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은 사회 규범질서를 시민의 상식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책으로 강조될 필요 있어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문화정책분야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각 정당이나 입후보자들의 공약과 여기서 드러난 문화정책을 살펴보아야할 시점이다. 그런데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기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온 세계가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문화 분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최근 십수년간 치루어진 거의 모든 종류의 선거에서 문화적 의제가 진지한 정책 경쟁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들이 내놓은 문화예술 분야 공약을 살펴보면 적어도 정당의 10대 공약 중 어떤 형태로든 문화예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우리공화당, 노동당 등 3개 정당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우리공화당은 공통적으로 ‘문화강국’을 내걸고 있으며 노동당은 노동시간 단축을 전제로 한 문화사회법을 내세우고 있다. 그나마 10대 공약에 문화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 정도인데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갑갑함이 또다시 밀려온다.

이미 기존의 정책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을 새로운 정책인 것처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거나 선거공약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일방적인 주장의 나열에 그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요약해서 현재의 선거판에서 문화정책은 수사적인 요식행위로 존재하거나 충분한 제도연구의 결과물이 아닌 급조된 아이템의 나열로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다보니 당연히 지켜지기 힘들거나 공약의 이행여부를 판단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때로는 무리하게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까지도 존재한다. 한국의 선거가 전반적으로 정책선거가 아닌 정치적 지향과 지역적 기반에 의한 투표성향에 의해 지배받아왔던 측면이 있기도 하겠지만 특히 문화 분야의 정책은 아주 요식적으로 다루어져왔다. 문화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던 이들에게 기억나는 문화공약을 꼽아보라면 이제 20년도 넘은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김대중 후보(당시)가 내세웠던 문화재정 1% 달성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렇게 문화정책이 공약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현실정치에서 쪽에서 취약할까. 이는 우선 문화를 후순위로 여겨온 정치관행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안보나 외교, 특히 최근 들어 경제정책에 모든 관심사가 집중되면서 정치권에서의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은 매우 얕은 수준에 머물러있다.

과거 십수년 전에 문화단체에서 정책담당실무책임자로 일하던 시절, 선거철만 다가오면 “혹시 이번 선거에 문화공약으로 내세울만한 것이 없느냐”는 문의를 여야 가릴 것 없이, 진보-보수라는 정치 지향의 차이와 무관하게 받곤 했다. 물론 문화 현장에 필요한 정책을 문의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언제나 그것이 선거를 바로 앞둔 시점에 단지 보여주기 식의 나열을 위해 그럴싸한 아이템을 단기적으로 찾는다는 것 이상이 아니란 인상을 받곤 했다.

문화정책은 그 속성상 사회정책에 속하며 어떤 정치 세력의 다른 정책들, 국가 발전 전략이나 지향하는 사회적 방향에 따라 매우 달라져야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이 그냥 겉보기에 그럴싸한 포장으로 문화정책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져보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제정헌법 이래로 문화국가의 원리를 헌법상 엄연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으로 한국의 헌법상 문화정책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문화국가 원리에 따르면 국가와 정부는 문화에 관하여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한다. 물론 이런 전통적인 문화국가의 원리 자체가 문화적 다양성이 매우 커져가고 내용적으로도 민간의 자율성이 훨씬 강화된 현재의 문화환경에 잘 부합하는가에 대한 세심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현재의 문화정책 부재의 정치 지형은 문화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방기시키거나 형식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전통적 문화국가의 원리가 얼마나 실효적인지 혹은 새로운 재해석이나 변화발전이 가능한지를 따지고 다음 스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문화정책에 대한 각 정당들의 깊이있는 관심이 요구된다. 

또 한가지, 20세기 후반부터 소위 문화산업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면서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사회정책으로서의 기본적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정책 투입에 따른 산업적 산출에 집중되는 산업진흥정책 측면에서의 관심이 지나치게, 비대칭적으로 커진 측면이 있다.

당연히 일자리와 세수를 발생시킬 수 있는 측면에 각 정당과 정부의 관심이 우선적으로 가는 것은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문화정책은 사회의 규범적 질서를 시민의 상식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작동시키는 사회정책으로서의 측면이 균형있게 강조될 필요가 있다. 이런 문화정책 본연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기 위해서라도 다른 인접 사회정책분야, 예컨대 교육이나 복지, 여성, 청소년 등 다양한 사회이슈들과의 통합적 기능으로서의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소통 기구들을 이제라도 각 정치집단들이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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