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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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보신 적이 있나요?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무엇을 챙기게 되나요? 일단 여행의 목적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관광이 목적인지, 쉼이 목적인지, 현지인과의 만남이 목적인지 말이지요. 여행의 기간도 따져볼 것입니다. 당일치기가 좋을지, 3박 4일이 좋을지, 아니면 내친김에 한 달 동안 지낼지. 여행의 경로도 구상해볼 것이고요. 교통수단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입니다. 단 며칠 동안 떠나는 여행도 이렇게 생각할 것들이 많네요. 그렇다면 보통 몇 달 이상의 기간을 할애하여 받게 되는 정신과 치료는 어떠해야 할까요?

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정신약물학이 진보하여 좀 더 효과적이고 독성이 덜하면서 부작용은 적은, 좀 더 치료 초점을 가진 정신과 약물이 점차 개발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신과 진료 현장에서는 약 처방을 빼고 의사와 얘기를 나누기는 쉽지 않은 듯 보입니다. 정신과 진료를 통해 약 처방만 받으면 그동안 앓았던 마음의 병이 다 해결이 되는 것일까요?

소통이 잘되는 진료실을 찾는 게 중요

2019년 10월 뉴잉글랜드 의학회지에 『정신의학 정체성 위기의 결과』라고 하는 부제를 단 사설이 실립니다. 여기에서는 생물정신의학은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몸‧마음‧사회의 연결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좀 더 관계중심적이고 인간적인 치료가 우리에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정신과 진료에서 약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의사와 환자의 적절하고 효과적인 소통이 필요하다고 위의 사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정신과 약물치료에 있어 염려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치료 기간에 대해, 스스로 관리하는 마음 건강에 대해 의사와 환자 사이에 소통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경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때로는 진료실에서 의사로부터 “약의 부작용이 없다”라고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작용이 없는 치료는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투명함이 좀 더 마음이 힘든 환자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통한 회복의 여정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첫 번째는 “소통이 잘 되는 진료실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소통에 대해 사전을 찾아보면 ①막히지 않고 잘 통함, ②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입니다. 오해가 없는 소통이 과연 있을까 싶겠냐마는 그래도 오해를 최소화하는 소통을 진료실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소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10분은 마음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찾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대화를 통해 답답한 마음의 창문을 열어 잠시나마 환기를 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전하고 싶은 말씀은 “정신과적 진단명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하늬 작가가 쓴 『나의 F코드 이야기』를 보면 자신의 진단명이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에서 ‘우울병 에피소드’와 ‘강박장애’로 바뀌었고 마지막으로는 ‘양극성 정동장애, 주요 우울삽화’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세 명의 의사가 각기 다른 진단을 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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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교과서인 『신경정신의학, 제2판』에서도 정신의학에서 진단은 임상병리검사나 특수 검사보다 병력청취, 정신상태검사 등 임상 기술에 더 의존한다고 합니다. 정신과에서는 의사의 임상 경험과 지식 정도,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른 진단명이 붙을 수 있습니다. 헤이즈 등이 쓴 『수용전념치료, 제2판』에서는 정신질병분류가 있더라도 치료의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기에 분류가 치료에 주는 유용성이 낮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치료의 방향을 바꿀 정도의 진단명이 아니라면 진단명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의존성 있는 약을 처방하는 경우 의사는 설명의 의무 이행해야

세 번째로는 “모든 약은 효과와 부작용이 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든 약물은 치료 용량 범위와 독성 용량 범위를 갖고, 약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치료 용량 범위와 독성 용량 범위는 달리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약의 사용 목표, 효능을 벗어난 부작용 혹은 이상 반응도 모든 약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신과 약은 뇌에 작용하기에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 대한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지요. 뇌는 우리의 마음과 닿은 기관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온몸과 연결된 기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정신과 약에 있어서 중요한 부작용은 ‘의존성’입니다. 회복의 과정을 여정이 아닌 고인 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존성이 있을 수 있는 약인 벤조디아제핀 계열 항불안제와 수면유도제는 심리적, 신체적 의존성이 있을 수 있기에 필요성을 신중히 따지고 좀 더 의존성 염려가 없는 다른 안전한 약을 우선해서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의존성이 있는 약을 처방하는 경우 의사는 설명의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정신과 약을 사용하는 과정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여 항로를 유지하고 착륙하는 항공의 여정과 비슷합니다. 정신과 약을 시작할 때는 낮은 용량에서 서서히 증량을 합니다. 항공 여행 이륙 전 기내 안내방송을 듣는 것처럼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과 약을 유지하는 것은 항로를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 주에서 몇 달, 재발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몇 년의 기간 동안 약을 유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아팠던 기간이 길다면 치료기간이 길 수 있다는 것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치료 종결은 비행기가 착륙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마음의 힘듦이 충분히 덜어졌을 때, 환자 스스로 원할 때, 약의 효과보다 부작용으로 인한 어려움이 더 클 때 우리는 치료 종결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재발에 주의하면서 함께 상의하여 약을 덜어가는 속도와 기간을 정합니다. 금단증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약, 보조적인 약부터 서서히 덜어가는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시대에 우리의 삶을, 마음을 힘겹게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요즘 정신과 진료를 찾는 분들도 계속해서 늘고 있고요. 이런 힘겨운 시절의 가운데 이 작은 글이 모쪼록 힘겨운 분들의 마음 회복의 여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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