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을 향한 기차에는 평화가 찾아오길

두만강 주변에 살던 조선인들이 기근을 피해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0년 이전부터다. 1863년 함경북도 출신 60여명이 러시아 포시예트(Posyet) 구역에 정착하면서 지신허 마을을 개척한 일이 공식기록으로 전해진다.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연해주는 조선독립운동을 위한 피난처가 되고 독립군 양성의 터전이 되었다. 

은평시민신문은 (사)희망래일의 인문학습원 ‘대륙학교’ 4기생들과 함께 10월 4~7일 연해주 연수에 참가해 동북아 역사를 둘러보고 고려인들이 남긴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찾았다. 

연해주는 항일 유적의 흔적과 고려인들의 아픔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이상설 선생 유허비, 최재형 선생 거주지,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신한촌 기념비, 조국독립의 꿈을 가슴에 품고 거닐 던 거리와 학교, 신문사 등으로 쓰이던 건물들 그리고 강제이주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라즈돌로예 역, 지신허 마을, 고려인문화센터 등 곳곳에서 아픈 전쟁의 시대를 기억하고 있다. 

수이푼 강가. 이상설 선생의 유해가 뿌려진 곳이다 <사진 : 박은미 기자>

우수리스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수이푼 강가에는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다. 이상설 선생은 1906년 간도 룽징 춘에서 서전서숙을 개숙한 뒤 이듬해 헤이그 특사로 파견됐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연해주로 망명한 뒤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세상을 떠났다. 이 선생의 유해는 근처에서 유일하게 동쪽으로 흐르는 수이푼 강에 뿌려져 그 영혼이나마 고국을 향할 수 있었다. 

 최재형 선생이 살던 집이다. 최재형 선생은 이 곳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처형당했다. <사진 : 박은미 기자>

연해주 독립운동은 최재형 선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한다. 최재형 선생은 상해임시정부를 후원하고 독립운동의 자금원으로 활약했다. 1908년 해외 최대 독립운동단체인 동의회를 창립하고 동포신문인 대동공보를 발행하여 일제를 비판하고 독립의식을 높이는 활동을 이어갔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사살도 최 선생의 후원으로 성사됐다. 일본군은 1920년 연해주 4월 참변을 일으켜 제일 먼저 최재형을 즉결 처형하기에 이른다. 

안중근 단지 동맹비. 1909년 2월 안중근을 비롯한 12명이 이 곳에 모여 조국독립을 위해 왼손 무명지를 자르고 동맹을 결의했다. <사진 : 박은미 기자>

연해주 남서쪽 크라스키노에서는 안중근 단지 동맹비를 만날 수 있었다. 1909년 2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12명이 이 곳에 모여 조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하여 왼손 무명지를 자르고 동맹을 결의한 곳이다. 2001년 10월 18일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단지동맹유지’ 조형물을 세웠다.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조국독립을 위해 붉은 피로 맹세를 나누던 12인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라즈돌로예 역. 스탈린은 이 곳에서 연해주의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사진 : 박은미 기자>

라즈돌로예는 북한에서 올라오는 도로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가는 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조그만 시골역으로 보이는 라즈돌로예 역은 1937년 가을 스탈린이 연해주의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킬 때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출발지다. 소련 정부는 ‘일제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연해주 일대에 흩어져 살던 한 민족을 라즈돌로예 역으로 집결시켰고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지붕도 없는 가축용 화물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18만 명이 야간열차에 실려 황무지에 맨 몸으로 끌려갔고 그해 겨울 1/3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사망했다고 전한다. 강제 이주 직전에는 한인들의 반발을 방지하기 위해 한인 지도급 인사 2,500여명을 약식재판을 거쳐 무자비하게 총살했다고 전해진다.  

라즈돌로예 역에서는 3대의 기관차가 조차 80량을 이끌고 지나가고 잠시 후 150량 무개차가 통과하는 거대한 물류 이동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대륙을 향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다. 전쟁으로 단절된 채 살며 하나의 섬이 되어버린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어 열차는 대륙으로 향하고 사람은 자유롭게 오고 가며 더불어 우리의 꿈도 커져가길 기원한다. 

블라디보스톡 거리. 조국독립을 위한 꿈을 안고 이 거리를 걸었을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한다. <사진 : 박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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