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 조준호 대표이사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 이동권 향상이란 본질은 흐려지고 시위 방법에 대한 갈등이 정치ㆍ사회 영역으로 확산 중이다. 본인은 최근 무릎 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 첫 수술은 작년 국제기구(동유럽 조지아 사무소) 근무 중이던 2021년, 그리고 두 번째는 올해 1월 말이다. 코로나로 숨 막히던 외국 생활 중 홀로 휠체어·목발 생활을 3개월가량 했다. 가족 없이 아프면 서럽다는 말을 피부로 느꼈다. “장애인은 삶의 한순간에 스쳐가는 불쌍한 타인이 아니라 언제든 내가, 내 가족이 당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겪고 있는 ‘이웃’이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류승연/푸른숲) 본문의 글귀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경계를 허무는 ‘베리어 프리(Barrier Free)’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됐다. 

은평구 구산동에는 아동복지시설로 1959년 설립돼 1980년부터 장애인 복지를 시작한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이 있다. 지역주민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서울재활병원, 서부장애인 종합복지관, 은평대영학교, 서부재활체육센터, 은평재활원, 은평천사원 등 26개 기관을 운영 중인 지역사회통합 돌봄 서비스의 메카다. 그곳에서 대를 거쳐 장애인 복지 나아가 일반 아동, 청소년 대상의 복지사업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 중인 조준호 대표이사를 만났다. 그는 은평구 토박이다. 그렇다고 ‘토호 세력’이나 ‘지역 유지’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인물이 아니다. 함께 앞마당을 걷는데 한 아동이 창문 열고 대표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옆에 있는 사람 누구에요?” 정겹게 묻는다. 아이들이 대놓고 좋아하는 복지기관의 대표. 그 분의 삶을 들여다봤다.

지역 내 유명 인사시다. 평소 언급하지 않은 사안 위주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엔젤스헤이븐 조준호 대표이사. (사진: 김주영 시민기자)
엔젤스헤이븐 조준호 대표이사. (사진: 김주영 시민기자)

기독교인이다.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엔젤스헤이븐, 이곳은 미국 선교사님들과 한국 목사님들이 1959년에 함께 세운 것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기독교적 가치가 내재돼 있다. 외증조 할아버지 초기 설립자로 계셨고 가족 대대로 이곳에 거주하며 봉사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이곳이 종교시설은 아니다.

우리는 기독교적 사회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사회복지법인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다. 늘 당당히 밝히는 부분이 있다. 이곳에 기관을 설립할 때 재정적 기여도를 보면 1/3은 미국 선교사, 1/3은 한국인, 그리고 나머지 1/3은 서울시로 볼 수 있다. 그 당시 정부가 기업들에게만 공공토지를 불하(拂下)했다고 알고 있는데 우리 같은 사회복지법인도 받았다. 그 사실과 별개로 여기 재산을 특정 개인 것이라 생각한 적 없다. 사회복지법인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것이다.       

기독교적 청빈사상이 엿보인다. 대표님의 청소년기가 궁금하다.

67년생으로 55세다. 까마득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일단 역촌초-서대문중-대신고를 나왔다. 한 반에 60~70명 있던 때로 친구들과 달리 거주지보다 먼 학교에 배정됐었다. 그래도 시설 내 원장 관사가 있던 여기 구산동 시설에서 추억이 많다. 시설 아동들과 동고동락했다. 예민한 사춘기 때는 마음 한편엔 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밥을 함께 먹어도 어쨌든 나는 원장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 지금은 전국 아동 시설 내 원장 숙소가 있는 곳은 없다. 과거 다른 시설에서 아동 갑질 사건(아이들에게 수발들 게 한 이슈)이 터졌던 게 이유다. 몇몇 일탈로 모든 기관이 눈초리를 받았다. 가슴 아픈 일이다.

부모님은 어떤 원장이셨나?

당시 원에서 산다는 것은 원아들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의미였다. 아이들이 자립해도 마찬가지다. 시설에서 자립한 30-40대의 성인이 술 거하게 마시고 한밤중에 찾아와 관사 유리창에 돌 던지며 주정 부리는 자도 있었다. 성인이 된 그들 삶이 사회에서 녹록치 않기에 본인을 이해해 주는 원장을 찾아와 그런 식으로 속을 삭히는 거다. 아버지는 늦은 밤까지 그들 얘기를 듣고 위로하며 다독여주셨다. 덕분에 나도 술주정하는 자들에게 단련됐다. 두렵지 않고 그들과 대화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술과는 거리가 먼 기독교 가정 마당에 술 냄새로 자욱했겠다. 대학 생활은 어땠는가?

대학교 추억도 상당하다. 청소년 때부터 “하나님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가졌다. 김주영 기자도 마찬가질 텐데 기독교 모태신앙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지 않나? 신의 존재에 대한 답을 찾고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했다. 86학번이다. 30살 때까지 정리가 안 되면 교회를 떠나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술 얘기하니 떠오르는데 철학과 분위기는 독특하다. 과내 선배의 권위는 철학적 우위에서 비롯된다. 아래 학번에게 논리적으로 설득 못하면 인정 못 받는다. 교수조차 칸트에 대해 엉터리 강의하면 제자들에게 무시당한다. 이런 유별난 전통 덕에 신입생 때 선배들이 술 권할 때 “왜 술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납득될 때까지 술 안 먹었다. 우리 철학과에는 ‘까라면 까’ 분위기는 없다.

보통의 대학 문화와 상당히 다르다. 그 후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는데.

그 사이에 스토리가 있다. 80년대 교육(학생)운동에 투신했다. 당시 거리에 나선 친구들은 한 번씩 잡혀갔다. (그리고 나중에 민주화운동 공헌자로 등록금 면제도 받았다) 한편 나는 친구들 따라 가두 투쟁에 참여할 수 없었다. 시설 아이들 때문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부르셔서 “너는 운동하지 마라. 네가 운동하다 잡히면 아이들에게 피해간다.”라고 말씀하신데 동의했다. 철학과 선배·동기들에게 속사정 얘기하니 이해하더라. 철학과 분위기여서 가능했다. 대신 학업·학원 민주화를 위한 족벌 재단 투쟁에 참여했다. 세종대, 동국대, 건국대 등을 방문하며 교육 컨설팅을 진행했다.

어떤 류의 컨설팅이었나?

예를 들어, 공정한 교수 채용과 총장 선거, 등록금 협상, 좋은 교육과정 등에 대해 방향을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교수 강의평가 도입도 있었다. 당시 교수들은 전부 유학 가서 외국에서 공부할 때 담당 교수들에 대한 평가를 했으면서, 본인들이 교수된 후엔 어떻게 학생이 교수 평가하냐고 반발했다. 지금은 모든 학교에 도입된, 당연하고 자연스럽지 않나? 당시엔 그런 기본조차 안 갖춰진 상태였다. 그런 방식으로 족벌 투쟁에 가담해 학생 의식까지 깨우는 교육 운동을 전개했다.  

그래서 학부 졸업 후 교육학 공부를 결심한 건가?

맞다. 교육사회학과 교육 불평등에 관련된 공부를 많이 했다. 석사논문 제목은 ‘1980년대 중반 운동권 학생들의 정체성 형성에 관한 일 연구 : 중등교육 경험과의 관련을 중심으로(2002)’다.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자들이 현 정치권 주류인데, 그들 정체성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 연구라 자부한다. 

대학원에서 참교육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 획일적인 교육과정이 아닌 학생 개개인의 인격체에 대한 존엄을 고려한 교육. 이를 위해선 소외받는 아이들이 없어야 한다. 현재의 한국교육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어떤 환경에서든 잘하고 인정받는 경향이 높은 시스템이다. 그럼 주목해야 할 대상은 누굴까? 학습에 뒤처진 관심 밖 아이들이다. 맞춤형 교육이 필요한 장애인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각자의 약점ㆍ장애를 디딤돌 세워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통합교육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 갖고 참여하는 형태 말이다. 장애인 복지 이념 중 사회통합(integrity)과 포용(inclusion)이 있다. 단순한 교육 돌봄에서 공동체 속에서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가르치는 통합적 돌봄 교육이 필요하다 본다. 

확고한 교육철학을 갖고 계시다. 불편한 질문 하나. 학생운동 때 족벌 해체를 주장한 당사자인데 현재는 아버지를 이어 엔젤스헤이븐을 운영 중이다.

엔젤스헤이븐. (사진: 김주영 시민기자)
엔젤스헤이븐. (사진: 김주영 시민기자)

처음 제안 받을 때 못하겠다고 버텼다.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과 배치되는 모순적 상황이었다. 선배들에 상의하니 “밑에서부터 하는 변화도 있지만 위에서 네가 가진 생각을 현실화하는 것도 방안이다”라고 조언 받았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본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떤 거버넌스 체제를 유지 중인가?

봉사활동 확인서 발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직원들과 토론한다. 모든 걸 오픈하다 보니 임직원간 신뢰감이 있다. 한 예로, 성적이 전교 상위권 학생 부모에게 ‘은평봉사상(사회복지법인 제정)’ 수여를 검토해달란 요청을 받았다. 살펴보니 전단지(폐종이) 수집 봉사 300시간이 기재되어 있더라. 100장 모으면 한 시간 부여하는데 부모가 수집해 자식에게 건네면서 봉사활동 스펙을 쌓는 구조더라. 이런 청탁·압박이 들어오는 걸 용납할 수 없어 상 자체를 없애버렸다. 또한 향후 엔젤스헤이븐을 투명하게 운영, 소통할 수 있도록 여러 모델을 생각 중이다. 법인내의 복지 전문가들을 독립시켜 그들로 구성된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법인의 사업 일부를 함께하는 것 같은 형태와 같은.

엔젤스헤이븐은 다양한 사업을 전개 중이다. 마지막으로 사업 비전은?

연차보고서를 보면 상세히 나와 있는데 이곳 은평천사원 아이들의 ‘평균 키’, ‘대학 진학률과 취업률’ 등을 동일 연령대 층과 비교를 통해 엔젤스헤이븐의 기관 목적이 효과적으로 달성되고 있다는 객관적 데이터가 제시돼 있다. 향후엔 기 보유한 기관 전문성을 살리고, 그 서비스 효과를 극대화하여 “가족이 사는 지역사회 내의 관련 서비스를 통합, 연계한 ‘장애인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을 안착시키고자 한다. 그 외 공공재활, 아동·청소년 복지, 지역복지 등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계획·수행 중이다. 

새로운 공적 서비스를 먼저 만들어가는 것에 두려움은 없다. 성공하면 큰 변화, 실패하더라도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엔젤스헤이븐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20여 년 세월이 흘렀다. 평생교육 측면에서 장애인 복지 나아가 지역사회 복지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 감사하게도 연간 30억 후원금품을 받는다. 후원금은 국민들의 소중한 돈이다. 신뢰를 담은 소중한 돈이기에 30억을 100억 이상의 가치를 담는 하는 사회복지 사업으로 사회에 보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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