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큰 신문들이 바깥으로 언론개혁을 이야기하며

계도지 예산 받는 것 비판받아야 

옥천신문 (사진 : 정민구 기자)
옥천신문 (사진 : 정민구 기자)

#1.옥천신문은 1996년 1월부터 옥천군의 계도지 예산책정을 거절했다.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년 예산으로 책정되는 구독료가 밀리지도 않고 따박따박 들어오는데 이를 거절한다는 것은 기실 큰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초창기 지역신문 어려운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정말 한 달 간신히 벌어 직원들 월급 주면 남는 것도 없는 살림살이에서 매달 꼬박 들어오는 계도지 구독료 예산을 포기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결단이었다는 것을 미뤄 짐작한다. 

그럼에도 이를 가차없이 끊어냈던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을 하기 어렵다는 것에 기반했다. 그냥 슬그머니 끊지 않았다. 1996년 1월 옥천신문 배정분의 계도지 및 광고예산 거부 때 독자사과문을 냈다. 반성하고 성찰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예산을 끊어낸 이후에 옥천신문은 계도지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여러차례 기사를 쏟아내어 옥천군의 계도지 철폐에 역할을 했다. 비판의 칼날은 늘 바깥을 향하는 크기만큼 그 내부에도 똑같은 크기를 들이밀어야 한다고 배웠다. 

계도지 예산을 따박따박 받으면서 민주언론을 참칭하는 것은, 정론직필을 얘기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범죄 집단이나 다름 아니다. 주민의 피같은 예산을 누가 함부로 도매금처럼 가져간단 말인가. 보지도 않는 신문, 이통장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왜 신문을 지정해 제멋대로 뿌려준단 말인가. 

#2.계도지는 용어 자체부터가 거시기 하다. 누가 누굴 계도한다는 건가.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비교적 조명을 덜 받는 작은 자치구 예산을 좀 먹으려 한다는 것도 괘씸하다. 권력의 입맛대로 신문을 택하여 구독료를 대납 꽂아주는 정책도 아닌 정책이 시행된다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말이 되는가. 

그 연원을 살펴보면 독재의 잔재이다. 박정희 정권이 1970년대부터 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고 통반장 등에게 나눠주던 신문, 그래서 관언유착이라고 비판받았던 언론 적폐중의 적폐가 계도지다. 미디어오늘 2020년 3월17일자를 보고서 깜짝 놀랐다. 옥천에서도 벌써 24년 전에 없어진 계도지 예산이, 서울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 또 늘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지역 25개구 주요 중앙일간지 계도지 예산이 무려 112억 9천288만원이나 된단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2019년 자료를 보면 서울신문이 구독료 예산만 50억원이 넘는 3만4천641부를, 문화일보가 6천471부(11억5천678만원)를, 내일신문이 2천839부(4억3천72만원)를, 한겨레신문이 2천794부(4억8천400만원)을 계도지 예산으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디어오늘은 보도했다. 도대체 언론개혁을 부르짖는 당사 노조에서라도 바로 문제제기를 해야할텐데 이런 것들이 왜 폐지되지 않고 오히려 예산이 증액되어 집행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미지출처 : 미디어오늘
이미지출처 : 미디어오늘

#3.이는 비단 서울뿐이 아니다. 강원도도 18개 시군 가운데 원주시만 계도지를 폐지했고 나머지 시군에선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 등에 많은 예산을 배정하며 계도지를 집행하고 있다. 아직도 구시대 유물이 그냥 남아있는 것이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춘천시가 가장 많은데 올해 총 8억5천526만원으로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 서울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원주시가 계도지를 폐지한 것은 그 지역 풀뿌리신문인 원주투데이가 이를 비판하고 집요하게 보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로당에 지급하는 계도지 예산은 주민복지과 예산으로, 새마을남녀지도자 계도용 신문구입비용은 자치행정과에서 예산을 책정하는 등 아주 골고루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횡성군에서도 이 지역 풀뿌리 신문인 횡성희망신문이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횡성희망신문은 2019년 1월 횡성희망신문은 계도지를 거부한다는 글에서 계도지 예산을 유지하는 횡성군과 관언유착 관행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국 방방곡곡의 풀뿌리 신문은 관언유착의 고리인 계도지 예산에 저항하고 투쟁해온 역사가 있다. 

#4.서울 지역 풀뿌리신문인 은평시민신문도 마찬가지다. 은평시민신문 역시 계도지 예산을 거부하고 계도지 폐지에 대한 기획취재를 하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가. 덩치 큰 신문들이 바깥으로는 언론개혁을 이야기하며 부조리 부패를 까발리다고 하면서 계도지 예산은 해마다 스리슬쩍 받아온 것 자체가 비판받을 일 아닌가. 

정말 주민들한테 정책 차원에서 미디어접근권을 주려면 구독료 바우처를 시행하여 주민들이 선택하게 하면 된다. 이건 지자체장 마음대로, 관행처럼 굳어져 해당 신문에 구독료 예산이 매년 집행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골리앗인 언론 대기업에 맞서 작은 풀뿌리 신문인 은평시민신문은 지속적으로 작은 공을 쏘아올리고 있다. 그들은 이 공에 화답해야 한다.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언론노동조합은 본연의 책무를 잊었는가. 서울시,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계도지를 지금 당장 폐지해야 한다. 안일하게 주민 세금을 좀먹는 언론들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 안의 적폐를 물리지 않고 어찌 언론 개혁을 이야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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