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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넘어 차별금지법으로
  • 조혜인 / 은평구 인권위원
  • 승인 2019.09.2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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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인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소수자 인권 연구자인 작가가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습관처럼 썼다가 그것이 ‘장애’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관념을 담고 있는 말이라는 지적을 듣고서 충격을 받는 일화로 시작된다. 책을 읽으며 내가 겪은 비슷한 경험들이 여럿 떠올랐다. 

몇 년 전 한 강의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차별 상황을 설명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이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다. 강의가 끝나고 한 여자 수강생이 조용히 다가왔다. 강의 잘 들었다는 의례적인 인사와 더불어, 자신은 화교인데 ‘우리나라’라는 말로 한국을 지칭하면 자신과 같이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은 강의를 듣는 사람에 포함될 수 없게 된다는 지적, 그러니 앞으로는 한국이라는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한 번에 받았다.

강의실 안에는 당시에 내가 생각했던 ‘외국인의 외모’를 한 사람이 없었기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지적이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내가 상상했던 전형적인 경계와 사실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내 딴에는 사람들을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자 일부러 사용한 ‘우리나라’라는 말이 강의에서 누군가를 밀어내는 정반대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강의를 듣는 입장에서 겪었던 일들도 있다. 강의 중에 ‘이 중에서 성소수자를 실제로 만나본 분이 계신가요?’, ‘성소수자들은 ~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하죠’처럼 성소수자를 강의 듣는 사람과 완벽하게 분리되어있는 집단으로만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지금 이 공간에 함께 하는 우리들 중에 성소수자가 있을 리 없다는 무의식적인 전제가 느껴질 때 몹시 불편하고 어색해진다. 강사가 강의를 통해 만나는 숱한 사람들 중에 스스로를 성소수자라고 정체화한 사람들이 분명히 많았을텐데, 차별적인 전제를 성찰하지 못한 발언이 악의 없이도 누군가를 계속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차별 문제는 참 어렵다. 차별이 단지 나쁜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면 해결방법도 단순할텐데, 세상의 차별들은 사회의 ‘상식’과 ‘합리성’에 기대어 일어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재산이 있는 남성 백인 시민들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지던 일, 지체장애가 있어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은 사회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불운일 뿐이라는 생각들, 미국에서 다른 인종끼리의 결혼이 금지되고 한국에서 동성동본 결혼이 인정되지 않았던 제도적 차별들은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 ‘상식적인’ 생각,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제도로 받아들여졌었다. 

이렇게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이 늘 당대의 ‘상식’과 ‘합리성’에 의해 한계지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차별을 인식하고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차별받지 않아 세상 편안한 자리에 서있을 때, 차별과 불평등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차별을 계속 발견해내면서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차별을 경험하면서 상식을 의심하게 된 사람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당위 명제와 그렇지 못한 자신의 삶 사이의 간극을 발견하고 증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빚질 수밖에 없다. 여성들, 장애인들, 이주민들, 백인 아닌 사람들, 성소수자들, 청소년과 노년들,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고발하고 증언한 용기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인류는 ‘평등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에 대한 비전을 매번 갱신하고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왔다. 

글의 앞부분에 언급한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선량한 마음만으로는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함께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사회적 상징과 선언으로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제안한다. 차별이 개인의 악의만이 아니라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유무형의 사회 제도에 의해 재생산되고 유지되는 것이기에, 차별의 예방과 시정 또한 제도적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말도 안 되는 소리’, ‘시끄럽고 불편한 이야기’, ‘예민해서 오바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가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실마리로서 주의 깊게 듣고 숙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들에 이러한 지위를 공적으로 부여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이다. 차별금지법 논의가 정치적 판단에 따라 유예되고 있다는 뉴스로 시끄러울 때, 평등한 세상을 원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이유다.

조혜인 / 은평구 인권위원  epnews@ep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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