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원 김치찌개로 따뜻한 마음 나누는 식당, 연신내 ‘따뜻한 밥상’

“어려운 사람을 위한 식당이라면, 지금이야말로 하나 더 있어야 할 때”

따뜻한 밥상의 최운형 목사. (사진: 정민구 기자)
따뜻한 밥상의 최운형 목사. (사진: 정민구 기자)

어려운 시기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을 막고, ‘집밖의 나가는 일’을 ‘위험한 일’로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구하지 못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밥 한 끼 든든하게 챙겨 먹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자영업, 특히 식당은 암흑기가 따로 없을 것이다. 모임을 가질 수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함께 식사하는 일도 줄어든다. 오후 9시가 되면 문을 닫아야만 한다. 멀쩡하게 운영되던 식당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임대문의’ 네 글자만 남는 광경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낮은 수익을 무릅쓰고 식당 운영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한 끼 식사요금으로 3천원을 제시했다. 지금이야말로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연신내역 근방의 식당 ‘따뜻한 밥상(청년밥상 문간)’을 운영하는 최운형(53) 목사다. 

목사 20년, 할 일 다했다...이제 세상 속에 들어갈 때라고 생각했다

연신내역 3번 출구에서 연서시장을 마주보고 200m를 걷다보면 ‘김치찌개 3000원’이라 쓰인 간판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선 3천원이면 김치찌개와 무한정 제공되는 쌀밥을 먹을 수 있다. 김치찌개와 콩나물 한 접시 그리고 밥 한 그릇. 겉으로 보기에 단출한 이 밥상은 따뜻한 맛과 온도 이상으로 큰 위로를 건넨다.

최운형 목사는 2018년 따뜻한 밥상을 열기 직전까지 미국 교회에서 일했다. 최 목사는 “한 직업을 20년 했으면 많이 했다”고 생각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최 목사의 미래 계획표에 식당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영감이 됐던 것이 이문수 신부의 ‘청년식당 문간’이었다. 이문수 신부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다 굶어 죽은 한 청년의 소식을 듣고, 성북구에서 한 끼 3천원 김치찌개 식당을 차렸다. 청년식당 문간을 소개하는 기사를 본 최 목사는 이곳을 찾아 레시피, 운영법을 전수받아 ‘청년밥상 문간’이란 이름으로 연신내에 3천원 김치찌개집을 열었다.

“식당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목회할 때 중요하게 여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렸어요. 생명의 양식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직접 주셨죠.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매번 끼니 챙기는 것도 힘들죠. 이런 식당이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수많은 메뉴 중 하필 김치찌개인 이유도, 가격이 3천원인 이유도 따로 있다.

“2000원에 먹으면 기부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4000원이 되면 1000원만 더 투자하면 다른 선택지들이 많아지죠. 3천원은 가격 부담이 없으면서도 제값을 내고 먹는다는 느낌이죠. 김치찌개만 판매하는 이유는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면서, 외로운 청년들을 격려한다는 상징을 지닌 단일메뉴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다른 메뉴가 많아지면 주변 상권과 부딪친다는 단점도 있죠”

3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반찬은 콩나물 하나로 줄이고 인건비는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최 목사와 함께한 교인들부터, 손님, 기사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까지 가게를 위해 손을 보태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이 따뜻한 김치찌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학생부터 90세 노인까지...청년밥상, 따뜻한 밥상이 된 이유

따뜻한 밥상의 최운형 목사. (사진: 정민구 기자)
따뜻한 밥상의 최운형 목사. (사진: 정민구 기자)

최 목사가 가게 문을 열었을 때, 그 가게의 이름은 이 신부의 ‘청년식당 문간’을 딴 ‘청년밥상 문간’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따뜻한 밥상’으로 간판을 갈았다.

“청년밥상이라고 하면 청년을 대상으로 운영한다고 생각해서 좋아하시고, 응원도 하시지만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장벽을 느끼더라고요. 하지만 청년들은 가게 이름에 청년이 있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저렴하고 맛있는 곳을 찾죠. 그래서 노인들까지 편하게 오실 수 있도록 따뜻한 밥상으로 바꿨어요. 이후에는 청년들도 오고, 못 오시던 어르신들도 오시기 시작했죠”

따뜻한 밥상을 찾는 손님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하다. 낮에는 직장인, 저녁에는 퇴근하는 청년들이 많이 찾고 있다.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도 자주 오지만 ‘혼밥’을 하는 남성들이 가장 많다. 혼자 사는 사람이 요리를 하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지만 이곳에선 밥도, 라면도 혼자 넉넉히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와서 점심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먹고 가는 손님도 있어요. 미스테리야(웃음)”

청년밥상으로 시작해 ‘혼밥’ 청년들이 많이 찾는 만큼 식당을 기억하는 청년도 많았다. 한 청년은 식당덕분에 취업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마을이 함께 잘 살아야 좋죠”…라면만 먹는 청소년 없도록

따뜻한 밥상의 최운형 목사. (사진: 정민구 기자)
따뜻한 밥상의 최운형 목사. (사진: 정민구 기자)

최 목사는 ‘지역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가게가 도울 일이 무엇인지 탐색하기도 했다. 2019년엔 6개월간 매달 3백장씩 가게에서 무료로 식사할 수 있는 쿠폰을 주민센터를 통해 제공했다. 최근에는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청소년기관에서 일하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시는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라면만 먹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곳에 무료쿠폰 100장을 주기도 했지만 그런 아이들이 많다고 들어서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특정 시간에 오면 밥도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주변에서 펀드를 만들어 좋은 반찬도 만들고. 코로나가 안정 되면 시도할 생각입니다”

식당이 지역을 생각하듯, 주민들은 식당을 생각했다. 찌개 한 그릇 먹고 3만 원을 지불하며 다른 분이 식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손님도 있고 과일과 각종 음료, 식재료를 선물하거나 기꺼이 봉사하는 손님도 있다. 식당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도움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따밥’ 필요한 때...고될 것 알지만 잘 견뎌볼 것

최 목사가 직영하는 따뜻한 밥상은 연신내점이 1호점이고, 최근에 홍제점을 열게 됐다. 어려운 시기임에도 추가 창업을 선택한 것은 “어려운 사람을 위한 식당이라면, 지금이야말로 하나 더 있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 목사가 따뜻한 밥상을 개점했을 때 목표는 ‘2년 동안 망하지 않고 견디기’였다. 개점 2년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최 목사의 새로운 목표는 ‘2년 더 견디기’다.

“고될 것이라는 건 뻔하죠. 그래도 손님들이 편히 오셔서 자기 집인 것처럼 밥 먹고, 얘기 나눴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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