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응암3동 다래마을에 터를 닦고 살고 있는 것이 어느새 30년 가까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댁이 있는 이곳으로 이주해와 이곳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지금까지 살다보니 이곳은 나에게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교통도 그만했음 괜찮은 편이었고 시장도 가깝고 아이들 학교도 가까웠다. 

또 동주민센터나 은행 등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도 주변에 모두 위치했었다. 과거 인근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쌌던 이유도 아마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십 수 년이 지나면서 인근 동네의 모습이 변했다.

높은 언덕이었던 그 옆 동네는 백련산을 온전히 가린 우뚝 선 아파트 단지로 변했고 변변한 시장 하나 없어 우리 동네로 장을 보러오던 또 옆 동네 역시 아파트단지로 조성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 동네 역시 잠깐만 돌아보지 못하면 낡고 낡았던 주택이 어느새 사라지고 그 곳에 제법 높은 신축 건물들이 자리 잡았고 우리가 지름길이라 여겼던 골목이 사라지기도 하고 또 새로운 길이 생기기도 했다. 

마을의 지도가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이곳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어쩜 길을 찾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를 남편도 다녔고, 친척 어르신도 다녔다. 도시에서 3대가 동문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일이었고 또 생각만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내 아이들의 아이들까지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살기 좋은 마을로 잘 지속되길 바랐다.

그런데 살다보니 마을이 변하더라. 그 생기 있던 거리는 해만 지면 한산하다 못해 으슥해지고, 뭐하나 부족한 것 없던 마을은 작은 것 하나를 사려해도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 교실이 남는다는 소리가 들리면서부터였을까, 마을에는 아동복을 파는 옷가게가 하나도 없게 되었다. 이것이 단순히 소비습관이 변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졌다.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면서 마을 주민들을 만나다보니 의례 듣는 말이, ‘이 마을은 뭘 해도 안 돼.’라는 무기력한 말이었다. 주위가 아파트촌으로 변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도 있었겠지만 쉬이 변하지 않는 마을의 물리적 환경들을 보며 마을에 대한 기대심리마저 무너졌었나 보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고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작은 씨앗을 키우게 되었다. 결국 오랜 시간동안 방치되었던 마을에 대한 변화가 시도 되었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을은 멈춰있는 것 같지만 유기적이다. 마을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이라도 마을을 지속하게 할 수 있는 힘을 부여 받을 수 있는 도시재생 사업이 필요하다.

한때 불었던 재개발 재건축의 바람이 또 다시 마을에 불기 시작했다. 한 마을에 사는 주민으로 그 의견을 막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마을을 구성하는 것은 단순 땅을 소유한 지주들만은 아니다. 이곳엔 지주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삶을 살아내는 여러 사람들이 존재한다. 더 많이 갖고 덜 가졌다는 이유로 마을에 대한, 자신들의 삶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 누구라도 다양한 삶을 영위해 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도시재생 사업을 선택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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