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세 번째 이야기

갓바위 인근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박물관 중 자연사 박물관에서 바라 본 ‘국립해양연구소’-신안해저유물 전시 및 연구-이다. 왼편이 영산강 하구둑으로 이어지는 하당 ‘신도심’이고 건물 뒤편 멀리 유달산을 비롯한 ‘구도심’이 있다. <사진 : 장우원 >

해방 후 중국 및 일본과 교역이 끊기면서 목포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한때 전국 6위의 대도시였던 목포는 굴곡진 호남편견의 정치색에 가로막혀 도시 확장도 다른 곳에 비해 현저히 늦게 이루어졌다. 영산강 하구둑을 세운 뒤 20여 년이 지나서야 서해안 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 고속열차는 최근에 완공이 되었으니 말이다.

목포가 발전이 더딘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섬이 많은 신안군을 비롯 인근 무안과 함평, 멀리는 목포 내항을 건너는 영암군이나 완도, 진도까지도 목포를 중심으로 생활하였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하면 목포로 나왔다. 사람은 물론 갯것이나 땅것들도 목포로 모이거나 목포를 통해 외지로 나갔다. 신안이나 진도, 무안이 고향이면서도 목포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목포에 기거했던  사람들이 목포를 출신지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던 것이 연륙교가 생기고 육상교통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목포를 거치지 않고 광주로 집결되었다.

대불공단이 들어서고 무안 공항도 만들어지고 목포가 부활하려는 몸짓은 여러 번 있었으나 그 뿐이었다. 상대적으로 소도시였던 여수가 오늘날 목포보다 훨씬 큰 항구 도시로 바뀐 것에 비하면 목포는 초라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새롭게 조성된 시가지는 온통 아파트로 도배가 되었고 배가 없는 조선소는 황량한 풍경만 남겨 두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게가 들어서고 급기야 옛 목포는 빈집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른바 ‘구도심’의 몰락이자 목포의 쇄락. ‘목포 출신’으로 불리던 많은 사람들이 신안으로, 진도로, 완도로, 무안으로, 함평으로, 영암으로 원적을 찾아가는 것과 괘를 같이 한다.

그러나 눈을 돌리면 목포의 매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최초의 극작가 김우진, 가수 이난영, 남진, 김경호, 최초의 여류소설가 박화성, 오적의 김지하, 평론가 김현, 옥공예가 장주원 외에도 숱한 ‘예술’이 탄생한 곳이다.(친일 논란 예술가도 있음) 목포대교, 천사대교, 목포 해상케이블카를 활용한 서남해 관광벨트도 중요한 자산인지도 모른다. 이 예술적 토양은 신도심인 ‘하당’이 아니라 구도심이다. 최근 이 구도심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천사대교를 건너기 위해 목포를 찾는 사람보다 식민의 쓰라린 역사, 호남차별의 아픔을 간직한 목포, 그리고 그 위에 꽃핀 예술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목포의 ‘맛’인지도 모르겠다.

목포를 다녀간다면 최소한 이런 정도는 봐주고 갔으면 좋겠다. 

① 목포역-유달산(마당바위)-근대문화역사 유적지-대반동 야간 유람선(또는 하당 유람선) ② 유달산 일출-갓바위-옥공예전시관-목포문학관-남농기념관-목포자연사박물관-문예역사관(갓바위와 함께 모두 붙어 있음)-국립해양문화연구소-(대반동 일몰 또는 유달산 일몰) ③ 삼학도 공원 및 동명동 어시장-목포해상 케이블카-고하도 목포신항 세월호 보존지

이외 목포와 연계하여 영암 도갑사, 월출산, 압해도 천사대교 및 신안군. 계절별로는 봄-함평 나비축제, 무안 백련 회산지 연꽃, 황토머드축제, 목포-가을 영산호 갈치 낚시 등도 가능하다. 목포역-대반동, 목포역-갓바위 모두 택시 기본요금 정도. 유달산 둘레길에 조각공원이 있다. 먹거리는 가을 갈치, 전어, 세발낚지, 홍어 등이 유명하나 백반은 꼭 드시기를! 허름한 식당 아무 곳이나 5~7천원에 백반이 나온다. 참, 목포와 무안 경계에 추사와 교류하고 우리나라 다도를 집대성한 ‘초의선사’ 생가도 복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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