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학자금대출과 카드빚을 제때 갚지 못해 매 달 카드가 막히고 휴대전화가 막혀가며 살았습니다. 경제상황이 바닥을 치던 때였지만 저는 제 경제적 능력과 아무 상관없이 정보공개청구를 잘만 했습니다. 아무도 제게 ‘너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데 수수료를 낼 돈은 있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술 마시다 알딸딸한 채로 정보공개청구를 한 적도 있고, 몇 날씩 밤을 새워 샴푸로 이를 닦을 만큼 몽롱해진 정신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동안 ‘너는 지금 이해력이 떨어지는 상태니까 혼자서는 정보공개청구하면 안된다’고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런 제약 없이 편하게 했던 정보공개청구를 ‘이해가 부족하고, 비용부담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법정대리인을 대동해야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어린이와 청소년입니다. 

현행 정보공개법은 “모든 국민은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이도, 성별도, 출신지역에 대한 제한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은평구청은 청소년의 정보공개청구권에 제약을 두고 있습니다.

은평구청은 모든 국민에게 정보공개청구권이 있다고 하면서 미성년자의 공개청구에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미성년자는 사법상의 무능력자”이니 “단독으로는 완전한 법률행위가 불가능”하다면서 말이죠. 

그래서 중학생까지는 ‘비용부담 능력이 없기 때문에 혼자 하는 정보공개청구는 인정하지 않고, 법정대리인에 의해서’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15살과 16살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등학생한테는 선심을 썼네요. ‘정보공개제도의 취지와 내용에 대해 이해가 가능하고 비용부담 능력이 있으니 단독으로 청구가 가능하다’고 말이죠. 

정부 정보공개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도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나이제한규정이나 지침이 따로 없으며 중학생의 경우에도 정보공개 청구권을 제한할 이유나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발간한 <정보공개운영매뉴얼>에도 미성년자와 재외국인, 수형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은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다고 똑똑히 적혀있습니다. 

- 관련 글 보기 : 중학생은 정보공개 청구가 불가능하다고? ㅇㄱㄹㅇ?[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링크 : https://www.opengirok.or.kr/4638

그렇다면 은평구청은 왜?! 중학생까지 청소년의 정보공개청구권에 제약을 둔 것일까요? 아마도 관성이었을 겁니다. 다른 공공기관이 홈페이지에 달아놓은 안내를 베껴왔을 수도 있죠. 실제 은평구청과 똑같은 문구로 청소년의 정보공개청구권에 단서를 달아 놓은 공공기관이 몇몇 있거든요. 하지만 이런 관성 때문에 어린이는, 중학생은, 중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은 단지 나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알권리에 제한을 당하고 있습니다. 

알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어져야 하는 인권입니다.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제한되어서는 안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시 서부교육지원청도 얼마 전까지 홈페이지에서 정보공개청구에 나이제한을 명시했었지만, 문제제기를 받고 의견을 받아들여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고 합니다. 은평구청도 하루빨리 바뀌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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