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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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이사는 내게 또 하나의 도전이 되었다.

이사하기 전, 여러 공공시설을 다녔다. 내 활동지원사에게 공공시설의 비장애인(직원)들은 내 코앞에서 “이분은 알아들어요?” 라는 말을 했다. 나는 “말, 알아들어요?” 이 말을 근 35년 들었어도 웃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을 연속으로 듣는 건 평소에 의식이나 생각, ‘언어장애’의 가치관도 없었던 나에게 ‘아, 내가 언어장애인이구나.’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독립된 한 사람의 아닌, 언어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너무나 화가 났다. 일부러 글자판을 사용하여 대화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내 모습이 그저 단어 연습하는 걸로 보였을까? 단순히 내가 내 손으로 자필 서명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는 무조건 언어장애인은 말을 못 알아들을 거라는 잘못된 생각이 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특히 이사는 나에게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은행 업무나 관공서 서류 처리를 해야 하므로 내가 어떤 형태로 의사소통을 하는지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생각도 차별 대우다. 활동지원사는 나를 지원하는 사람이지 내가 될 수는 없다. 

사실 난 ‘언어장애’에 대한 가치관이 없으며 창피하다는 느낌도 없다. 청소년 시기에 이어 성인이 되면서 나만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글자판 제작도 했고 각종 커뮤니티를 활용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글자판(AAC)가 없다면 그냥 보고, 듣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활동지원사는 비장애인들에게 “이 서류는 이분 겁니다. 직접 설명하세요.”라고 말했는데도 정작 중요한 서류를 설명할 때는 활동지원사의 몫이 되었다. 나랑 활동지원사들은 그냥 사람으로서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며 여러 일도 같이 할 수가 있다. 서로에게 그 이상을 한다면 서로 잘못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들은 비장애인들에게 내 집에 내 영향력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정작 중요한 서류 설명할 때 굳이 내가 아닌, 타인(활동지원사)과 밖에서 얘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법률에 본인 명의로 된 서류는 대필이 안 된다는 요구가 있다면 거기에 맞는 대책도 나와야 한다. 분명히 필요하다. 

‘언어장애’라는 표현은 실제 법적인 ‘용어’도 없으며 그냥 만연하게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늘 어떤 표현력을 쓰는지를 알려야 한다는 건 피곤하며 힘들다. 대부분의 언어장애인도 비슷한 고민을 할지도 모른다. 언어장애인보다 ‘의사 표현이 가능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용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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