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마루 활력소 김희자 대표

고리마루 마을활력소 협약식 후 기념촬영

도시에서 ‘마을’을 이야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행정구역상 자치구나 하나의 동으로 나뉜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왕래할 수 있는 몇 가구를 중심으로 한 예전 마을개념에 한정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시민들은 ‘마을’을 만들고 있다. 문을 열고 서로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소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주었고 그 힘은 다시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몇 사람의 힘으로 시작한 일이 수 십, 수 백 명의 힘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여럿이 모이다 보니 갈등을 피할 수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수많은 갈등에도 그동안 소외되고 숨어있던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고 있다. 바로 갈현1동의 이야기다.

지난 6월 28일 갈현1동 주민센터 내에 고리마루활력소가 문을 열었다.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시민들의 문제의식과 시민들이 직접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마을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다양한 목적의 총합의 결과였다. 

시민들은 갈현1동 뒷산인 앵봉산 꾀꼬리를 상징하는 고리, 시민들을 연결해주는 고리와 모든 사람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루를 상상하며 고리마루라는 이름을 지었다. 문을 연 후 매달 100만 원정도 수익이 나고 있다. 천오백 원짜리 커피를 팔아서 이 정도 수익을 낸 거니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이 공간을 이용하지는 알 수 있다. 

고리마루활력소가 갈현1동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시민들은 이 공간에서 어떤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지 고리마루활력소 김희자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표님이 마을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2년 갈현1동 코오롱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 아파트 내 층간소음문제가 심각해 주민 간의 분쟁과 문제들이 많이 생겼다. 현재 은평마을공동체지원센터 이춘희 센터장님이 당시에는 갈현1동 커뮤니티 플래너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개인문제가 아닌 주민 모두의 문제이니만큼 해법 역시 함께 찾아나서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이 됐다. 마을과의 인연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아파트 내 층간소음 문제는 해결이 됐는지

우선 주민들이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됐다. 주민들끼리 월요일 저녁 8시 모임을 시작해 요가·퀼트·미술치료반 등 작은 강좌를 열었고 한 강좌에 많게는 20여 명이 모였다. 이런 움직임을 시작으로 더 많은 강좌가 문을 열어 한지공예, 영어회화반 등으로 확대됐다. 모두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진 수업이다. 

강좌가 이어지다 보니 아파트 내에 커뮤니티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런 공간은 주민들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는 커뮤니케이션 장소로 변해갔다. 어느 집 아이가 몇 학년인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이해하면서 아파트 분위기는 점점 변화됐다. 층간소음 때문에 다투는 일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갈현1동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아파트 내 소통을 넘어 갈현1동까지 시선이 확대됐다. 우리 동네 문제는 뭐가 있는지 찾아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갈 건지도 논의하는 마을계획단에 참여하게 됐고 100명의 주민들이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100명이 조를 나눠서 매일 갈현1동을 돌아다녔다.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다보니 ‘이런 곳은 불이 나면 어떻게 하나, 여긴 아직도 연탄불을 피우네, 독거어르신이, 조손가정이 이렇게 많구나’ 하며 우리 동네를 더 알게 됐다. 

앵봉산에도 올라가보니 중고등학생들이 학교갈 때 통학로로 다니는 길이 있는데 그 길에 나무도 쓰러져 있고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주민들이 앵봉산 생태 지킴이를 만들어 청소도 하고 관리를 시작했다. 

갈현1동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왜 이렇게 낙후됐을까 고민해 봤다. 재개발만 믿고 아무도 마을에 손을 대지 않았던 거다. 결국 이런 게 쌓이면 마을이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 되는 거니 문제가 심각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은?

동네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만든 일, 주민들끼리 뮤지컬 공연을 한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 동네 어르신들 이야기 기록한다고 녹음기 들고 다니면서 기록하고 작은 책을 하나 냈는데 그 과정이 엄청 힘들었다. 책 나오고 작은 출판회를 했다. 출판회에서 어떤 어르신이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고 힘들게 자식을 키웠는데 내가 한 일이 이렇게 대단한 일이었나?’ 이야기하고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뮤지컬 연습한다고 싸우기도 엄청 많이 싸웠는데 또 하루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모여 연습하고 그러면서 주민들하고 정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수십 번 만나 연습을 하니 정이 들 수밖에 없다.

본인에게 마을은 어떤 의미인가?

얼굴을 익힌 사람이 마을인 거 같다. 예전엔 아파트에 살아도 아래 위 층에 누가 사는지 잘 몰랐다. 고리마루활력소 문을 열면서 마을의 다양한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됐다. 예전에는 ‘우리 갈현1동’ 이런 생각이 강했는데 고리마루활력소 문을 열면서 꼭 갈현1동에 살지 않아도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을활동을 하면서 주의할 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마을활동도 오래되면 하나의 권력이 된다. 고리마루활력소 문을 열면서 이 공간이 몇 몇을 위한 공간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활력소가 온전히 주민들의 공간이 되기 전까지는 활력소를 만드는데 힘을 모았던 분들, 주민센터 직원분들이 활력소의 주 이용자가 되지 않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서운했던 분들도 많았을 거다. 하지만 몇 몇이 이 공간을 차지하고 들어앉으면 이 공간은 온전히 주민들의 공간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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