 지난 의회가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교섭단체를 통한 효율성을 따지다 보면 결국 의원들의 창의성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했다.

또한 A 의원은 “국회의 양당 정치가 얼마나 많은 소수의견이 묵살하고 있는지 잘 알 것이다. 국회가 그렇다 하더라도 지역에서 만큼은 양당정치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을 위한 공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견을 제시하고 회의를 통해 결정될 수 있는 구조가 더 바람직하다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의회의 경우 18명 의원 중 민주당(14명), 진보당(3명), 정의당(1명)으로 구성되어 진보당과 정의당 구의원이 최소 3명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이 1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례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조례안에 원내대표 업무 추진비 등 예산이 들어가는 내용은 모두 뺐음에도 결국 보류 처리됐다.

 

양당정치에 교섭단체 운영은 예산낭비만 될지도
타 지역에선 문제시 되어 조례 추진에 제동 걸리기도

은평구의회 교섭단체 지원에 관한 예산안.
은평구의회 교섭단체 지원에 관한 예산안.

다른 지역에서 교섭단체 운영 조례와 관련해 비판의 목소리가 가장 많이 나오는 지점은 ‘예산 지원’ 문제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닌 교섭단체 운영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며 엄밀히 따지면 당원 모임인데 여기에 세금을 투입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2024년도 은평구의회 사무국 예산안을 살펴보면 의정운영공통경비 중 교섭단체지원에 관한 예산이 1000만원, 교섭단체 대표 2명에게 총 144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편성했음을 알 수 있다.

부산 중구의회의 경우는 양당체제로 7명 뿐인데도 교섭단체를 만들었고, 대구시의회는 33명 의원 전체가 국민의힘 소속 의원 밖에 없어 교섭 대상도 없는데 교섭단체를 만들어 시민단체로부터 ‘그들만의 경비’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거제시의회의 경우 교섭단체 조례를 추진하다 거제경실련 등이 ‘교섭단체에 시민의 세금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2월 초 거제경실련은 “조례안은 교섭단체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굳이 필요도 없는 교섭단체 운영에 세금을 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혹시 ‘교섭단체 소속 의원들의 의견 수렴 및 조정’이나 ‘교섭단체 상호 간의 교류·협력’(제3조)에 비용이 필요한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같은 정당의 의원끼리 모이는 자리는 엄밀히 따지면 당원모임이다. 코로나19로 시민들의 삶은 고통에 허덕이는데 필요하지도 않은 교섭단체 모임, 당원 모임에 왜 시민 세금을 써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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