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시민신문 창간 19주년 기념사

19년 전 이맘때 즈음이었겠죠? 우리 동네에도 좋은 지역신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 하나로 은평시민신문 창간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을 선배들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중앙의 권력이 바뀌면 우리 사는 모습도 바뀌지 않을까 기대했던 마음이 한편으론 공허한 희망이었음을 느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앙정치의 변화가 곧 지역정치의 변화로 지역주민의 삶으로 바뀌는 게 아니구나 느낀 선배들은 우리지역은 우리가 나서서 뭐라도 해야 바뀌겠구나 생각했답니다.

그 마음이 은평시민신문의 창간배경이고 정신입니다.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나서서 들여다보고 대안도 마련해나가는 것, 작아 보이는 문제지만 그 하나를 바꿔냄으로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많은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 보자는 마음이었던 거죠.

하지만 마음과 현실의 차이는 컸습니다. 지역신문이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느껴지던 2004년 출발한 은평시민신문은 마치 태풍을 만난 작은 배 한 척 마냥 이리 흔들, 저리 흔들렸습니다. 특히 서울은 중앙과 분명히 다른 개념임에도 오랜 세월 서울이 곧 중앙이고 중앙이 곧 서울이라는 인식이 커 서울은 지역신문을 운영하기에는 더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게다가 빠르게 발전하는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언론지형,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정책이 전무한 상황들은 그 어려움을 가중시켰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2000년 경남을 필두로 전국에서 자취를 감춘 일명 ‘계도지’가 아직 서울 25개 자치구에는 남아있습니다. 그 예산을 다 합치면 일 년에 백억이 훌쩍 넘는다지요? 한 푼이 아쉬운 판에 계도지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저희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좋은 신문을 만드는데 보태면 그래도 그 예산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더 안정적인 상황이 되면 그 때 다른 방안을 모색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계도지 예산이 지금처럼 쓰이는 게 아니라 언론 발전을 위한 지원정책 예산으로 쓰인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요. 몇 년 전 전국에서 계도지 예산이 제일 먼저 사라진 경남도청을 찾았습니다. 당시 도청 공무원 한 분이 해 주신 얘기가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계도지요? 그런 거 없는데. 그리고 그건 시민들에게도 행정에도 도움 되는 게 아니에요”라는 말입니다. 저희는 고민 끝에 행정의 계도지 예산은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결정으로 더 거친 파도를 만나야 했음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지만요. 

수년 간 이어진 은평시민신문의 고민은 사실 딱 한 가지입니다. 지역신문으로서 어떻게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며 좋은 취재와 보도로 지역에 기여할 수 있을까, 어디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입니다. 

어쩌면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전국의 많은 모범적인 지역신문을 살펴보고 내린 결론은 ‘지역신문은 그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 맞는 운영 모델과 원칙을 갖고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은평시민신문의 고민은 은평 사람들과 은평에 맞는 지역신문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하겠지요. 

지금까지 후원과 응원을 아낌없이 보내주신 분들의 든든한 힘을 믿고 은평시민신문은 새롭고 훌륭한 지역신문 모델을 만들어 가려합니다. 늘 어렵고 힘든 주변 상황이 금방 바뀌지는 않겠지만 은평시민신문이 꾸는 꿈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용기내서 더 전진하겠습니다. 

최근에 은평시민신문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섰습니다. 바로 은평을 넘어 서울로 시선을 확장하는 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울이 곧 중앙은 아닙니다. 물론 많은 일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서울은 고유한 서울의 역사, 문화, 정치, 도시문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은평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그런 다양한 서울의 이야기를 담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은평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그 도전의 결과물은 인터넷 언론 ‘저널서울’ 창간과 주간 뉴스레터 ‘서울구경’ 발행입니다. ‘저널서울’은 지난 7월에 창간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저널서울]

‘서울구경’은 2022년 10월부터 매주 꾸준히 발행하고 있습니다. 젊은층이 많이 본다는 인스타그램도 개설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저희는 노력의 결과가 헛 될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이번 신문은 창간 19주년 기념에 300호 발행이라 많은 분들께 축사를 요청 드리고 축하하는 자리도 마련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 자리는 내년으로 미룸을 양해부탁 드립니다.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2024년 20주년을 준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늘 응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 분 한 분의 응원과 힘으로 지금까지 달려온 것처럼 앞으로도 지역에 꼭 필요한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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