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구속기소 되었다. 텔레그램 대화방 30여 개를 운영하면서 미성년자 8명을 포함한 25명 여성을 협박해 촬영한 성착취 영상물을 영리 목적으로 제작‧유포한 혐의다.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강제추행 등 해당되는 죄목만 14개에 이른다. 

조주빈은 서사 속 표현처럼 끔찍한 ‘악마’인가?

지난 3월 25일 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은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 줘서 감사하다”는 궤변을 남겼다. 언론은 수년간의 봉사활동 등 조주빈의 행적을 열거하며 그를 ‘두 얼굴’을 가진 ‘악마’에 비유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검색창에는 ‘조주빈 학교’, ‘조주빈 성장과정’ 등의 연관 검색어가 연일 상위에 머물렀다. 구체적 피해상황 등 선정적 헤드라인을 단 뉴스도 양산되었다. 과연 조주빈은 그가 만들어낸 서사 속 표현처럼 끔찍한 ‘악마’인가?

조주빈의 신상이 정해진 일정보다 일찍 언론에 노출되고 무분별한 기사가 쏟아지자,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통칭 ‘n번방’ 보도와 관련해 “가해자를 ‘짐승’, ‘늑대’, ‘악마’와 같은 표현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을 포함한 7개 지침을 긴급 발표했다. 

성범죄를 자체를 일상과 유리된 ‘특수’하고 ‘예외적인’ 것으로 서사화함으로써 가해자를 ‘평범한’ 사람과 분리시키고, 범행의 심각성을 ‘특이’하고 ‘엽기적’인 행위로 축소할 위험을 지적한 것이었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도 2018년 <성희롱‧성폭력 사건보도 공감기준>을 통해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가해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안내한 바 있다. 

성착취 산업구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 아냐

실제로 n번방은 조주빈과 몇 명의 공범, ‘호기심’으로 접근한 일부에 의해 일어난 ‘엽기적’ 사건이 아니다. 수십 개 텔레그램 채팅방에 모인 26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심히 까다로운 가입절차와 큰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성착취물에 접근하려는 의지로 공범의식을 공유하며 기괴하게 ‘연대’한 결과다. 방당 10명 이상의 개설자·운영진·직원이 여성 유인, 성착취물 제작, 수익관리 등의 역할을 분담해 무려 2년 가까이 운영해 온 수십억 규모의 조직적 범죄다.

n번방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고는 있지만 온라인에서 성착취물을 제작·유통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성착취물을 빌미로 성폭력을 저지르고 이를 다시 유통해 몸집을 불리는 성착취 산업구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은 폐쇄된 ‘소라넷’, 성매매 후기‧알선사이트 ‘밤의 전쟁’, 다크웹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최대 규모 성인사이트 ‘옥보이’·‘흑악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성착취물이 제작·유포·소비되었다. 

그리고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연예인·대학생·기자 집단의 단톡방 성희롱, ‘버닝썬’ 사건, 불법촬영, ‘야동’, 룸살롱 문화, 성매매, 공창제에 이르는- 외양만 다를 뿐 여성을 수단화하고 상품처럼 거래해 온 가히 유구한 역사를 만나게 된다. n번방은 ‘가상’의 온라인 공간이지만 그 공간을 채운 것은 ‘실재’하는 성폭력·성매매·성상품화·그루밍이라는 점에서, 디지털성범죄는 오프라인의 여성폭력·여성인권 실태와 철저하게 연결되어 있다. n번방은 특별한 ‘악마’나 ‘괴물’이 아니라 왜곡된 성문화와 여성폭력에 대한 오랜 묵인과 무관심, 선긋기가 원인인 ‘평범한’ 사건이다. 

추적단 불꽃, 프로젝트 ReSET, n번방 시민방범대,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등은 n번방 공론화의 주역이다. 그 결과 20여 개가 넘는 국민청원에 모인 서명이 어림잡아도 700만이 넘을 만큼 n번방 사건은 국민적 관심과 분노를 일으켰고, 이에 국가도 반응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아동·청소년이용성착취물 범죄 처벌 상향 및 양형기준 마련 △온라인그루밍 처벌 신설,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기준 16세로 상향 △잠입수사, 신고포상금제, 인터넷사업자 징벌적 과징금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지자체 최초로 디지털성범죄 예방과 피해자 지원 강화를 위한 조례안을 발의했고, 우리 은평구에는 기본소득당 신민주 후보가 n번방 사건 해결을 핵심 공약으로 걸고 21대 총선에 출마하여 의미 있는 결과를 냈다. 

국회 계류 중인 디지털성범죄 관련 법안, 의결 촉구해야

시민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n번방과 관련해 검거된 300여 명에 대한 올바른 수사와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지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디지털성범죄 관련 법안들의 제대로 된 의결을 촉구해야 한다.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거나 서사를 부여하는 언론을 감시해야 한다. 21대 총선에서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공약으로 건 정당들의 발걸음도 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나 자신의 인권감수성을 점검하는 일이다. 온라인 성착취물을 과거의 ‘빨간책’ 정도로 가볍게 보고 있지는 않은지, 피해자가 만든 ‘일탈계’가 사건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착취 피해 청소년은 ‘그럴 만한 아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지, 여전히 성범죄의 동기를 ‘주체할 수 없는 성욕’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지 내 안의 잘못된 통념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 

국민적 공분을 통해 n번방 사건이 범죄임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n번방이 ‘한때 화제였던 뉴스’로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이 사건을 ‘악마’의 범죄가 아니라 ‘평범하게 만연한 성착취’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착취·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 성문화를 바꾸기 위한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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