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섬이 많기로 한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서남해에 특히 섬이 많다. 그리고 이 섬들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도시 중 하나가 통영이다. 그렇다고 통영에서 섬만 찾을 일은 아니다. 통영시 관광 싸이트에 가보면 한려해상공원 이외에 ‘역사와 예술’의 도시로 통영을 소개한다. 소설가 박경리가 나고 자란 곳이고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시인과 극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인은 80년대 독재자를 찬양하는 시를 썼고, 그 극작가는 일제를 찬양하는 희곡을 썼다. 역사가 깊으니 이곳 역시 그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기 마련. 혹여 통영에 가면 이런 시시비비를 염두에 두고 ‘예향 통영’을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분단사의 비극이기도 하고, 한 독재자의 희생양이 되었던 예술가가 통영에 있다. 윤이상. 독일 유학 중 간첩으로 몰려 사형수에서 특별 사면을 받은 뒤 서독에 귀화한 한국인.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5인에 이름을 올린 음악가. 생전 그가 독일에서 살았던 집을 축소하여 만든 ‘윤이상기념관’에는 피아노와 음향기기, 테이블과 소파 등 생전에 그의 손때 묻은 유품을 전시하였다. 입구에는 ‘베를린 하우스’와 그가 타던 독일제 자동차도 유리 벽면 안쪽에 전시된 것을 볼 수 있다. 2016년 유해가 돌아온 뒤 2018년에 고향 통영에 안장되었다. 복권이 되었고, 성악을 전공한 현 영부인이 묘소를 참배한 뒤에도 보수단체는 이념의 덫을 씌워 윤이상을 기리는 활동을 반대한다고 한다. 한 독재자가 뿌린 상처가 얼마나 깊고 오래 가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앞서 말한 대로 섬들의 관문, 통영은 미륵산에 올라보면 진가가 나타난다. 약 460 미터인 이 산에 오르면 세 방향을 에둘러 바다와 섬이 보인다. 산행을 즐긴다면 등산 편도 2시간이 걸린다. 케이블카는 10여 분만에 8부 능선까지 도달한다. 맑은 날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시계가 트여 있어 봉수대 터도 남아 있다. 미륵산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를 두고 ‘동양의 나폴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통영은 그냥 통영일 뿐!

통영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하나가 동피랑 마을이다. 강구안을 내려다보는 작은 언덕, 골목마을. 산중턱 허름한 집에서 유년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벽화보다 골목과 낡은 집들이 더 다가오는 곳이다. 동네 가장 높은 곳에 동포루를 재건해 놓았다. 바다를 보고 길 건너 오른쪽에는 서피랑 공원이 있는데, 찾는 이가 느는 곳이라고 한다.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은행단풍과 99계단길이 있다. 이곳 역시 서포루를 새로 지었다. (각각 동쪽과 서쪽에 있는 절벽이라는 동피랑, 서피랑은 ‘벼랑’이 변해서 굳어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철거 대상지에서 새롭게 생명을 부여받은 동피랑 마을을 보면 개발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통영, 임진왜란의 역사도 곳곳에 있고, 항구도시답게 먹을 것도 많은 곳이다. 멍게(우렁쉥이의 사투리) 비빔밥이 특히 유명하고, 해물탕 잘하는 집이 곳곳에 많다. 생굴에 환장한 수준이었다는 나폴레옹이 아니더라도, 통영에서는 여름 한 철을 빼고 싱싱한 굴을 맛보고 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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