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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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등 아이들과 미디어 수업을 진행했다. 미디어 수업은 미디어를 다루는 능력뿐 아니라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선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아이들하고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 날도 그런 장점을 십분 발휘한 주제를 아이들에게 던졌다. 

‘체벌할 수 있다’ VS ‘체벌하면 안 된다’ 

복잡한 주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아이들이 ‘체벌하면 안 된다’로 의견을 모으고 나면 좀 싱겁지 않을까? 그래도 토론인데 좀 다른 의견들이 나오면 재밌지 않을까? 그 정도 단순한 생각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고는 순간 당황했다. ‘체벌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아이들이 꽤 됐다. ‘절대로 체벌하면 안 된다’는 강력한 의견을 제시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걸까? 

‘체벌할 수 있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때리는 건 좀 그렇지만 정말 아이가 너무 말을 안 듣거나 가르쳐야 할 때는 손바닥 한 대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요.” 반면 ‘절대로 체벌하면 안 된다’는 아이는 “말 안 듣는다고 골프채로 맞았어요. 잘못한 일이 있으면 말로 얘기해줘야지 때리는 건 안돼요.” ‘체벌’이라는 단어는 같았지만 그 의미는 다 달랐다. 내 머릿속 체벌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체벌’은 달랐다. 각자의 경험이 달랐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체벌’은 성적이 내려갔다고 손바닥을 때리거나 지각했다고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리던 선생님의 모습, 마당에 있던 수도 호수를 뽑아 공중에 휘두르며 아이를 위협하던 옆집 아주머니의 모습이다. 저거 한 대 잘못 맞으면 죽겠다는 생각에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내 모습도 선명하다. 지금 같으면 모두 ‘아동학대’로 충분히 죄를 물을 수 있다. 

‘손바닥 한 대 정도의 체벌’ 이야기를 한 아이에게 ‘그래도 체벌은 안 된다’는 걸 이해시키는 건 쉽지 않았지만, 세상에 맞을 짓이라는 없다는 등 무슨 얘기라도 늘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골프채로 맞았다’는 아이 앞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동정책은 아동의 피를 먹고 자란다

‘양천 아동학대’ 사건으로 ‘#00아 미안해’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변화시킬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미 우리사회에서는 ‘00이 사건’이 여럿 있었고 그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미안해했다. 때린 이를 미워하고 처벌을 요구했다. 국가는 필요한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동학대’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역에서도 심각한 아동학대 관련 제보들이 이어지고 있다. 주변의 증언들을 맞춰보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제보 받은 아동학대 사건은 하루 이틀, 일 이 년에 걸친 일이 아니며 관련 기관과 주변인들이 오랜 시간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 접수된 아동학대 사례는 전국적으로 2만 4604건, 학대받은 아동 수는 2만 18명이었다. 아동학대 관련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4년에서 2018년까지 5년간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이 132명으로 지금도 한 달에 2명 이상의 아동이 학대로 사망하고 있다(강현아 외,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유형 및 특성, 2019). 

앞서 얘기한 ‘체벌’관련 토론 수업에서 나는 ‘골프채로 맞았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아동학대’였다. 어쩌면 단 한 번, 그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어쩌면 그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고 그 보다 심한 일이 그 건넛집에서 또 그 옆집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쉽게 개입할 수 없다. 

‘아동학대’라는 단어는 하나지만 그 피해유형은 한 가지가 아니다. 그 피해 정도에 따라 아이 환경에 따라 대처해야 할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공동체가 피해 유형에 따라 적절히 개입하고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지역에서는 ‘아동학대’를 막을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동정책은 아동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지금까지의 아동정책은 피해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가해자를 미워하고 응징하는 방식, 사후 땜질식 처방으로 수립돼 왔다. 

다행히 은평구는 아동보호전담 공무원을 늘리고 아동학대 조사를 실시해 선제적 대응이 가능한 구조로 개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은평구의회 의원들의 아동학대 방안마련 요구가 여러 차례에 걸쳐 제시됐다고 한다. 행정과 의회의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이다. 

자치구의 선제적인 역할도 중요하지만 ‘아동학대 방지’에 실효성 있는 결과를 위해서는 관련 예산확보가 필수적이다. 아동학대로 긴급 분리조치가 필요할 경우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야 하고 더 이상의 아동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와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물론 은평구 예산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지속적인 자치구의 의지가 없다면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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