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전쟁 잔재물 박물관 : 전쟁의 잔혹함과 변화하는 시각을 담은 역사적 공간

▲  호찌민 전쟁 박물관ⓒ 김주영
▲ 호찌민 전쟁 박물관ⓒ 김주영

베트남 호치민 시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역사 관광 명소가 있다. 그 곳은 우리 한국과도 관계 있는 베트남 전을 주 테마로 한 <호치민 전쟁 박물관(War Remnants Museum)>이다. 해외여행객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고 이용해봤을 트립어드바이저*에서 2012년 우수 여행지로 (certificate of excellence) 인증받아 왔고, 특히 2023년 기준 여행 카테고리 내 상위 1% 명소로 선정되었다.

*TripAdvisor: 세계 명소를 여행자들이 직접 리뷰, 평가하여 여행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매해 관광지의 서비스, 품질, 만족도 등 참여평가를 통해 여행자들이 꼽은 최고 명소(Travelers Choice Best of Best)를 선정하고 있다.

허나 기분 좋게 휴식하러 온 베트남에서 역사 관광을, 그것도 '전쟁 잔재물(remnants)'을 보러 굳이 시간내어 찾아가기엔 쉽게 발 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본 기자는 이 박물관을 방문한 많은 인파를 보고 놀랐다. 호치민 시 대표적인 여행자 거리인 부이비엔(Bui Vien)에서 봤던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관광객이 마치 모두 여기에 집결한 것 같았다. 호치민 전쟁 박물관의 어떤 특별한 점이 여행객들을 매료시킨 걸까?

지난 7월 28일 직접 둘러보며 확인해봤다.

▲ 호치민 전쟁 박물관 호치민 전쟁 박물관ⓒ 김주영
▲ 호치민 전쟁 박물관 호치민 전쟁 박물관ⓒ 김주영

베트남 시각에서 본 세계 역사

세계 역사를 송두리째 흔든 몇몇 사건 중 하나로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발발한 이념전쟁을 꼽을 수 있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베트남 전쟁(월남전)은 베트남 시각에서는 베트남(공산주의) 독립을 위해 미국을 포함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맞서 싸운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1960-1975)이다. 그 바로 직전에는 프랑스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1946~1954)이 있었다.

베트남 시각에서 두 전쟁은 상대국만 다를 뿐 자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일련의 독립사적 투쟁이었다. 그래서 이곳 호치민 전쟁 박물관에선 월남전 뿐 아니라 프랑스가 남긴 잔해와 관련 자료까지 일부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의 시각에서 전쟁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니 학창 시절엔 놓치고 있던 세계사 퍼즐이 입체적으로 하나씩 재조립되었다.

본 박물관은 베트남전 당시 미국 정보부(United States Information Agency) 건물이 있던 부지에 지어지면서 역사적 상징성을 더했다. 한편 완공 이래 줄곧 '미국 전쟁 범죄 박물관(Exhibition House for US and Puppet Crimes)'이란 이름으로 운영되다가 1995년 미국과 수교하며 전쟁 잔존물 박물관으로 개명했다.

한편 박물관은 베트남 입장에서의 역사를 담고 있는 바 베트남 전쟁은 "미국 침략"(U.S. Aggression 1954-1975)으로 표기하고 당시 미국에 협조한 남베트남 군에 대해선 "베트남 꼭두각시 군"(South Vietnamese Puppet Military Forces)이란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박물관 앞 마당은 실제 전장에서 쓰인 전투기, 헬리콥터, 대포가 전시되어 있고 바로 옆 야외 별관에는 고증을 거쳐 구현한 전쟁 포로수용소 및 감옥시설(전시용)이 있다. 3층으로 이뤄진 박물관 본관은 크게 7개의 테마 전시실(역사적 증거, 추모, 전쟁과 평화, 고엽제와 그 후 피해상황, 전쟁범죄, 미국침략에 맞선 세계 연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 내 투어 시 한국어 안내 서비스도 (유료)지원중이다. 

▲  오하이오 신문 '더 플레인 딜러'ⓒ 김주영
▲ 오하이오 신문 '더 플레인 딜러'ⓒ 김주영

전쟁의 잔혹함을 담은 사진들

"잔인하고 잔혹하다." 전시관을 하나씩 돌며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낱낱이 공개된 베트남 전 관련 종전사진 자료를 마주할 때 나오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 신문(The Plain Dealer) 1969년 11월 20일자 신문 첫 장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남베트남 도로 위의 시신 덩어리들(A clump of bodies on a road in South Vietnam)' 사진은 현 보도윤리 지침 상으론 게재 불가 판정을 받을 공산이 크다.

물론 당시 보도 사진은 관 내 다른 전쟁 범죄 사진에 비하면 약과다. 총에 맞고 숨진 노인, 여성, 아이 등의 단순 피사체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총알과 포탄을 맞아 사지가 찢기고 내장이 흘러나온 임신 여성과 그 옆에 피묻은 채 뒤틀린 아이 사진까지 공개되어 있다. 일순간 포착된 사진을 보며 악몽 같았을 전후 상황이 연상된다. 설상가상 미군이 베트남 정글전 때 공중 살포한 고엽제(산림파괴용 제초제)에 노출된 피해자 및 유전 질병을 얻은 3세대 후손들의 모습도 전시되어 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되는 전쟁은 후대의 누군가에겐 상처와 아픔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국가 간 이념 대립으로 발발한 전쟁이지만 정작 화포로 산화된 생명은 이를 주도한 위정자가 아닌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린 군인과 민간인들이었다.

▲  단체 방문 중인 베트남 학생들ⓒ 김주영
▲ 단체 방문 중인 베트남 학생들ⓒ 김주영

한편 이 참혹한 전쟁 자료들은 관람객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다. 입구에서부터 1층 로비까지 길게 줄지어선 베트남 초,중학생들 얼굴이 떠올랐다. 단체현장학습 차 방문한 것이 분명한 학생들은 교사 인솔에 따라 전쟁으로 인한 동족의 죽음을 눈에 담게 된다. 이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욱씬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전쟁범죄' 전시관에 들어섰다. 7살쯤 돼보이는 외국인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학생들 옆에서 미동조차 없이 피해현장 사진을 응시하더니 옆에 있던 남성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미국인 가족 분명했다. 그 맞은편의 또 다른 백인 여성은 흐느끼고 있고 또 그 옆 팔뚝에 해군(Navy) 문신 한 남성은 눈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린이에게 해당 사진들이 교육적으로 유효한가는 잠시 차치하고 베트남 사람이건, 미국 사람이건, 한국 사람이건 말은 통하지 않아도 필시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전쟁 만큼은 결코 일어나선 안된다는 것을."

▲  전쟁 범죄 사진을 바라보는 어느 미국인 소녀ⓒ 김주영
▲ 전쟁 범죄 사진을 바라보는 어느 미국인 소녀ⓒ 김주영

이념 전쟁이 남긴 잔재와 그 이후

피 흘린 전쟁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베트남은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중이다. 자유민주주의 편에 섰던 남 베트남의 수도 사이공(Saigon)은 북 베트남에 함락된 후 독립전쟁 영웅, 응우옌 신 꿍(Nguyễn Sinh Cung)의 별명을 따서 호치민(깨우치는 자)으로 개명까지 했다. 한편 과거 총부리를 겨눈 미국과 베트남은 21세기 현재 돈독한 외교관계를 유지중으로 2019년 당시엔 북미정상회담(미 도날드 트럼프/북 김정은) 장소로 중간지대 역할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 시 미군 다음으로 많은 군병력을 투입했던 대한민국은 현재 베트남이 가까이 하는 외국 중 하나다. 축구공 하나로 베트남 전국민 자부심을 세우는 데 일조한 박항서 전 베트남 국가대표 감독부터 그들 대중문화에 깊숙이 파고든 K컬처(음악, 영화드라마 등) 그리고 삼성, LG전자 공장 진출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창출까지 베트남에선 한국인이라면 일단 환대받는 분위기다. 

전쟁 박물관만 놓고 보면, 개관시 전시된 한국 관련 역사자료는 1992년 한-베 수교 후 대부분 철거되어 극히 일부 통계 및 사진 자료만 보존중이다. 이런 추세라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과 미국은 앞으로도 공산주의 베트남과 공동 번영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치민 전쟁 박물관이 대중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그리 읽힌다. 3층 마지막에 배치된 전시관 테마는 과거 역사는 '있는 그대로' 직시하되 현재의 평화를 미래로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어린이들의 글과 그림으로 채워졌다.

▲  전쟁 박물관 3층 - 미래 평화를 위해ⓒ 김주영
▲ 전쟁 박물관 3층 - 미래 평화를 위해ⓒ 김주영

한 번의 방문, 달라진 시각 

편안히 쉬고 싶어 방문한 베트남에서 호치민 전쟁 박물관의 전쟁사진은 긴 여운을 남겼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가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명백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어느 수준에서 어느 정도까지 우리는 마주하고 공유할 수 있을까.

한때 베트남을 식민지배한 프랑스와 이념전쟁을 치른 미국 간 전쟁 피해사를 마주한 대중들은(외국인 포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점에서 투명하게 공개된 역사는 위정자들의 염려와는 달리 실보단 득이 커보인다. 이웃국과 매듭 지어야 할 동아시아 근현대사 이슈가 산재한 대한민국이 참고하면 좋은 박물관 해외사례다.
 

[참고자료]
1) 호치민 전쟁 박물관 일부 사진자료 | 개인 블로그 (잔혹 장면 주의)
https://blog.naver.com/jootime/223169959596 
2) 월남전 참전 용사 인터뷰 | 은평시민신문 
https://www.e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1232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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